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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y 18. 2023

대다수가 외면하는 '정치'의 성격

'대화와 합의' 대 '폭력과 투쟁'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까지도 나는 정치가 대화와 합의의 장이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또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나 믿음과는 달리, 정치가 본래 어떠한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볼 때, 정치는 결국 폭력과 투쟁의 장이라는 결론을 부정할 수가 없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았던 시대, 정치의 끝은 대개 숙청과 내전이었다. 권력을 잡은 이들이 실권자(失權者)들을 내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며, 권력을 이양해야 할 자들이 이를 인정하지 못해 상대 정파를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던 것이 정치의 실상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보편적 가치'라 여겨지는 몇몇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바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확립되기 전에 사람들이 보였던 모습이었던 것이다.


직접 민주정에 대한 불신 또는 그 비효율성을 이유로 대의민주제가 성립되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고 전쟁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파괴적인지를 깨달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그리고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그 틀 안에서 모든 (정치/사회적) 행위가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다시는 그 사회(국가)가 전란에 휩싸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기를 기도(企圖)했다. 이러한 바람은 큰 성과를 이루었고, 대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이러한 가치를 존중한다는 전제하에, (독재자의 집권기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기본 목표였던 '정권 확보'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아서, 칼과 화살, 총탄이 난무하는 시대는 아닐지언정, 상대방에 대한 공격과 음해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점잖고 온화한 태도로 상대 정파의 견해를 반박하고 그들이 제정하려는 법이나 제도에 반대한다면, 그것이 하나의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여 끝내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 없음을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물리적으로 적대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풍조는 자취를 감췄지만, 소수의 귀족이나 유력한 신흥 계층의 투쟁의 장이었던 정치가 민주화를 통해 모든 사람을 정치 주체(참여자)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각자 정견(政見)을 가질 수 있게 된 수많은 민중은 오히려 '대의정치'의 참여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유형의 투쟁 방식을 채택하도록 하여, 상대방에 대한 가시적 폭력을 제외한 그 어떤 방법이든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정권을 탈환하거나 유지하도록 했다.


대의제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의제를 '나의 권리를 정치적 대리자에게 일부 위임(양도)하여 그들이 나의 의사를 대신 관철하도록 하는 정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틀린 인식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 정파를 대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 기본적으로/현실적으로 정치가 대화와 합의의 장이 아닌(이는 정치의 이상理想이다) 투쟁과 폭력의 장임은 외면하거나 묵과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사람들이 정치 주체로 활동하는 정치가들을 비난하고, 끝내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이상과 현실은 괴리되어 있기에 현실을 이상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고는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각 정파에 속한 정치 행위 당사자(대의자)와 그 지지자들의 모습을 보라. 저들에게 대화와 합의에의 의지가 있어 보이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유혈을 전제로 한 정치 투쟁만 없을 뿐, '언어'로써 상대방을 음해하고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이것이 폭력을 대체한 정치의 새로운 미덕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러한 정치가들의 태도에 온갖 비난과 비판을 가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맘에 들어하지 않는 정치 세력에 대해 평할 때는 날선 말을 넘어 갖은 욕설을 동원한다. 언어 습관이 거칠지 않은 사람마저도 적대 세력에 대해서는 배제와 제거를 운운하는 판에, 과연 본질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치가 온건한 언사를 통해 상호 이해와 합의를 추구하는 아름답고 화기애애한 장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매우 의문이다. 차라리 정치에 무관심하여 그 어떤 견해도 갖고 있지 않거나, 그리하기를 포기한 이들이 가장 온건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정치가 화합과 합의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가 폭력과 투쟁의 장이었기에 이렇게 되는 것을 막고자 부르짖는 구호와 같다 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며, 정치가 부디 공격과 비난으로 점철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는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그런 순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추구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는 솔직히 의문이다. 언어를 통한 적대와 끌어내리기의 장(場)인 정치를 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야말로 '힘'이라는 생각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정치 상황에 강력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도 초법적인 권한으로 국회를 해산하고, 국회의원을 죄다 잡아다 가두며, 새로이 선거를 진행하여 권력을 재창출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견해를 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무리 정치와 정치인들이 보이는 태도에 염증을 느낀다 해도, 의회 정치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의회 정치를 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쨌거나 극단적이고, 이것이 진정 정치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아니면 다른 부작용을 초래하여 다시 정치를 피가 낭자한 시대로 회귀하게 할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정치의 이상적인 면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정치의 현실적인 면은 애써 외면할 뿐, 정치적 문제를 그런 현실적인 면에 입각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문제고, 무엇보다 이 대의민주정이란 체제야말로 민중은 투표만 하는 고상한 존재로, 이를 통해 선출된 권력자들은 제 손과 입을 더럽혀야 하는 존재로 상정한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점이 큰 문제다.

만약 직접민주정치가 한 나라의 정치 참여 방식으로 채택되어 있다면, 정치 주체이자 참여자인 모든 시민이 제 입과 손을 더럽혀야 스스로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민주정치는 다르다. 이것의 정당화 논거로 활용되는 '직접민주정의 비효율성'이란, (모든 사람이 정치 행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원론적인 얘기 말고) 본질적으로 정치 현장에 있는 모두가 서로의 적대자로 존재하는 것은 사회를 더욱 어지럽게 할 뿐이니 그 대상을 '대리자'의 형태로 한정하자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아무리 국가나 정부, 의회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막기 위해 결성(구성)되었다 한들 어차피 대리 기구에서 입법가로 활동하는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정치적 투쟁 욕구를 위임받았기 때문에 그 자신 또한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를 정리하자면, 일반적으로 정치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 인식은, 그들이 권한 위임자로서 직접적인 정치 행위에 최소 한 발짝은 뒤로 물러나 있기에 생긴 것으로, 실제 정치 현장에 들어가 보면 과연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순전히 저 못된, 또는 간악한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로 비롯된 것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이런 상황이나 인식을 인정한다면, 정치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이상적 목표인 대화와 합의라기보다는, 그나마 덜 극단적인 투쟁을 통한 정치적 의사의 관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정치에 대해 왜곡된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스스로를 끊임없이 정치와 정치인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인데, 그것이야말로 정치를 망가뜨리는 최악의 길이다. 우리 안의 '이뤄지지 못할' 완전무결함을 현실 정치에 강요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정치를 불신하고 이에 환멸감을 느끼게 될 텐데, 정치에 대한 이런 부정적 인식은 끝내 '정치적 존재'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을 비정치적 존재로 전락시킬 것이고, 그렇게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정치에 있어 가장 저차원적인 영역이긴 하지만, '이익을 위한 정치'마저 사람들의 외면을 받아, 그 틈을 타고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실현하려는 세력이 정치와 사회를 장악할 수 있음을 명심하고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결코 나와 모두의 자유와 권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정치에 대한 현실적인 인식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요구되는 시대다. 정치와 정치에 대한 감정이 극단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극단의 시대에 정치에 대한 관심과 바람직한 인식을 놓아버린다면, 이 한국 사회가, 그리고 전 세계의 민주 및 자유적 제도는 분명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질 것이며, 인간이 구축해 놓은 이 시스템이 인간을 향해 칼날을 들이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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