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성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것이 발현될 만한 상황을 전제(필요)로 한다. 즉, 극단성이란 숙주를 찾는 기생생물 내지 바이러스와도 같은 것이다.
극단성이 나타나는 이유로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특정 현상이나 구조에서 극단적 보수성이 지속되는 상황' 또는 '그것이 일거에 해제되는 순간'이다.
극단성은 일반적인 상황에선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이 극한에 내몰릴 때에야 엄청난 생존 본능 내지 공격성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상황(환경)이나 조건에 있는 누군가/무언가가 파괴적이거나 다른 존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그가 처한 상황이 장기간 고착화되어 변화되지 않다가 어떤 요소에 의해 갑작스레 바뀌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근 십여 년간 부각되어 온 교권 침해 문제로 예를 들어 보자.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교사는 과거의 '스승'의 이미지와 인상을 대체하였고, 근대 국가 건설 이후에도 봉건 윤리의 상징 중 하나였던 군사부일체(軍師父一體)가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로 대표되는 유교 윤리는 '윗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사용하여 '아랫사람'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왜곡 및 변질되었는데, 이는 바로 폭력 행사의 정당화였다. 우러러 존경해야 할 교사들은 자애로움과 인내심이 아닌 즉각적 폭력을 위시로 학생들을 학대하였고, 아무리 논다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런 교사의 폭력적 권위에 쉽사리 대항하지 못했다. 이는 학교 내 위계 구도가 그런 식으로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며 비로소 '학생 인권'의 개념이 대두하자 교사가 학생을 대하던 기존 방식은 격렬한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었고, 탈권위주의적 목소리가 확산되면서 끝내 교사의 직업적 위계가 무너지고 이것이 뒷받침했던 폭력 행사가 부정되었다. 이를 대신하여 상벌점제라는 수단이 도입되었으나, 물리적 힘과 권위가 무너진 순간 다른 수단이 강제성을 띠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호시탐탐 제 영향력을 확대하길 원했던 몇몇 학생들은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행동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교권에 대한 공격과 교사에 대한 인격 모독으로까지 이어졌다. 그 어떤 변화 없이 오랫동안 이어진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관계, 그리고 그 유지 방식이 일시에 무력화되자, 억눌렸던 마음과 왜곡된 자기 표출 욕구, 무너진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진 영웅심리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사들이 진작 개별/집단적으로 대각성하여 자신들이 학생들을 대하던 비인간적(물론 이것도 근래에 형성된 가치이긴 하지만.) 방식을 반성하고 회개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으리란 생각은 들지만, 좌우간 '훈육 행위'라는 명목하에 교사가 학생에게 가해 오던 폭력이 그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자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던 극단성이 터져나오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전 연령층을 막론하고 자살률이 세계 1위를 달리는 현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유교적 인재 채용 방식인 과거(科擧)는 그 명맥을 유지한 채 각종 시험으로 이어져 왔다. 합리적인 국정 운영을 명목으로 했다지만 그 기저에는 '경쟁'이 있었다. 내가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간에 위로 올라서려면 누군가를 디딤돌로 삼아야 했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다른 방식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고, 오히려 '능력주의'나 '공정'이란 개념이 확산되며 시험을 필두로 한 경쟁 구도를 합리화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입사하기 위해, 승진하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무한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한국인. 절대 다수는 이 구조에 순응하거나 이를 강화하는 데에 기여했지만, 저 다수에 포함되지 못했거나 포함되기를 원치 않았던 사람들 중 몇몇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흔히 '극단적 선택'이라고 에둘러 일컬어지는 자살이지만, 결국 그것이 선택이건 아니건 간에 '극단적'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현상이 꾸준히 발생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일이 발생하도록 하는 구조가 보수를 넘어 폐쇄적 수준으로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이에 심각한 문제 의식을 느끼고 변화를 모색했더라면 결과는 어떠했을까 싶지만, 아직까지 시험을 중심으로 한 경쟁 구조가 타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체제에서 밀려난 이들이 죽음에 이르는 일은 당분간,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까.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 달리 말하면 자신의 삶과 세상에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극단성을 보일 확률이 상당히 낮다. 이는 그 사람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외부 환경에 영향을 덜 받는 것을 이름)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구조가 개개인에게 부담이나 압력을 상대적으로 덜 가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권위체의 장기간에 걸친 집단 세뇌가 개개인으로 하여금 '난 행복하고,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다'란 식으로 생각하게끔 했을 수는 있으나, 그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사회와 개인의 상호작용이 긍정적인 형태로 이뤄졌을 경우 위에 열거한 극단적인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이 집단이나 사회에 있어 절대적으로 무력한 환경에 있고, 그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다면, 이런 극단성은 언제 어디서 표출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며, 오히려 이런 사회에서는 극단성의 발현이 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것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극단성은 기계 부속을 한두 개 교체하듯 해서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 처치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극단성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집단과 사회에서는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는 강력한 부정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구조와 현상이 단층 맞물리듯 개개인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강하게 부딪혀 어마어마한 힘과 열을 발생시키는 단층과 단층 사이에서 돌덩이 몇 개 빼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듯,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극단성은 결코 개별 사례에 성공적으로 대응한다 해서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대응 방식은 두 가지다. 상당히 큰 부담과 많은 양의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대대적인 수술에 돌입하느냐, 아니면 '어쩔 수 없다'란 이유로 상황을 방치하여 악화일로로 치닫느냐.
내 그리 긴 세월을 살아오지는 않았으나,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특히 근현대 시기 사회 양태와 인간의 행태를 살펴보노라면, 인간은 안타깝게도 아마 두 번째 대응 방식을 채택할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이유로.
만약 그리된다면, 과연 그 결과는?
그건 이 글을 보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