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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y 20. 2023

사람은 다 마찬가지다.

'공중화장실의 비누'에 관한 글을 보고.

몇 년 전,

미국 전전임(제 43대) 대통령인 조지 워커 부시(G.W.Bush)에 관한 일화를 접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고형 비누(의 사용)를 극도로 혐오하여, 늘 액체 비누가 담긴 통을 가지고 다닌다는 얘기였다.

이에 '고체 비누는 불결하다'라거나, '어마어마한 세균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로, 그의 행동에 공감을 표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나도 그런가 싶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간과했던 것은

고체 비누도 비누라는 사실이었다.

비누의 존재 이유는 세균을 없애고, 불순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비누를 세균 덩어리 취급하여 기피한다니,

이렇게 비합리적인 처사가!

이를 인지하고 나니,

어디서든 손을 씻을 때엔 비누를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누 얘기를 꺼낸 건,

아까 공중화장실의 비누에 관한 게시물을 하나 봤기 때문이다.

역시나,

그것의 사용을 꺼린다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누가 어떻게 썼을지 몰라 불안하다'란 이유를 댔다.


고체 비누 사용을 꺼렸던 건, 그게 비누란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고체 비누가 더러울 것이란 '인식' 때문이었다.




유난히 깔끔 떠는 사람이 있다.

자기 물건이 아니면 뭐 하나 안 만지려 하고,

위의 얘기처럼, 화장실 비누조차 '더러울 것 같다'란 이유로 안 쓴다.

손 소독제 사용이 생활화된 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정작 카페에 비치된 휴지는 잘 쓸 텐데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깔끔을 떤다 해서, 무균 상태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연계에 '균 없는 환경'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균은 당신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존재한다.

이를 인지한다면,

'깔끔하고자 하는 욕구'란, 그에게 자기만족감을 선사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본질적으로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잘 안 씻는 사람을 예찬하는 건 절대 아님을 아시리라 생각한다.)


사람의 성품도 이와 같다.

인간은 자기편향적인 존재라, '나'를 도덕적으로 가장 고결한 존재로 상정하고는 한다. 꽤나 자주 말이다.

아무리 자기 객관화를 한다고 한들, 스스로의 인식의 늪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마음에 낀 때도,

마음에 우글거리는 세균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없앨 수 없다.

그러므로, 내게 세상 만사나 흉악범의 심판자가 될 자격은 없다.


한편으로는,

경제 수준이 높고 소비력이 높으면

마치 스스로가 교양 있고, 꽤나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마찬가지다.

내가 한 끼에 7-8천 원짜리 음식을 먹든

저 사람이 한 끼에 15만 원짜리 식사를 하든

내가 사람이 아닌 것도 아니고

저 사람이야말로 사람인 것도 아니다.


사람은 어차피 사람이며

다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든,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종교나 사상을 신봉하는 사람이든,

어디에 살든지,

'개쓰레기'처럼 살든지,

가난에 허덕여 당장 한 끼를 걱정하든지,

다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깔끔을 떨어 봤자 세균 없는 삶의 추구가 (실질적으로)별 의미를 지니지 못하듯,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인 것 같고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불신하거나 경계하고, 기피하는 것도 별 의미가 없지 않을까?

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더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점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면

이 팍팍하고도 부정한 기운으로 가득차 보이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너무 이상적인가?




나는 오늘도 나의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뉘우친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판관이 아니다.

그러니

당신도 그 누군가의 판관이 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다른 이의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어렵.

울 것이다.

그러니 이리도 짜증이 나고

세상도 개차반이겠지.

그렇지만,

그러니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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