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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06. 2023

오늘은 우리, 내일은 그대들

달라진 시내버스 시간표, 그리고 지방 소멸.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

내 입장에서 공휴일이나 평일은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확실히 다른 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시내버스 시간표'다.


안 그런 곳도 있겠지만, 주말과 평일의 시내교통 운행 횟수가 다른 지역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평일에 비해 유동량이 적은 게 사실이고, 또 누군가는 쉬어야 할 테니까.

서울에 있을 적에도 지하철 운행 간격은 평일에 비해 주말이 조금 더 길었다. 빨리 오면 4-5분에 한 대일 것이 7-8분 간격을 두고 오는 정도랄까? 물론 그마저도 운행 횟수가 많은 노선에 해당되는 얘기라 비교적 적게 다니는 노선을 타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경우, 대학 생활 당시에도 평일과 주말 시간표가 다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타고 다니는 버스는 인근 타지역까지 들어가는 버스라 상대적으로 운행 차량이 많았다. 이걸 타려면 1km는 걸어 내려가야 하는 것이 늘 귀찮은 점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길을 내려가는 것이 버거웠던 동네 노인들이 불만을 표하여 시청에 민원을 제기한 결과 마을을 경유하여 시내로 나가는 버스 노선이 추가되었고, 그렇게 하루에 대여섯 번 정도 버스가 오갔다.


문제는 2020년부터였다. 방역 때문에 한동안 버스 운행이 전면 중단되고야 말았다. 안 그래도 시내로 나갈 수 있었던 버스 노선이 달랑 두 개였고, 그마저도 경유지와 운행 간격이 달라 잘 골라타야 했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무의미해져버린 것이다. 기억하기로는 봄부터 여름까지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나는 정말 꼼짝없이 도시와 단절된 채 집에 갇혀 지내야 했다.


몇 달 후, 시내버스 운행이 비로소 재개되었으나, 그 사이에 대대적인 개편이 진행되었고, 지역 주민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바뀐 버스 시간표가 게시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평일/토요일/일요일 및 공휴일에 따라 버스 운행이 달라졌는데, 가장 많이 다니는 버스는 20분에 한 대, 그 다음으로 다니는 버스는 30분에 한 대 꼴이었으며, 토요일에는 각각 40분과 45분,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무려 55분과 60분(...) 간격으로 조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밖으로 나가는 것에 지장이 생겨 시청에 건의를 했으나, 정작 돌아온 것이라고는 '해당 노선은 비수익 노선으로서...버스 회사에 건의하시기 바랍니다.'란 식의 매우 무미건조한 답뿐이었다. 버스 회사에 전화해서 왜 이런 식으로 시간표를 짰느냐고 말하면 무슨 소용일까? 이런 문제는 시 대중교통과에서 해결해 줘야 하는 문제라 생각하여 민원을 제기했건만, '우린 모른다'란 식의 답변을 받고 나니 김이 확 빠졌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 시간표는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다.




오늘은 6월 6일 현충일.

나갈까 말까 고민하다 마음을 먹고,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향했다. 12시 40분에 출발하여 마을을 경유하는 버스. 시내에는 1시 25분쯤 도착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을 들어가는 버스는 5시 조금 넘어서 있는 관계로 네 시간 정도를 밖에 있어야 했지만 시간이야 어떻게든 때우면 그만이니 자주 가는 카페로 향했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친구 녀석에게 나오라 하여 두 시간 조금 넘게 같이 있었다.


시원하게 노래방에서 열 곡 정도를 부르고 나왔을 때가 네시 20분쯤이었다. 아무리 빨라도 5시 20분은 돼야 차를 탈 수 있었으므로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했는데, 어차피 날이 날인지라 동일 노선의 다른 차를 탈 수도 없었으므로 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친구가 같이 있어 주겠다 해서 이리저리 걷다 보니 시간이 지났다.


시장 인근에서 버스를 탔을 때가 거의 5시 20분이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두 명의 노인'이 서로의 앞뒤 자리에 앉았다. 면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라. 그런데 앞의 노인이 버스가 너무 안 와서 한참을 기다렸다느니, 중간에 와야 할 버스가 안 왔다느니, 네시 십분부터 나와 있었는데 버스가 한 시간 넘게 안 왔느니 하며 불만을 표했다. 그 뒤의 노인도 이에 공감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보아 하니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버스를 타고 끝까지 갈 모양이었나 보다.


'네시 반 버스' 어쩌고 하는 것을 들으니 버스 운행에 불만을 표했던 노인은 평일과 토요일, 그리고 일요-공휴일 시간표가 다른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내가 알기로도 그쯤에 그 노인이 머물렀던 정류장을 지나치는 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버스 기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불만이 있으면 시청이나 군청에 건의하라며 성토하기 시작했고, 일순간 두 노인은 조용해졌다. 이윽고 앞의 노인은 궁시렁대며 버스가 안 다는 말을 되풀이했고, 다른 노인은 건의해 봤자 뭐가 달라지냐며 웃었는데, 이를 들은 버스 기사는 '그러면서 뭘 그러냐'란 식으로 응대했고, 평일과 공휴일 시간표가 다르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두 노인은 그후로 조용히 대화를 이어나갔다.




나야 뭐 마을을 거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부러 기다린 것이긴 하나, 어쨌든 중간에 다른 버스를 타려 해도 꼼짝없이 한 시간은 어딘가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 노인들과 결국 똑같은 처지인 것이다. 비록 두 노인 중 한 명이 시간표를 착각하여 불만을 표하는 바람에 이에 발끈한 기사가 괜히 시끄러운 소리를 내긴 했으나, 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나조차도 한 시간을 '뻐겨야' 했으니.


버스 기사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는 그저 시간표대로 버스를 몰았을 뿐이니까. 더군다나 이런 공휴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 부모님도 일터로 향하신 판에, 그라고 안 쉬고 싶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두 노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좋아서 살든 피치 못해 살든 그들 그 버스를 타야만 본인들의 집으로 갈 수 있고, 버스를 타러 부지런히 다녔을 것임에도 원치 않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 비로소 자신들의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그마저도 어떤 촌동네를 거쳐서 한참을 돌아 가는 버스를 타야 했으니 얼마나 귀찮았을까?


버스 기사가 그들에게 버럭 성을 낸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버스 기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버스가 안 왔다며 불만을 토로한 그 노인이 잘한 것도 아니었다. 잠자코 그 상황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멀리까지 가야 했던 승객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그들이 주고받는 말이 얼마나 쓰라리게 다가오던지.


나는 젊다. 비록 상황의 문제로 집을 나가지는 못하고 있으나,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촌과 이 작은 도시를 떠나 더 큰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노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왔을 것이고, 다른 곳으로 떠난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에게, 더군다나 군 단위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이사란 불필요한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사실 이는 그 노인들만의 상황은 아니다. 우리 마을에 거주하는 이들도, 그 노선이 지나가는 일대에 거주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다. 그 노선이 아니면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그마저도 추가 요금을 내고 다녀야 한다. 차가 있으면 몰라도, 점점 고령자의 운전 시 안전사고 발생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판에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도 모르는 것이고...촌에 산다 하여 늘 그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법은 없는데, 그러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만 하는 것이 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 특히 노령자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은 참으로 냉혹한지라, '비수익 노선'이라는 이유로, 새로 개발된 지구(地區)에 더 많은 차량을 배치해야 한다는 이유로 외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전보다 더욱 접근성이 떨어진 채 불편한 삶을 영위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가 그들을 상대로 무상 집단 이주를 시켜줄 것도 아니니 그들은 어쩌면 더는 두 다리를 못 쓰게 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그런 생활을 하게 되겠지.


정작 도심지라 해서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어차피 외곽이 먼저 소멸할 뿐, 인구 유입 유인이 없는 지역이라면 언젠가는 시내 교통 체계가 크게 훼손되어 끝내 운영이 중단되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광주광역시를 제외한) 전남도 인구 1위 도시인 목포의 시내버스 운영이 중단됐겠는가? 그곳의 인구는 20만 명이다. 엄청 많진 않지만 적은 숫자도 아니다. 그런데 그곳의 버스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이게 가능한 상황인가 싶은데, 이미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 1-2년 전에는 인구 90만의 대도시인 성남시의 시외버스터미널 운행이 중단됐으니, 사람 넘쳐나는 도시라 할지라도 어딘가에는 자꾸 구멍이 나고 있는 것이다.


하라는 대로 할 뿐인 기사도 그런 불평불만은 억울했을 것이고, 그저 제 할 말을 했을 뿐인 노인들도 기사의 성질머리에 불쾌한 마음이었겠지만, 이는 위에도 말했듯 그들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다. 그 구조의 피해자가 특히 외곽 지역 또는 타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인 것일 뿐이고. 요즘에는 생각 없이 "누가 거기 살래?"라는 식으로 말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조롱하고 죄인시하는 이들이 적잖은데, 본인이 원해서 그런 곳에 살기로 한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게 불편한 환경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뜰 수 있으면 진작에 떴겠지. (다른 말이지만 그런 이들을 인터넷 환경에서 접할 때마다 도대체 역지사지와 추기급인이란 게 의미가 있긴 한가 싶다. 출산율 0명 시대에 대도시라고 언제까지 무사할까?)


이 문제의 도화선은 명백히 방역이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은 냉정히 말해 지방 소멸이다.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 '비수익 노선'의 운행 횟수는 감소했을 것이고, 사람이 유입되는 곳에는 버스가 계속 다녔을 것이다. 더군다나 막차가 10시를 넘지 않는 상황이 도심지라 해서 엄청 편리하다?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살건 시간차만 있을 뿐 언젠가 부자유한 시기를 맞이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을 먼저 맞이하고 있는 것이 서글플 따름.


그 노인들의 대화야말로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나도 집에 마음대로 못 가고, 도심지에도 곧바로 못 나가는 상황이 매우 못마땅하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그런 곳'에 산다는 이유로 받아들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곳을 떠난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고, 그러는 동안에 구조적 모순은 더욱 심화되어 언젠가 이곳저곳에서 폭탄 터지듯 각종 부작용이 나타날 텐데,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면서도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광역시라도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 적잖지만, 광역시라고 해서 살릴 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만약 주변에 광역시가 있는 시군 거주자래도 이런 상황이라면 아예 인근 광역시로 가기보다는 서울이나 경기, 인천 지역으로 가는 쪽을 택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광역시의 미래조차 불투명하다는 것을. 그렇다면 읍면 지역을 시작으로 지방의 시군 지역부터 비기 시작할 텐데, 그럼 남은 사람들이 죄다 어디로 몰릴지, 이미 과포화 상태인 수도권에 사람이 계속해서 유입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 당장 취할 수 있는 조치로는 무엇이 있을까?

...쉽게 답을 할 수가 없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미래가 불확실해 희망을 품는다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시대나라의 존망을 염려해 봤자 달라지는 게 있나 싶지만, 피부로 와닿는 이런 상황을 직면할 때마다 뜻하지 않게 우국충정지사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느낀다. 그 옛날, 나라 망했어도 삶은 이어졌건만, 이젠 오히려 국가도, 개인의 삶도 끊길 위기가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손을 대서 해결할 문제가 있지만, 손을 대도 너무 진행되어 도무지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후자에 해당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기민하고 신속하면서도 또한 치밀한 판단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면 천만다행이나, 불가항력적인 문제 앞에 인간은 늘 무력하지 않았나. 아무리 인간이 앞을 향해 달려왔다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한쪽(비관적 태도)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데다, 진행될 대로 진행되어 좀처럼 건드릴 수가 없는 문제가 돼버린 지방 소멸을 생각하면 과연 우리에게, 한국인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지, 아름다움까진 아니더라도 낙관할 만한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아무리 좋게 려 해도 한숨이 절로 난다


나의 내일은, 한 달 뒤는, 1년 뒤, 5년 뒤, 10년 뒤는 어떠한 모습일까?

그리고 나의 고향은, 어떤 모습으로 앞날의 나를 맞이할까?

내가 나고 자란 이 나라는, 지금의 모두와 후손들에게 과연 살 만한 나라로 남아 있을까?


나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 문제를 두고, 공연히 고민만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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