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Jun 05. 2023

정말 그런 걸까?

그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친구 K와 메신저 앱으로 얘기를 주고받던 중, 그가 대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앱에서 본 글을 캡처하여 내게로 보내 왔다.

그 글의 주제는 '행복'. 글쓴이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또 해 왔음에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며, 그 원인을 SNS로 꼽았다. SNS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행복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도록 했다는 것이었다.


그 글을 읽고 행복의 '기준'에 대해 구구절절 내 견해를 피력한 나에게, K는 보면 볼수록 말을 잘한다고, 자기 생각을 표현할 때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없다고 뜬금없이 칭찬을 해 왔다(...). 이게 무슨 흐름인가 싶었지만 나의 장점이란 것을 포착하언급해 주니 고마웠는데, 그 다음엔 난데없이 '이제 내 장점을 말해 달라' 하는 녀석의 메시지가 도착했고, 나는 이게 뭔가 싶어 피식 웃으면서도 이러이러한 것이 너의 장점이라고 얘기를 해 주었다.


K의 장점이란, 뭔가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으면 별 망설임 없이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다만 종종 그 기준이 다소 높아 수고로움을 동반해야 함에도 '뭐 어때?' 마인드로 제 할 일을 하고 뒷처리까지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뭐 하러 저렇게까지 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저렇게라도 하고 싶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그의 장점이 바로 이 '과감함'하면서, 인류의 생존을 뒷받침해 온 두 가지 요소로 조심스러움과 과감함이 있다고, 그럼에도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 했던 것은 과감함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 K는 이래서 인간이 유전자적으로 진보 또는 보수로 생각이 갈리는 것이 아니냐 대답했고, 나는 실제로 뇌의 차이가 개인의 정치적 관점을 좌우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있다 말했다.


그런데,

러고 나니,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는 같은 중고교를 다녔던 동창 W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자 중학교였고, W는 중학교 1학년 1학기에 같은 반으로 전학을 왔다. 덩치는 크지만 꽤나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이런 점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학급에서 W는 소위 '노는 애들', 나쁘게 말하면 양아치 학생들의 표적이 되었다. 그 자식들은 W를 은근히, 때로는 대놓고 괴롭혔고, 성격이 유순했던 그는 발악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그들의 망동에 당할 뿐이었다.


나는 W와 어울려 지내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친구의 가정 형편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가계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모든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W가 늘 주눅이 들어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어려운 상황이 그에게는 제약이자 족쇄로 작용했으리라.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고, W와 나는 같은 고교에 들어갔다.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W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극우 사이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때엔 학생이 이런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조롱의 대상이었고, '학습'에 의해 그런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W 또한 주위 동급생들에게 비난을 받았다(정작 적잖은 학생들은 그런 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그곳에서 비롯된 여러 컨텐츠를 재미의 대상으로 여겨 아무렇지 않게 소비했다.).

이를 알고 있었던 나는, 하교 후 W와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왜 그런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적이기는 어렵다. 그리고 진보주의자였던 이가 보수주의자가 될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에는 그저 '그건 좋은 행동이 아니니 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이를 돌이켜 보면, W는 자신의 상황이나 처지를 비관했고, 그 부정적 에너지를 인터넷 활동으로 해소했던 것 같다. 하필 그 사이트가 저 사이트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10대였을 때만 해도 (한국)진보주의의 투사와 같았던 나는 그 친구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 그를 나무랐지만, 그가 했던 저 말만큼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왜일까?


독일의 사회철학자이자 혁명가였던 칼 막스(Karl Marx)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며 자본주의 체제는 역사적 필연성에 의해 반드시 붕괴할 것이고, 이를 견인하는 주체는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자 계층이라 주장하며 자본가를 위시로 한 지배 계급(부르주아)을 타도함으로써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역설하였다.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의 대립, 그리고 생산 수단을 소유하지 않았음에도 현 체제의 존속에 기여하는 '프티 부르주아'의 존재. 내가 아는 건 이 셋뿐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서 이 단어를 처음 접했다.


그것은 바로 '룸펜'.

노동 계층에 속하지만,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는 데에 동참하지 않는, 과격하게 말해 '버러지 같은 존재'를 지칭하는 말이 룸펜이었다. 막스식(式) 사상에 의하면 룸펜은 각성을 통해 계급투쟁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없는, 오히려 혁명에 반대되는 존재로서 자본가 계급과 마찬가지로 타도되어야 할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실제로 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은 소수의 노동 계급 출신을 제외하고는 절대적으로 '프티 부르주아'에 해당하는, 장 폴 사르트르가 '위선자'라 칭했던 지식인이었다. 공산주의적으로 지식인은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역할이 아닌 이를 더욱 가속화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부정적 존재가 아니던가?('혁명 시기'를 돌이켜 보라. 얼마나 많은 지식인이 '반동'으로 몰려 비굴함을 강요당하고 목숨을 잃었나?) 그런데 그런 지식인들이야말로 대거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노동자는 먹고 사느라 여념이 없었다. 시대의 조류가 그들을 휘몰아쳐 체제의 변혁의 한가운데에 있게 했을지는 몰라도, 노동자들이 바라는 건 자본가 타도니 어쩌니 하는 것보다 그저 당장 먹고 살 걱정을 덜었으면, 내일은 조금이라도 적게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을 터. 그런 그들을 선동하여 체제를 전복하려는 공산주의자들의 강력한 움직임이 먹혀들긴 했지만, 정작 공산주의 사회가 와도 노동자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 그들은 '노동자 계급의 독재'를 표방했던 당에 저항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혁명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혁명이 훗날 그들에게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선사해주었는가는 다른 문제지만.




W가 이런 생각까지 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내게는 W의 말이 참 아프게 와닿았나 보다.

가난한 사람이 진보적이긴 어렵다는 그 말. 진보주의가 절대선인 것도 아니고, 진보주의가 황금률인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인류가 자유와 해방, 평등의 방향으로 나아온 것은 사실이고, 사회는 진보한다고 믿었던 이들의 열망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음을 생각할 때, W의 그 말은, 어쩌면 처지의 개선을 위해 그 누구보다 강하게 몸부림쳐야 할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사실은 그 누구보다 변화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그들이야말로 사회의 변화가 삶의 획기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변화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장밋빛 미래와는 달리, 가난한 이들에게 있어 '삶'이란, 지금보다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것일 뿐, 변화란 사치이자, 지금 이 삶의 기반마저 위협할 수 있는 폭풍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라면, 변화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차원에서 그들에게 오히려 위협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W가 주변 동급생들에게 그리도 비난과 조롱을 당해 가면서도 왜 그 사이트에 그리도 골몰했는지, 그리고 내게 가난한 이와 보수주의의 관계에 대해 그리도 강경하게 얘기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진보주의자라 하는 이들의 개혁, 혁신, 변화에 대한 목소리가 정작 자신에게는 와닿지 않았노라, '사회는 진보한다'던 누군가의 신조는, 정작 내 삶을 나아지게 하지 못했노라.


그의 말에는, 이런 생각이 담겨 있었던 게 아닐까.




친구 K와 행복의 기준에 대해 얘기하다가, '기준'에 대한 얘기로 주제가 옮겨 갔고, 그것이 서로의 장점에 대한 얘기로, 끝내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기질적 차이로 옮겨간 것은 순전히 우연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연구 결과'를 들먹이며 상이한 정치적 입장을 지닌 이들에게는 태생적 차이가 존재했다고 말한 한 시간 전의 나는, 홀연히 떠오른 W의 말을 곱씹으며, '그것이 정말 맞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지게 되었다.


W가 그런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은, 그의 태생적 성향 때문이었을까?

만약 W가 여유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과연 그 사이트의 회원으로 활동했을까?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 W는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해진다.




최종수정 : 2023.06.06. 10:51

작가의 이전글 이해하지 못하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