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도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는 이 책. 보지는 않았어도 책 제목만큼은 수많은 한국인이 들어 봤으리라 생각한다.
찾아 보니 이 책은 2005년에 다시 나온 이후, 한동안 절판 상태였다가 무려 20년 가까이 지난 올해 6월 1일에 다시 출간된 것인데, 이로 보아 이번이 아마 세 번째 출간이 아닌가 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맞는 말이면서도 다 맞는 말은 아니다. 곧 틀린 부분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 틀린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자가 평생을 강조하고 또 역설했던 '인간다움'이란 가치는 사람이 살면서 나의 인격을 위해, 그리고 타인과의 건전한 관계를 위해 숙고해야 할, 또한 함양할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점으로, 공자 사망론(?)을 제기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
다만 맞는 부분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공자의 말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여겼던 동양, 특히 한반도의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 행정가가 이를 사회 전반에 통제 논리로 적용하면서 엄청난 폐단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사람들의 인식을 장악하면서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도무지 유교적 틀 이외의 사고 방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으로, 김경일 교수가 지적했다시피 현대 한국의 독재(권위주의) 정권이 이런 유교 윤리를 기반(부모에 대한 효 - 국가에 대한 충)으로 사회를 통제했다는 점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공자란 인물 자체가 문제였을지 모른다. 공자는 춘추 시대의 관점으로 봐도 꼰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깟 신분제적 질서(당시 사람들은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살았겠지만.)가 뭐라고, 사람의 가치와 역할이 그런 혈통 세습적 요소로 좌우돼야 했단 말인가? 그런데 공자는 주나라가 동쪽으로 수도를 옮겨 가면서 천자를 중심으로 한 계급질서가 흔들리자 이를 문제시하며 '예(禮)', 달리 말하면 '질서'의 회복을 외쳤다. 새로이 강자로 등장했던 제후와 대부 계급에 있어 공자의 원리원칙적 발언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사실 공자의 학설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하나의 외로운 목소리로 존재할 때 그 무엇보다 빛난다 할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당시 사회에는 도리(道理)라는 것이 무너져 있었는데, 그 도리는 각자가 맡은 바 내지 주어진 바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었고, 그의 관점으로 당시 중국 사회는 이런 기본적인 질서가 무너져 있었기에 그리도 인의예지를 강조했던 것이 아니겠는가?
한편으로 이는 '제자백가'에 속한 모든 사상(가)도 마찬가지다. 묵자의 보편적 인간애는 그 어느 때보다 파편화된 사회를 '사랑'이란 가치로 묶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고, 법가의 신상필벌은 법의 엄격하고 평등한 집행과 적용을 전제로 하기에 부정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분명 필요한 가치로, 다른 말이지만 그리도 질서 회복과 강한 법률의 집행을 외치는 한국인에게 있어 환영받을 만하다.
그러나 결국 그 여러 사상 중에 하나가 주류가 되는 순간, 아무리 일리 있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 주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묵살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는 그렇게 하나의 가치에 지배당해 끝내 생동감과 활발함을 잃고 경직되고 만다. 그것이 바로 일원주의의 비극이다. 생각해 보라. 진(秦)이 왜 망했나? 그 잘난 법가 사상의 강력한 적용 덕분이었다. 또한 가톨릭교가 왜 유럽 사회에서 절대적 지위를 상실했나? 제 잘난 줄 알고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을 탄압한 것도 모자라 세속에 계속해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꽤나 매력적인 사상이었던 '유가 사상' 또한 바로 그 일원주의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따지고 보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에서 저 '공자'를 대체할 단어는 이 세상에 수두룩하다. 예수, 부처, 알라(또는 무함마드), 신자유주의, 복지국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심지어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까지. 인간이 결함 있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그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모든 생각에도 결함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란 도발적 책제에는 맞는 점과 틀린 점이 고루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극단적인 듯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이 죽어야 지구가 산다'는 구호나 책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공자도 인간이었고, 공자를 떠받들어 온 이들도 인간이었으며, 그 인간이 자신들의 생각대로 사회와 국가를 운영하려다 파탄을 냈으니 저런 책이 나온 것일 테고, 막 언급한 '인간 멸절론(?)'의 경우, 끝을 모르고 발전해 온 과학기술 덕에 인류는 전에 비해 아주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정작 그 과학기술은 환경 파괴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그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이용해 온 존재가 바로 이 탐욕스러운 인간이니 어떤 문제든 생기지 않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는 의미다.
난 물론 한국 사회의 이 경직성과 수직성이 유교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공자나 맹자의 가르침 자체는 매력적이고 또 괜찮다고 보지만,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추구되는 것과 사회적 차원으로 강제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며, 유감스럽게도 이 유교 문화, 특히 유교 분파의 하나인 성리학적 질서가 이 한반도를 강하게 휘어잡은 나머지 왕조 통치가 종결되고 민주공화정이 들어섰음에도 사회·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수구꼴통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김경일 교수가 지적하는 바도 이와 같다. 다만 그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중대하고도 심각한 폐단을 궁극적으로 '공자'의 탓으로 돌리는데, 한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에 공자의 기여분도 분명 있겠으나, 사태의 원흉은 그 누구보다도 유교(성리학) 일원주의를 주창해 온 과거의 꼴통들이며, 봉건 통치 질서가 붕괴되었음에도 그 형식과 내용은 여전히 개개인의 DNA에 각인되었다는 점을 악용하여 민주주의와 자유정치를 훼손한 현대 한국의 지배 계층이 그 뒤를 따른다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재차 강조하건대, 이는 비단 유교와 공자뿐만 아니라 이슬람주의, 가톨릭 절대주의, 개신교 원리주의, 불교 근본주의, 공산주의, 신자유주의, 엘리트주의, 대중주의 등 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또 지금까지 존재해 온 여러 사상과 이를 절대시해 온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다.
그러므로 결론은 뭐다?
"인간이 문제다."
최종수정 : 2023.06.10.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