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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16. 2023

늙음이 노인의 것이라고만 생각지 말라

후두둑 빠지는 당신의 머리카락이야말로 늙음의 증거이니.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의지가 아닌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다. 미용실만 가면 늘 '스포츠 머리' 내지 '6mm'로 머리를 잘랐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종종 머리를 기르긴 했지만 그저 보통 수준이었고, 적어도 독특한 스타일의 머리 모양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짧은 머리로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담임 교사에 의해 교실 앞으로 불려나와 'OO이처럼 머리를 자르라'라는, 권장 머리 모양의 모본(模本)이 되었다.

그게 불과 2010년대 초의 얘기다.


이젠 일이십 년 전 얘기지만, 자주 갔던 미용실 원장이 머리를 자를 때마다 머리숱이 많다는 얘기를 했다. 그때의 난 머리숱이 많다는 게 좋은 건지도 몰랐거니와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어린 애가 머리숱 걱정을 해서 무엇하랴? 그저 학교나 다니고 공부하고 부모가 보내면 학원 가고 가끔 용돈으로 500원짜리 컵떡볶이를 사먹지 않으면 몇백 원에서 천 원대 사이의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먹는 게 일이지. 다른 말이지만, 나는 아이라면 공부나 학원 생각에 진절머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빌어먹을 교육열.


힘겨웠던 10대를 떠나보내고 대학생이 된 나는 한 동아리에 거의 4년을 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선배 하나가 동아리로 복귀했는데, 그는 '탈모 치료 전도사'로서 다른 선후배들에게 탈모 예방 조치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다니며 사람들의 머리 라인을 보며 '괜찮다', '위험하다' 등의 진단을 내렸는데, 그건 그에게 남모를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픔이 무엇인고 하니, 머리가 이른 나이에 빠진 나머지 군 복무 당시 못돼먹은 선임들이 탈모를 핑계로 그 선배를 갈구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 머리를 꽤나 많이 심었다고 했는데, 약점으로 보이는 하나만 눈에 보여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게 이 나라 사람들의 고질적 병폐이자 습성인지는 몰라도(뭐, 말을 그리 해서 그렇지 당연히 인간 일반의 문제일 것이 생각한다.), 얼마나 머리로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렇게나 탈모 예방을 외치고 다녔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머리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대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문제는, 2019년 5월 무렵이었다.


문득 앞머리를 손으로 들어 이마 라인을 보았는데, 전에 비해 머리가 후퇴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형적인 'M자 탈모' 증상이더라. 그래서 생애 최초로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긴 선이 달린 소형 카메라로 내 머리를 훑었고, 뭐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탈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으며, '지루성 피부염'이 있다고도 했다. 그제서야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아, 나도 이제 머리가 빠지는구나.

그러나 약 복용에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던데다 이 약까지 먹으면 아예 살림살이가 거덜나겠다 싶었던 나는 약을 먹자는 의사에게 좀 생각해 보겠다고 말을 했고, 그렇게 피부염 약과 바르는 약품만 처방받아 가져왔다. 정작 그 약은 먹지도 않았고, 바르는 약도 몇 년을 묵혀 두었다가 이제서야 열심히 머리에 뿌려대고 있다.


2020년 초, 가르마 펌이란 것을 하러 미용실에 갔다. 머리는 잘 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앞머리 중간 부위가 유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살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아, 진짜인가?? 머리가 빠진 건가??' 탈모에 대해 잊은 채 잘 살아왔건만, 옛날에 비하면 휑한 수준인 앞머리 부분을 보니 비로소 이게 진짜 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라.

더 두었다간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판단하에 드디어 다시 피부과를 찾았다. 의사는 큰 렌즈로 내 머리를 훑더니 '당신이 생각한 대로 탈모'라는 말을 했다. 아, 나의 머리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니, 이럴 수가. 그러나 이번에는 약을 처방받을 생각이었기에 처방을 앞두고 있었는데, 의사에게서 한 통에 5만 원이 가까이 한다는 말을 듣고서 두 번째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무슨?!


방법이 없었다. 금전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머리를 지키기 위해 나는 눈물을 삼키며 약을 구매했고, 한동안 꼬박꼬박 먹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것이 노화구나.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늙는 것이구나. 왜 사람들이 머리 빠진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누구는 가발을 쓰고 다니는지 비로소 알았다. 한편으로는 그냥 받아들이고 살면 마음이 편해질 테고, 어차피 빠질 머리인데 그 속도를 늦추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으나, 원통하게도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한 사람을 평가하는 1차적이고도 절대적인 기준이 '외모'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을 타러 다녔으며, 정기적으로 해 왔던 헌혈도 포기했다. 헌혈 금지 약물에 전립선 치료제와 탈모 치료제가 해당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두 약은 호환된다.).


약을 1년 정도 먹었을까? 아니, 1년을 못 채웠구나. 결국 복용을 중단했다. 왜냐, 금액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올림한 가격이긴 하지만 1개월에 5만 원이면 1년에 60만 원이다. 누군가는 기꺼이 쓸 돈이겠지만, 당장 무소득인 학생 입장에서 아무리 머리가 빠진다고 해도 부모님께 그런 액수의 지출을 요구한다는 것이 너무나 죄스러웠다. 그리하여 나는 '사람을 살리는 헌혈을 재개하기 위함'이란 명목으로 이를 합리화했고, 그 이후로 약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넘게 흘렀다.




어느 날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윽고 머릿속으로 손가락 세 개를 넣어 보았다.

'아, 이런….'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음을 직감했다. 모발 굵기는 상당히 얇아졌고, 빽빽한 옆머리와 뒷머리와는 달리 윗머리는 듬성듬성한 느낌이 났다. 동생에게 머리를 한번 보라고, 어떻냐고 물으니 다른 부위와 차이가 나는것 같다는 아주 미적지근한 대답이 돌아왔고, 엄마나 동생이나 '뭐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느냐'란 식으로 나를 구박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100%잖아.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이잖아. 그래, 결국 약을 끊은 것이 문제였구나. 머리가 이렇게나 많이 빠졌다니….

약을 먹는 것이 현명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돈 없는 이의 설움이 이런 것이겠거니 하면서 살았다. 물론 앞머리의 가장자리 부분은 계속해서 파이는 느낌이었으나 어떻게든 그럭저럭 지내 왔건만, 막상 윗머리가 비니 얘기가 달랐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머리가 되겠다 싶었다. 도대체 내 조상은 왜 탈모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날 이리도 괴롭게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왜 그 유전자가 하필 아빠에게 내려와서 아직 서른도 안 된 내게 이런 시련이…? 아, 아, 아…….


고민을 거듭하다 이대론 정말 안 되겠단 판단으로 다시 피부과에 갔다. 처음 갔을 적엔 한창 COVID-19에 대한 공포감이 강했을 때임에도 사람이 많았는데, 이번엔 웬걸?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자마자 처방전을 받아 왔다.

으, 피 같은 돈. 이걸 다시 쓰게 되다니….

한편, 어느 순간부터 머리에 뾰루지도 자꾸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루성 피부염까지 있는 것 같았다. 지루성 피부염도 탈모 증상 악화에 크게 기여한다더니, 그래서 더 빠졌던 건가? 안 그래도 머리가 금방 기름지게 되는 게 이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서야 위에 언급한 바르는 약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몇 년 묵은 약인가? 폐기하러 약국에 갔더니 전문의약품이란 이유로 그냥 갖고 있으란 약사의 말에 도로 갖고 온 이 약을 이렇게 쓰게 되다니.

'두피, 2회'라 적힌 글씨를 따라 적정량을 뿌렸지만 뭐가 딱히 나아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기적으로 사용하는 중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약을 다시 먹은 지 이제 3개월째다. 차도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이 약을 먹는다 해서 빠진 머리가 도로 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나의 정수리 부분은 옛 위용을 잃은 채 풀이 뽑혀나간 것처럼 비어 있다. 느껴질진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면서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탈모라니, 탈모라니!!!!! 으아아아아아아아ㅏ아!!!! (엉엉)

안 그래도 몇 달 전에 코미디언 윤성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모델 출신으로서 그렇게 인물 좋은 사람이 머리가 없단 이유로 뭔가 모자라 보이는 느낌이 든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주는 직업이다 보니 외형적으로는 저평가받는 게 한국 코미디언의 현실이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윤성호 그는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이 더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함을 알았을 때 얼마나 좌절했을지, 심지어 아예 머리를 밀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씁쓸했을지가 떠올라 마음이 아플 지경이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 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작가 주호민이 면도기로 머리를 미는 모습을 보면 저항 없이 웃음이 나면서도, 지출을 포기하는 대가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면, 미래의 내가 그와 같은 모습이겠지 싶어 쓰디쓴 헛웃음이 난다.


아,

도대체 네안데르탈인은 무엇 때문에 탈모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도 모르고, 현생 인류는 그들과 교배하여 그 후손에게 이런 저주를 물려주었으니, 이런 통탄스러울 데가 있나….




나는 10대 때부터 10대로서는 겪을 일이 없는 중증 척추 질환을 앓아왔기 때문에 노화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느껴서 알고 있다(척추 질환은 허리를 편 채로 걷는 존재의 숙명인 동시에 노화와 직결된 병증이다.). 더군다나 어머니께서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다 보니 치매의 심각성에 대해 매번 절감하게 되는데, 모든 사람은 늙고, 결국 죽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왜 그리도 늙음을 두려워하고 또 혐오하기까지 하는지 알겠더라. 노인 혐오가 사회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지만, 얼마나 서글픈가? 노인이 된다는 것이. 또 얼마나 비참한가? 내 마음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심지어 정신마저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인간은 마치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그런 사람들은 본인이 늙었음을 자각할 때, 이를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여 온 사람들보다 더 큰 충격에 휩싸여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본인 탓이다. 어느 누구도 늙음을 피할 수 없거늘, 어찌 본인은 예외일 것이라 생각했단 말인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탈모 치료제의 의료보험 적용 의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었는데, 적잖은 사람들은 탈모를 미용 문제로 간주하여 불필요한 예산 지출이라 단정했지만, 탈모로 인해 고통을 받아 온 사람들은 탈모는 질환이라는 입장을 표명하며 의료보험 적용 대상에 편입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그 문제는 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필멸의 존재인 인간으로서 사실 당연한 부분에 해당하는 이 탈모가 얼마나 사람을 괴롭게 하면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흔히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라 일컬어지는 탈모증 환자(?). 꽤나 쉽게 희화화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고대로부터 인간이 대머리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갖고 있었음이 문건을 통해 증명되었음을 고려하면 마냥 놀려댈 문제는 결코 아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노화에 대한 조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생명체로서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을 조롱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그리고 그것이 한 사람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진정 가당키나 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동양 사회의 전통적 판단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이 21세기에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고, 앞글자가 바로 저 신, 즉 '용모'란 것만 보아도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얼마나 외모를 주요 기준으로 간주해 왔는지가 드러난다. 젊은 나이에 머리가 빠지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신언서판의 피해자이자,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존재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 본다. 유전적 문제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나이가 들면 머리가 빠지는 것은 당연한데, 그 시기가 이르다는 이유로 그것이 그 사람의 됨됨이나 인격을 판단하는 데까지 작용한다면 이는 너무나 비합리적인 처사가 아닌지?


외국이라고 해서 대머리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는다. 오히려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변기 뚫는 도구를 머리에 던진다든지, 끝이 고무로 된 다트를 던진다든지(…)와 같은 행동을 또 동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이런 악랄한 사람들.

그렇지만 서양의 경우에는 동양보다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으로 탈모가 진행되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 오히려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이 꽤나 많고, 그런 이유로 탈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이 동양, 특히 한국이다. 외모가 사회생활을 넘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여겨지는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외국인이 행색만 보고서도 '저 동양인은 한국인'이라 할까?


나는 한국 사람들이 탈모를 대하는 태도가 탈모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와 더불어, 무의식적으로 '노화'를 혐오하는 분위기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탈모는 노화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를 기피하고 또 두려워하며 누군가는 이를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답은 뻔하다. 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노인 세대의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도무지 젊은 세대에게 인간이란 존재,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려는 의지가 있긴 한 건지 심히 의문스럽다. 나도 젊은데, 젊은이들이 노인을 일러 생각 없고 교양 없다고 비난하는 게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는 것이다. 절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젊은 세대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이나 이미지가 골 빈 것들로 정형화된 게 현실이라고.




나는 '조국의 미래, 청년의 책임'이란 구호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이 나라엔 도무지 조국의 미래란 것을 위해 청년이 고민하고 또 기여할 만한 틈이 보이지 않는다. 도무지 후배 세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기성세대, 'N포 세대'란 말이 왜 나왔는지 고민조차 않고 무작정 노력, 열심 타령만 해대는 이 시대의 꼰대들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자기 객관화란 걸 좀 해 보자 이거다. 마냥 그런 기성세대의 무비판적이고 성찰 없는 태도를 비판하기에는, 신진(新進) 세대에 대한 인상이 결코 좋지가 않다. 이 몹쓸 일반화의 오류가 횡행하는 게 한국 사회라지만, 그걸 알면 더욱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할 텐데도 좀처럼 생각이란 것을 하지 않고서 행동하는 듯한 모습을 몇몇 사람이 보이니 안 그래도 집단이 행동의 본위인 나라에서 그들의 행위를 집단 차원의 것으로 간주하여 싸잡아 욕을 하지 않나? 이 망할 집단주의 사회에서, 이를 타파할 생각을 해야지, 왜 자꾸 아무렇게나 행동해서 이를 더 강화하고 앉아 있냐 이거다.


탈모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자세가 탈모를 노화의 과정이 아닌 병으로 만들었다. 이른 나이에 머리가 빠진다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지적하는 문화, 마치 머리가 빠지면 사람(남자) 구실 못 할 것처럼 생각하는 풍조, 이런 게 쌓이고 쌓이니 이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외모지상주의적이고, 이 때문에 '성형 공화국'이란 오명을 가진 나라가 된 게 아닌가?

나 또한 머리가 빠지는 것을 매우 슬프게 여기는 사람이지만, 이런 한 가지의 현상을 대하는 태도가 누적되다 보니 받아든 성적표가 합계 출산율 0명대의 대기록이라고 단언한다. 논리적 비약이라 하기엔, 저출산 문제는 이 나라에서 발생해 온 너무나 많은 폐해가 녹아든 결과물이며, 여기엔 외모지상주의가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들 생각이 다르니 경쟁이 나쁘다고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무한 경쟁은 악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암울한 현실이 바로 이 무한 경쟁에서 왔다. 그리고 이 무한 경쟁은,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한국인의 심리와, 타인의 평가가 자신의 지위와 직결된다는 사회적 인식으로부터 형성된 폐습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지만, 그보다도 이 나라가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것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꾸 수단화했기 때문이다. 대중 가요의 가사는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로 가득하지만 정작 이를 부르는 이들은 선망의 대상으로, 대중은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낙망하고 좌절하며,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를 최상급으로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비교의 늪으로 자신을 밀어넣는다. 인간의 욕구란, 욕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 하기엔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그것이 진작 자기 파괴의 수준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긍정적 측면을 잃어버린 것 마찬가지다.




원래는 탈모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하여 한탄으로 끝을 맺으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국가 존망까지 운운해 버렸다.

아무튼,

뭐가 어쨌건 간에 한국의 수많은 젊은 남성이 이렇게도 탈모로 인해 속앓이를 하는 게 좋은 현상은 아니지 않나. 머리카락 갯수와 그것이 빠지는 시기가 나와 이들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해야만 하는 걸까? 나는 단호히 "그렇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련다. 이런 삶은, 나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름다운 삶을 사는 데에, 더 훌륭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 하등 쓸모가 없다. 만약 머리가 이에 도움이 된다면, 그 사회는 차라리 망해버리는 게 낫다.


이제 남은 약은 다. 그마저도 먹는 걸 깜빡하여 남은 약조차 다 먹었으므로, 조만간 피부과에 갈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뭐, 어느 시기까지는 약을 먹을 수도 있겠지. 다만 언제까지고 계속 복용하지는 않을 듯싶다. 비록 약효가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게 나의 삶에 진정 유익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면, 그때에 이르러 미래의 나는 약 복용을 중단하고, 비로소 빡빡이, 곧 대머리의 지경으로 넘어가기로 결심할지도 모른다.


그게 군인 출신 작가인 '장정법'의 책 제목이자, 동시에 그가 역설해 온 <대머리 혁명>의 핵심이라면, 내가 그 혁명 주체로 변모하게 될 날은, 어쩌면 그리 머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머리 빠지는 건 서러워.



<끝>



-대표사진 출처 : https://hcell.co.kr/hair-l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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