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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15. 2023

저출산이 현명판 판단의 결과라고?

아니, 그럴 리 없다.

너무나 많이 알려진 얘기라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한국은 OECD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도 가장 빨리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로, 이에 따라 그 어느 나라보다 빨리 몰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2022년 기준 합계 출산율 0.78명, 심지어 단일 도시로는 인구가 가장 많은 서울의 출산율은 0.63명. 아, 이 영롱한 수치를 보라. 0명대다, 0명. 전국적으로 부부가 아이 한 명 낳을까 말까인데다, 사람으로 미어 터지는, 그런 이유로 가장 볼 것도, 경험할 것도, 누릴 것도 많은 최고 도시이자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출산율이 최저다. 이런 선망의 도시가 인구 감소의 최전선에 있다니! 이런 경이로울 데가!


물론 감소의 최전선과 몰락의 최전선은 달라서, 몰락 직전에 있는 도시는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이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가수 조영남은 본인의 곡 <화개장터>에서 이를 예견했는데,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지르는'이란 가사가 보여주듯 전라(남)도와 경상(북)도가 소멸 1순위이며(실제로는 경북이 앞선다), 그에 필적하는 곳이 강원도와 충청도의 몇몇 도시다. 어차피 이 추세대로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소멸하는 것은 시간 문제니 도토리 키 재기라 할 수 있반면, 여태까지의 추이로 보건대, 먼저 망한 지역 거주민 구 밀집 지역으로 몰릴 을 생각하면 몇몇 대도시(수도권을 말함)에서 인구 폭증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 것임은 자명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출산 장려'를 목적으로 각종 정책을 수립해 왔고, 이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200조가 넘는다(한국일보, 225조 들였는데 출산율 0.84명…"엉뚱 예산 많다" 참고). 문제는 차도가 없다는 것이다. 매년 투입된 액수는 다르므로 1:1 대응은 할 수 없지만, 225 1년 국가 예산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이며, 저 225조란 액수는 15년간 투입된 이므로, 평균 내더라도 해마다 15조 정도가 저출산 정책을 위해 사용됐다. 그런데 역시나 차도가 없(었)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유치하고도 쉽게 말하자면, '1년에 겨우 15조' 가지고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더 큰 금액을 지출했다면 뭔가가 달라졌을까? 그럴 리가. 이는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마치 화학적으로 변해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과 같은데, 과학 시간에 '변성암'을 배운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암석이 화학 작용을 거치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지닌 다른 암석으로 변화한다. 그게 변성암이다. 한국인의 출산에 대한 인식은 이렇게 질적 차원으바뀌었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써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영향력 있는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들이 똑똑해진 결과(??)'라고.

무슨 말이냐, 이를 해석하면 아래와 같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기민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시작한 이래 무슨 일이 일어났든 계속해서 해 온 게 출산이었다. 그런데 현대 한국인은 아예 작정한 듯 대규모로 출산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모양이라면, 과연 이를 수동적인 현상으로만 간주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저출산 현상에 대한 기존 해석을 뒤집어서, 이를 아예 사람들의 자율적 판단이 작용한 적극적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출산을 단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과연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떠밀려 직면하게 된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는 취지다.


그런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야말로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미 바뀌어버린 현실 앞에서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저 논지에 동의했다, 애초에 이 글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묻는다.

과연 사람들이 똑똑하고 현명해서 망국(亡國)의 기로로 나아가기를 택한 것일까?

자답(自答)한다.

"Oh, no. 그럴 리가."


생각해 보자.

사람이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국가의 멸망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와우, 그 입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왜냐, 나는 종종 국가 없어도 사람들이 아름답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지만, 이 현실을 볼 때 그런 발상이 실현되는 것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임을 알며, 한번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무언가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치를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집단국가다. 슬프게도(?) '국가'란 개념은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무형의 실체로 언제나 남아 있을 것이다.


인류의 안정적 존속을 위한 국가 존재의 필수불가결함, 예로부터 인간은 이렇게 배웠으며, 지금도 그렇게 배우고 있다.

이를 전제로 하고 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만약 어떤 지배적 가치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다그렇다면 사람의 특성상 만세를 부르기는커녕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할 것이고, 그 공백을 틈타 다른 무언가가 지배적 가치의 지위를 차지하고자 마수를 뻗을 것이다. 국가 또한 마찬가지다. 국가 개념이 없어지면 과연 인간은 그 무(無) 상태를 어떻게든 유지하려 안간힘을 쓸까? NO.


나는 지금 이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상을 볼 때, 사람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다는 생각은 도무지 들지 않는다. 되레 그 반대다. 사람들은 상당히 자기파괴적인 선택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현 사회 구조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원색적으로 말하면 멍청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식으로 짜여져 왔다. 근대 한국을 구성하는 역사적 서사인 '일제 강점기'를 떠올려 보자. 왜 그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님에도 교육을 통해 대물림될까? 그것은 '한 집단이 그 구성원의 의지가 아닌 타집단의 위력에 의해 붕괴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를 선조들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사 역사지만, 차라리 막돼먹은 조선 조정에 전(全) 민중이 분노하여 적극적으로 자국의 식민지화를 요구했다면, 이에 부응한 외세가 '이때다' 싶어 조선을 차지하고, 옛 조선 민중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고자 분투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다 알지 않나? 형식적으로 조선 지역은 근대화되었다. 그러나 미쳤다고 식민국이 피식민지를 '피식민 백성의 복리'를 위해 발전시키겠는가? 이야, 세상에 그런 훌륭한 식민 통치국이 있었다면 나와 보라지! 그 얼마나 위대한가! 자타의 구별을 무력화하고 점령지의 민중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애쓰는 국가라니! 전 인류가 칭송해야 마땅하다!


재차 언급하건대 나는 국가의 존재를 그리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확히 하면, 국가권력이 언제고 돌변하여 개인에게 횡포를 부릴지 모르기에 국가를 경계한다. 입장이야 다르니 뭐라 하진 않겠으나, 나는 그것을 방역 시기에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좋은 명목이라도 한번 개인의 삶에 손을 대는 순간 개인은 권력 앞에 무력해지며, 또한 언제 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될지 모르는 일이다. 국가가 개인을 상대로 시행하는 '통제 기반의 정책'은 그런 위험성을 늘 지니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없다면? 일단 한국이 당장 무너진다면 한국인이 그토록 자랑해 마지않는 의료보험 제도는 즉시 붕괴되어 적잖은 이들이 마음대로 병원을 가지 못하게 될 것이며, 애초에 이 병원이란 기관과 체계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 너무 국가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인 예상인가? 그렇지만 비극적 시나리오는 더 보수적이고 비관적으로 쓰랬다. 이 '국가' 개념은, 그 어떤 대안적 개념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인간의 삶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신들의 메시아(구원자)를 십자가형으로 잃어버린, 고대 이스라엘'예수 추종자'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분명 천국이 온댔는데, 자신들을 이 비참한 현실로부터 구해 주겠노라 했는데 그 말을 내뱉은 당사자가 갑자기 죽었다. 이게 무슨? 탈종교 시대의 사람들에겐 별 것 아닐지 몰라도, 그건 그들에게 재앙이었다. 이게 안 와닿는다면, 영화 어벤저스의 내용을 떠올리시면 되겠다. 악당 타노스가 인구의 절반을 날려버렸을 때의 그 황망함이란….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절대 쉽게 버티지 못한다.


국가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에게 그런 존재다. 아무리 국가가 나에게 무얼 해주냐며 정부를 비난하고 정치인과 행정가를 비난해 봤자, 막상 국가가 없어져 버리면 순간 세상은 무규범(아노미)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게 말로는 국가주의를 싫어한다면서 정작 국가 없는 현실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위선자의 예측이다.

비록 이 한국이란 나라의 복지 정책이 대부분의 한국인이 느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피부로 와닿지 않을 정도로 미흡하다는 인식이 만연한 건 사실이지만, 나조차도 이 망할 나라가 진짜 망해버리면 벙쪄서(사전에 등재된 표준어다) "어떡하지?"를 연발할 것이라 확신한다. 마치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에서 짱구가 했던 대사처럼


인간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다. 지금 한국은 그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불안하다. 그런 나라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결혼을? 심지어 애까지 낳아? 누구 표현을 빌리면 정말 정신 나간, 미친 짓일지 모른다. 나도 인정하고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본질을 보자 이거다. 지금에야 인구가 5천만 선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문제와 모순 투성이인 나라가 현상(現狀)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속도대로라면 4천만 선까지 줄어드는 것은 얼마 남지 않았으며, 출산율 0명대 사회에서 3천만, 2천만까지 떨어지는 건 그야말로 시간 문제다. 심지어 저 이북 지역의 인구가 2천만이 넘는데(솔직히 매우 놀랍다. 그 지경인데도 이 정도라니?) 합계 출산율이 1.8(??!) 수준이란다. 이야, 이 풍요롭고 선진적인 자유 대한민국이 저 유사종교 국가보다 더 빨리 망한다니, 그것도 인구 감소로! 정말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2028년 5,19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2067년에는 1982년 수준인 3,929만명에 이를 전망이다."란 게 2019년 통계청에서 발표한 문건 내용인데, "2020년 5,184만 명으로 정점을 이루었던 우리나라의 인구는 2021년 기준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에 의하면 2050년에는 4,736만 명, 2070년에는 3,766만 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라는 문장에서 볼 수 있듯 이미 어긋난 예측으로 판명이 났다. 정점이 무려 8년 일찍 찾아온 것이다.


자,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한 번 더 하겠다. 인구의 유지는 국가 유지의 핵심이다. 그런데 그 인구가 증가하기는커녕 가파르게 감소한다는 것은, 이 상태로는 국가가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한 게 불출산(不出産)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미래의 나는 내가 아니고 누구인가? 미래의 배우자는 이혼했거나 사별해서 내 옆에 없을지 모르니 상관이 없고? 강조하지만 저는 꼰대가 싫어요. 그런데 태어났을지도 모를 아이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이건 꼰대의 꼰대짓 차원을 떠나서 정말 국가가 위태로워지고, 전통적 공동체와 혈연 중심 사회의 해체를 대신하여 등장한 복지국가마저도 더는 그 형태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므로 '나'의 삶을 원조하거나 지탱해 줄 그 어떤 대상도 남지 않게 된다. 국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국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당연히 국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 그러니 그나마 지금이라 이 수준으로 유지되 각종 사회보장제도 시간이 갈수록 부실해지게 될 것이고, 양극화의 가속화와 고령화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날 텐데, 국가가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제 역할을 못 하게 되면 도대체 이 상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라고? 안 그래도 가면 갈수록 배려와 이해의 논리가 아닌 힘의 논리가 득세하는 세상인데,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양아치 같아도 국가는 국가라고, 각종 세금으로 사람들을 버겁게 한다지만 그 대가로 유지되는 치안 서비스마저 국가가 무너지면 무력화된다. 결과는 뻔하다. 국가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한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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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가장 못마땅하게 보는 것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치매노인공공후견제도'다. 애초에 이 두 제도에는 지속성이 없다. 노인은 늘어나니 노인성 질환 발병율 또한 늘어날 텐데, 이들을 돌볼 사람마저 고령화되는 상황에서 무슨 노인 대상 복지제도를 유지할 것이며, 어느 누가 제 부모 모시기도 바쁜데 다른 노인, 그것도 치매 노인을 돌보겠다고 나설 것인가? 기껏해야 저개발국 또는 개발도상국에서 대규모 이민자를 받아들이자 할 텐데, 이 꽉 막힌 한국 사회에서 과연 그들이 '한국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질까? 아직도 '단군의 자손' 타령하며 단일 민족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라에서? 단언컨대 그런 '지속 가능한 미래'는 이런 식으로라면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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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생존에 있어서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절대적 기준으로 잡자면 맞는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오늘만 사는 존재도 아니고, 모든 한국인이 집단자살을 택하는 게 아니라면, 분명 이 나라에서 미래를 맞이할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걸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미안하지만 멍청한 생각이다. 신용카드 여러 개로 앞선 결제를 돌려 막아봤자 남는 건 빚뿐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출산 포기는 모두가 직면한 현실을 돌려 막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효력을 발휘할까? 결국 인구는 급감할 테고, 그로 인해 야기될 미래는 불 보듯 뻔한 것을. 그러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생존을 고려할 때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렇게 내몰리는 것'이라 해야 한다. 나의 생존을 위해 아이를 낳지 않겠다니,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외면하면서, 당장의 짐을 덜겠다고 미래의 쇳덩이를 받아드는 것이 진정 현명한 선택일까?




누군가가 내게 이 사태를 해결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면, 나는 차마 '무엇이오' 하고 말할 수 없겠다. 극단적 해법이야 누구든 내놓을 수 있겠으나, 이는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고, 그렇다고 "우리 대화와 합의로 이 난국을 타개해 봅시다." 하고 말하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뭐, 말이야 할 수 있지. 강남 3구 거주자를 죄다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그곳을 포탄으로 쓸어버리고 쓰레기 매립지와 소각장을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서울 근처의 도시 거주자에 대해서도 그렇게 한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이 해체되어 과밀 현상도 해결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말로 뭐가 나아질까?


그런 식의 해법을 채택한다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훼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당장 GDP가 작살나 인구 감소 문제로 나라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빨리 망할 텐데, 그 후과는 누가 감당할까? 지금 이 나라에 살아가는 모두다. 애초에 이를 실현해 낼 독재자가 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극약처방이 결코 우리에게 낙원을 선사해주진 않을 것이다.


나는 "요즘 젊은 것들은 자기만 알아서 나라 망하든 말든 상관도 안 하고 제 좋을 대로만 한단 말이야. 애를 낳아야지."라는 기성세대의 반(反)현실적 발언을 혐오하지만, 그 집단-국가주의적 발상을 제거하고 순전히 그 말로만 보자면, 오히려 그 행동(또는 선택)이 결국 미래의 자신의 파멸을 전제로 한 매우 어리석은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가 있어야 개인이 있다는 이유로 국가 존속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 봉사할 것을 요구했던 기성세대의 입장이 아닌, 나의 행복과 나의 괜찮은 앞날을 살길 바라는 청년의 입장으로 보아도, 저 '현명한 선택'은 절대 현명한 선택이 아니며, 이를 선택이라고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결국 이 시대에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은, 실은 그것밖에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마저도 한국 사회가 압축 고도 성장을 대가로 더 먼 미래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생긴 '불가피한 현상'일 뿐이다. '국가'를 위해 개인을 버린 대가가, 개인이 국가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아마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족, 국가, 통일, 경제건설과 같은 거시 담론이 모든 의제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사람이 없어 나라가 망한다'는 초유의 사태를 직면한 한국인은, 더는 과거의 어떤 낙관과 희망조차 품지 못하게 된 채로, 망해가는 나라에 남아 그 몰락을 지켜보든지, 아니면 그곳에 남기를 택한 이들을 조소하며 다른 나라로 뜨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며, 그마저도 대부분이 첫 번째 경우를 택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런 걸 일러 '울며 겨자 먹기'라 하는 걸까?


순전히 '인조잉 라이프(Enjoying life, 즐기는 삶)'를 위해 결혼도 출산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 반면, 감히 '나'의 처지를 고려하건대 결혼과 출산은 물론이거니와 연애조차 함부로 꿈꿀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뭐 지금 당장의 쾌락을 우선시하겠다면 하라지.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본인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또한 앞으로도 무언가를 쥘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패배주의적'인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누가 그들을 감히 탓할 수 있나?

부모에게 어마어마한 재산을 증여받았거나, 후에 상속받을 예정이라 누구랑 같이 살든 혼자 살든 상관없는 사람들이야 평생 즐기면서 살 수 있겠으나,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면할 미래는 유감스럽게도 어둡다. 과연 현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란 것이 있나 싶지만,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자율적 존재>란 명제를 인정한다 해도, 어느 쪽을 택하든, 암울한 미래가 모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발적으로 기꺼이 그리했든, 바람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든, '지금의 나'에게는 그것이 덜 부담스런 결과를 가져다줄지 몰라도, 그것이 모두의 이름으로 합쳐질 때, 분명 미래의 한국인은 지금보다 더 괴로운, 그리고 무거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런 저주스런 전망을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나조차도 원망스러우나, 이것이 이 나라가 맞이할 결과란 생각엔 변함이 없다. 대대적인 각성과 변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한 방울 남은 희망을 짜내 "이 연사, 여러분께 외칩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읍시다!"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이는 나 혼자만의 역설(力說)로 바뀔 흐름이 아니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학력 수준으로 보나, 지식 함양의 정도로 보나 기성세대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그들로 하여금 어리석고 멍청한 선택이 마치 현명한 선택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고 있다.

아예 어떤 이들은 당신의 판단이 그것이라면 옳은 것이고 또 가치 있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위로한다.


미안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그건 입에 발린 말이며, 그저 기만다.


앞선 세대보다 똑똑하다는 이들이,
'현명해서' 이런 파국적 선택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가치 있는 것일 수도 없다.

그러나,
그런 선택지를 내미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 리 없다.


이 나라가 밟아 온 길의 모든 발자국마다, 그 후과(後果)가 예외 없이 깃들어 있었다.
이를 감당할 세대가 이제서야 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 누가 그들을 나무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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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사진 출처 : SBS, 영화 속 아이 없는 세상…우리의 '정해진 미래'? [SDF다이어리] / 영화 <칠드런 오브 맨>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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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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