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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25. 2023

노인복지, 결코 오래 못 간다.

요양보호사의 현실로 본 한국 노인복지의 문제

여러 자료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 엄마의 경험을 미루어 글을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는 중이다.


제목에 드러난 것처럼 나의 문제 의식은 한국의 노인복지 체계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복지 체계의 문제보다도 업계 노동 현실과 노동자의 처우와 직결된다. 이 글을 통해 지적할 문제도 복지 체계 자체가 아닌 업계 종사자가 직면한 상황임을 밝힌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요양보호사 연령이 기본적으로 높다. 30대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고, 40대가 그나마 적은 비율로 존재하며, 대부분은 50대에서 70대 사이다. 2019년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 평균연령이 무려 58.7세라는 분석 결과가 나왔으며, 2020년 6월에는 약간 높아진 59.6세로 집계되었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중노년이 노년을 돌본다는 것은 그만큼 인력의 소모성이 강하다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건강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정작 이에 대한 대처는 전무하다.


-(위의 이유와 관련하여) 요양보호사들이 고질적인 질병에 시달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개 관절이나 척추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노인복지업계의 경우 아직 정부 제도의 미비로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가 없는 상황인데다, 질병 발생을 이유로 산업재해 신청을 하더라도 결국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육체노동을 하는 다른 업종과 유사하며, 무엇보다도 요양사의 정보가 시설장들 사이에서 공유되기 때문에 이처럼 본인의 권리를 요구한 이는 동일 지역 내에서 재취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요양보호사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도 문제다. 특히 재가요양사의 경우 돌봄 노인의 성범죄에 취약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화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왜냐, 요양보호사가 '서비스 제공자'라는 이유로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갑은 당연히 돌봄 대상 노인이다. 그렇다고 이런 일을 겪었다는 이유로 그 집에 가지 않겠다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닌 , 일단 복지 대상자로 선정된 이상 누구든 그 집에 가서 요양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복지의 수혜 대상이 되는 노인은 기본적으로 치매 노인이다. 그러다 보니 치매 증상이 심하게 발현할 경우 폭력성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욕설을 포함한 폭언을 내뱉는 것은 기본이며, 심지어 요양사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는 노인들도 있다. 이에 대한 대처 또한 전무하다. 그저 참고 넘겨야 한다. 그 노인을 안 받겠다 말하더라도 폭탄을 돌리듯 다른 요양시설로 가게 될 텐데, 그럼 그 피해는 다른 누군가가 또 감수해야 하는 것이 된다. 마치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타교에 강제로 전학을 가는 제도와 비슷하다 하겠다. 그렇게 학교를 옮긴 학생이 그곳에서 과연 가만히 지낼까?


-다음 사례는 노인 복지업계뿐만 아니라 '돌봄 노동' 전반에 해당되는 사항으로, 노동자의 수에 비해 서비스 수혜자(피제공자)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가 몇십 명의 아이들을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 하듯 요양보호사도 노인에 대해서 동일한데, 요양보호사 1명당 대개 7-8명의 노인을 돌보아야 하며, 심하면 10명까지도 돌보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당연히 두 업계 다 고질적 과노동 문제를 겪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이와 반대로 인력난에 시달리기까지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임금은 노동 강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요양보호사에게 지급되는 임금은 당해년도 최저임금이다. 온종일 돌봄 노동을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공정한가? 이러면 또 '누칼협(신조어다. ' 들고 박했냐?'의 줄임말로, 소속된 집단의 폐단을 지적하고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을 조롱하고 비난할 목적으로 쓰인다.)' 타령하며 그건 본인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을 텐데, 선택의 여부를 떠나 스스로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몫을 받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 정당함의 기준을 쉽게 정할 수는 없을지라도, 가족을 대신하여 치매 노인을 돌보는 이들에게 고작 최저임금이 지급된다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공휴일이 없다. 이는 육체노동이나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대부분 겪는 현실이지만 도무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7일 내내 센터가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명절에도 못 쉰다. 이는 요양원이나 병원 근무자도 마찬가지지만, 거의 모두가 쉬는 시기에도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들을 센터로 데려와 돌봐야 한다. 이는 요양보호사가 대개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문제시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렇게 일함에도 주어지는 임금이 고작 최저임금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빨리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시설장이 업무 외 노동을 강요한다. 대표적으로 요양보호사가 주방에 투입되어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체 왜? 조리사가 부족하면 조리사를 채용해야지 어째서 노인을 돌보아야 할 애꿎은 요양보호사를 동원하여 음식을 조리하게 할까?

업무가 아닌 것을 '해당 업장 소속'이라는 이유로 시켜대는 것은 실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잔심부름을 시키거나 커피 타 오라고 하는 곳이 적잖을 텐데, 제발 그런 건 좀 알아서 해라.




한때 노인이 계속 늘고 있다는 이유로 해당 업계의 전망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이 꽤나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마치 정부에서 단기 일자리만 잔뜩 만들어 놓고 취업률이 높아졌다며 자축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노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회 전반에 과부하가 발생한다는 것과 같으며, 복지 체계의 망이 넓어진다고 한들 그들을 돌볼 이들이 제한적이라면 별 의미가 없다. 누군가는 그들을 돌봐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면? 그럼 이민자를 대폭 받으면 해결될 문제인가? 그럼 그들에 대한 처우는 어찌하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단순히 인력을 채워넣고, 돈을 좀 더 준다고 나아질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의미다.


복지업계의 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돌봄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의 처우가 매우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이들을 노동 대상으로 삼지만, 정작 그 약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들에게 강요되는 노동의 양과 강도는 날로 높아질 것이다. 노인이 많아지면 무얼 하나? 그들을 돌볼 사람은 한정적인 것을. 이런 식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반드시 무너지게 돼 있다. 복지 수혜 대상이 늘어다면 이에 따라 관련 직종이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도 '현상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정작 그들이 놓인 노동 여건은 애초에 좋지가 않다. 그런 기울어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한다고, 그리고 그 체계가 고착화된 채 이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도 이 모양인데 과연 후대에 이르러 국민이 국가에게 양질의 복지 서비스를 기대하는 것이 가능해질까?


소아과도,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주야간보호센터나 요양원도 마찬가지다. 한쪽은 사람이 줄어들어서 아우성이지만, 다른 한쪽은 사람이 너무 늘어서 아우성이다. 뭐가 됐든 문제라면, 현행 체계 자체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내가 문제시하는 것은 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과도한 서비스 정신의 요구와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너무 저열하다는 점이다. 제도적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그에 준하는 사람들의 인식 전환이 또한 강력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손님은 왕'이란 마인드로 살다 보면 반드시 곳곳에 구멍이 뚫리게 되어 있고, 그 공백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결국 개개인이 떠안아야 한다.


나는 노동 시장의 구조가 매우 불공정하고 불균형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사고를 떠나서 더 힘든 일을 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몫이 돌아가야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이는 현대 정치학의 화두인 '정의'의 관점, 특히 그 선구자인 존 롤스(John Rawls)의 입장으로 볼 때도 불공정하다.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이익을'이란 그의 제언은, 노동에 대한 부당한 평가로 발생한 소득 격차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다는 명목(=아무나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편협한 인식)으로 고강도의 노동에 합당한 대가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부정의다. 그런고로 현대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공정론은 결국 매우 편협하고 계급적이다. 진정한 공정은 차별 대우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제가 일한 만큼 합당한 대가를 지불받는 것으로 완성된다. 안타깝게도 복지업계 종사자, 특히 노인 대상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저 여의도와 지자체의 정치꾼들이, 그리고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고위공무원이란 작자들이 알기는 할까 모르겠다.

물론 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의 일로 그의 가치를 매기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귀책 사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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