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달 뒤인 7월 27일, 그 기나긴 전쟁이 '휴전'이란 이름으로 중지될 것임을 그들은 예감했을까?
교착 상태에 빠진 전황.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이곳을 지키느냐, 빼앗기느냐의 기로에 매일 놓여 있던 국군과 인민군.
결국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서, 심지어 끝나지도 않은 상태로 70년을 넘게 이어져 왔다.
젊음의 일부를 전장에 던져야 했던 이들은 이제 노구老軀가 되었거나, 세상을 떠나 넋이 되었다.
문득 '참전 용사'라 불리는 이들 생각이 났다.
그들을 대우해야 한다고 매번 말은 나오지만, 정작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수당이 일정 금액 오르는 것이 전부. 그들은 국가유공자임을 알리는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쓴 채 세상에 나서지만, 그것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다를 바 없으며, 내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보훈병원에서 생을 마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언제 세상에 발자취를 남겼냐는 듯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왜 그럴까?
그토록 '국가'와 '애국'을 강조하는 나라,
그것만큼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나라에서 왜 참전 용사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귀한 줄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의 방침에 누구나 동원되어야 했고
누구나 싸워야 했던 그 시절.
적의 존재를 이유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징병 대상이 되었던 나라.
그런 나라에서 사람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병력'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그저 하나의 '자원'에 불과했다.
쓰고 닳아 없어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인 '자원'.
오죽하면 한때 교육부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였을까?
내 어렸을 때지만, 교과서 하단에 새겨져 있던 저 일곱 글자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명예로운 참전 용사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결국 국가의 입장에서는 '병력 자원'일 뿐이었다.
전선에선 늘 보충병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하필 그 시기에 그 나이라는 이유로 보충 대상이 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그중 누군가는 다쳤으며, 누군가는 죽었다.
살아 돌아온 이는 그때의 참상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왔지만,
어떤 이들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한 채, '실종'이란 이름으로 누군가가 찾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