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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25. 2023

6월 25일, 무명의 참전 용사들을 생각하며 쓰다.

전쟁이 일어난 지 만 3년째 되던 날, 1953년 6월 25일.

전선에 있던 장병(장교와 병사를 아울러 이르는 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불과 한 달 뒤인 7월 27일, 그 기나긴 전쟁이 '휴전'이란 이름으로 중지될 것임을 그들은 예감했을까?


교착 상태에 빠진 전황.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그저 이곳을 지키느냐, 빼앗기느냐의 기로에 매일 놓여 있던 국군과 인민군.

결국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만 남기고서, 심지어 끝나지도 않은 상태로 70년을 넘게 이어져 왔다.


젊음의 일부를 전장에 던져야 했던 이들은 이제 노구老軀가 되었거나, 세상을 떠나 넋이 되었다.




문득 '참전 용사'라 불리는 이들 생각이 났다.

그들을 대우해야 한다고 매번 말은 나오지만, 정작 달라지는 것은 없다. 상황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지는 수당이 일정 금액 오르는 것이 전부. 그들은 국가유공자임을 알리는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쓴 채 세상에 나서지만, 그것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다를 바 없으며, 내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보훈병원에서 생을 마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언제 세상에 발자취를 남겼냐는 듯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왜 그럴까?

그토록 '국가'와 '애국'을 강조하는 나라,

그것만큼은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나라에서 왜 참전 용사에 대한 대우는 열악하기 그지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귀한 줄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른다.

국가의 방침에 누구나 동원되어야 했고

누구나 싸워야 했던 그 시절.

적의 존재를 이유로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징병 대상이 되었던 나라.

그런 나라에서 사람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병력'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그저 하나의 '자원'에 불과했다.

쓰고 닳아 없어지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그만인 '자원'.

오죽하면 한때 교육부의 명칭이 '교육인적자원부'였을까?

내 어렸을 때지만, 교과서 하단에 새겨져 있던 저 일곱 글자만큼은 선명히 기억난다.


명예로운 참전 용사라고는 하지만

그들은 결국 국가의 입장에서는 '병력 자원'일 뿐이었다.

전선에선 늘 보충병을 필요로 했다.

그리하여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하필 그 시기에 그 나이라는 이유로 보충 대상이 되어 전선에 투입되었고 누군가는 다쳤으며, 누군가는 죽었다.

살아 돌아온 이는 그때의 참상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왔지만,

어떤 이들은, 생사조차 확인되지 못한 채, '실종'이란 이름으로 누군가가 찾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나라였다, 한국은.

역사의 비극을 인함이라고는 하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탄생한 이래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늘 그런 취급을 받아 왔다.

국가를 위해,

사회를 위해,

집단을 위해

이 한 몸 바쳐야 하는 존재,

그리고 그들에게 '논개'가 되기를 강요했던 세상.


참전 용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어지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부품일 뿐이었다.

나라가 발전했다지만,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이 나라에서, 사람은 자원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나는 묻고 싶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누군가의 노력이, 그의 헌신과 희생이 온전히 평가받을 수 있겠느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참전 용사들이 어려운 형편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부품처럼, 기계처럼 대해 온

개인의 가치는 고려되지 않고

늘 집단의 일부로 존재해야만 그 존재 의의를 인정해 온

이 한국 사회 때문이라고.


'모두'가 하나의 대의를 위해 동원될 때,

그들이 개인으로서 바쳤던 힘과 삶은,

'모두'가 그리했다는 이유로

안타깝게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거나, 쉽게 외면당한다.

집단을 위해 개인이 존재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개개인의 삶과 행위에 합당한 가치가 부여되지 않는다.

이것이 본질이자 핵심이다.

개개인의 가치를 무엇보다 우선시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참전 용사'라는 명목으로도 개개인이 존중받기란 어렵다.


적어도,

이 사회가 철저히 반성하여, 더는 인간을 부품 취급하지 않게 되었다면

분명 참전 용사에 대한 처우는 적어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랬다면,

포화 속에서 살아남은 참전 용사들이,

철마다 안보 장사를 일삼고, 통일 환상에 빠진 정치꾼들에 의해

그렇게 이용되고 버려지기를 반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국 '개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보훈처가 보훈청으로 바뀐다 해서

유공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 것임에 틀림없다.


이 나라가, 이 사회가 계속 이 모양이라면

내년 이날에도

후년 이날에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현실 또한 그러할 것이다.

-

-

호국을 위해 헌신하신 모든 이들께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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