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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Aug 09. 2023

어쩌면 '사회악 척결'이라는 구호는

악(惡)에 대한 짧은 생각

인간이 자연과 인간 스스로의 정복자이자 지배자라는 믿음만큼이나 허황되다.

북상하는 태풍을 보라. 이를 막을 수 있나?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려는 노력뿐, 이마저도 태풍의 강도가 생각한 것보다 세면 무용지물이다. 문제의 근본 원인은 '태풍'이지 대응인 것이 아니다. 대응을 앞세우면 선후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문제의 시작은 '태풍'이란 자연현상으로, 인간은 절대 그것의 발생을 막을 수 없다.


악도 마찬가지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강한)권력으로는 사회악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의 선함을 믿고 또 부각했던 사상이 성공한 적 있던가? 오히려 인간의 악함이나 나약함을 지적한 (사상이나) 종교는 '종교는 언젠가 인간의 곁에서 없어질 것'이란 인식을 비웃듯 그 명맥을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만약 종교가 인류의 삶에서 그 자취를 감추었다면, 인간은 실로 자신이 지닌 고유한 악을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었을 터. 그러나 현실은? 역사는?

그 체계의 진실성과 합리성과는 별개로, '인간 존재의 악한 성품'에 대한 지적만큼은 결코 간과할 수가 없다.




한쪽에선 자기 객관화를 지나치게 하여 다른 존재를 인간보다 위에 두는 한편, 다른 한쪽에선 자기 객관화란 것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즉각적으로 느끼고 생각한 것을  내뱉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이렇게 달라 뵈는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 인간 존재 본연의 악을 외면하거나 간과한다는 것이다. 악이 그렇게 쉽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인간은 진작 신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신 자체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선이란 가능성이라면 악은 곧 한계다. 악을 없애자는 말은 스스로의 한계를 없애겠다는 말. 인간은 늘 한계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 왔으나, 자신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한계의 정도를 낮출 수는 있을지라도, 한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는 그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회악, 척결하기를 바란다(비아냥이 아니다). 없앨 수 있다면 그랬으면 좋겠다(이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으로 남기를 택하는 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얕은 곳까지 포진하여 뿌리를 내린 악을 잘라내지 못하는 한 사회악은 척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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