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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r 22. 2022

코로나가 낳은 사회 문제 <5>

정치적 대립의 격화

정부의 방역 정책 대상에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예외가 없었다. 이로 인해 절대 다수가 정책으로 인해 자유를 제한당하며 기존의 삶의 방식을 강제로 포기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역에 대한 입장은 둘로 갈렸다.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바이러스 대유행을 막기 위해선 강력하게 방역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이들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역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들로 양분된 것이다. 물론 절대 다수가 보신주의 성향을 힘껏 발휘하여 마스크를 자발적으로 쓴데다 대중교통 착용 의무화가 시작되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 행정명령'이 발효되면서 아예 안 쓸 수가 없게 됐으므로 별다른 불만은 드러나지 않았다.


초기에는 주로 '종교 우파' 진영에서 정부의 방역정책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는데, 바이러스 대유행에 따른 공포감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특유의 집단성이 발휘되어 자유를 외치는 이들은 몰지각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들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바이러스 확산세가 잡히지 않고 오히려 확진자가 늘자 방역에 대한 회의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부의 '동선 파악'을 중심으로 한 방역 체계에 과부하가 생겼고, 이를 감당할 인력은 날로 부족해지는 상황에 국민적 불안감은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정부에서는 크게 유효하지 않은 방식을 계속해서 유지했다. 관성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국민에게 지탄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임이 주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정부의 방역 정책(의 적용)이 대개 2주를 간격으로 조정되다 보니 자영업자 입장에선 '왜 이렇게 오락가락하느냐'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정책의 조정 속도와 이에 따른 국민 인식에 속도차가 발생하면서 자영업자나 소비자 모두 뭐가 맞는 건지 혼란스러워했다. 정부 입장에선 경제와 방역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었겠지만 이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 방역을 강화하면 경제가 박살나고 경제를 챙기자니 방역에 구멍이 송송 뚫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방향성을 잃은 방역 정책은 점점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켰고, 여기에 '게임 체인저'로 불린 백신이 너무 오랜 기간에 걸쳐 수입되면서 집단면역 형성에 지장이 생겼다. 강력한 방역 정책으로 자연면역이 형성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에 편중된 인구로 인해 유행이 절대적으로 용이했던데다 변이 바이러스의 높은 감염성으로 아예 방역 자체가 무력화되고 말았으며, 이로 인해 한국의 일평균 확진자가 수십을 오르내리는 상황에 직면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상대적) 약화를 고려할 때 확진자가 폭증하는 것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이지만, 그간 'K-방역'의 성과를 선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하고 허망할 따름이었다.

한편 방역 과정에서 '시위 문제'가 거론됐는데, 보수 진영의 시위는 방역 지침 위반을 들어 강력히 대응하면서도 노동계의 시위에는 뭔가 덜 강경하게 대응하는 인상을 줌으로써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도 정부에의 불신 조장 및 이념 대립을 심화하는 데에 한몫했다. 게다가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유세에 한하여는 인원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시위 인원은 여전히 299명으로 제한하는 이중적 정책을 시행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시위 인원 299명 이하로의 제한은 글을 올리는 이날까지도 진행 중이다).


한편, 방역이 장기화되자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는데, 사실상 백신 의무 접종 조치가 취해지고 거기에 백신 부작용 인정에 인색한 태도를 보임과 더불어 '방역패스'를 도입하자 (이제서야) 보수 야당과 반정부 세력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 '기본권의 부당한 제한'이란 구호를 내걸며 정부를 비판했다. 안 그래도 정부 정책이 못마땅했던 이들과 애초에 문재인 정부와 이념적 대척점에 있던 이들이 대규모 공세를 폈고, 이에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는 친여당 세력은 '정부가 방역을 잘 했으니 다른 나라보다 확산세 및 치명률이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역으로 공세를 폈다. 완전히 방역이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사실 넓은 의미의 정치를 생각하면 방역도 분명 정치에 포함되지만, 이와는 별개로 시간이 흘러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동일한 방역 체계를 펴는 정부와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 정부 자체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이들과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이 각자의 입장에 따라 결집하면서 본격적이고도 심각한 정치 대립이 시작된 것이다. 방역 및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에의 분노를 부동산 문제·공정 훼손 논란·여당 인사의 성범죄 등의 실정(失政)과 연결시켜 '문 정부 타도'나 '정권심판'을 외치는 이들이 늘어갔고, 이에 위협을 느낀 친정부 성향의 개인은 '기껏 탈환한 정권을 다시 내어줄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똘똘 뭉쳤다. 서로를 증오하는 것은 당연했고, 또 당연하다. 그 결과가 이번 투표율에 반영되었다는 것에 이견을 보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본다.


이렇듯 방역은 의도치 않게 정치적 대립을 격화했다. 본래 사람은 화합을 추구하면서도 대립을 지향하는 양면적 존재지만, 군부독재 이래로 이렇게 조용히, 하지만 치열하게 서로를 증오하고 죽일 듯 보는 시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코로나 시기의 정치적 갈등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다원성을 전제로 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론 통합'이란 건 허상에 가깝지만, 아무리 어떤 정치인이나 사회 저명 인사가 '통합'을 외친다 한들 좌우의 서로를 향한 증오의 불길은 결코 쉬이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기 대통령 윤석열, 그의 어깨가 무겁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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