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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Mar 21. 2022

코로나가 낳은 사회 문제 <4>

고립

아무리 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과 연락을 취할 수 있게 됐다지만, 사회가 전적으로 이를 통해서만 대면 접촉하거나 업무를 처리하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인격성'이다. 아무리 만나지 않고 영상통화를 하거나 업무를 처리한다 한들 한 번 만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혼자만 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독해지므로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만나 얼굴을 맞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정면으로 거스르게 했다.


특히 사회적 관계를 활발히 수립해야 할 시기가 바로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 시기다. 그들은 아직 '신세대'로서 기성세대보다 여러 측면, 즉 사회적 자원이나 관계에의 확보도가 떨어진다. 그만큼 최대한 많이 활동함으로써 대인 접촉을 늘려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인해 타인을 접촉할 기회가 사실상 차단되었으며, 대면 심리도 대폭 위축되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부모가 집에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만날 사람도 없었다.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시기에 물리적인 학교폭력은 줄어들었으나 '사이버 불링', 즉 인터넷 영역에서의 학교폭력은 늘어났다.

이들에게 사실상 자원이라고 해 봤자 '인간'밖에는 없다. 친구, 선후배가 거의 유일한 자산인 상태에서 이들에게 제도적으로 이동을 제한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결코 사람을 배려하는 체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고립에 취약한 계층은 더욱 고립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세상에 '나'만 존재하게 된 이들의 심리 상태는 망가져만 갔다.


노인 세대의 고립도 심각한 문제다. 노인 세대의 경우 자녀들과 살지 않는 이도 많고, 남편 또는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거주하는 이가 많다. 이런 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통로는 도시나 농촌이나 '노인정' 또는 '마을 회관' 정도였는데 이곳마저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방문할 수 없었기에 그들의 정서적 고립은 어마어마했다. 특히 도시 지역의 경우 쪽방촌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코로나 시국'에서는 완전히 한 평도 안 되는(또는 겨우 넘는) 방에 격리되다시피 지냈다. 이들이 혹여 질병에 걸리거나 고독사할 경우, 이런 상황에서는 빨리 발견하려야 그리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코로나 시기에서의 봉쇄 조치로 인해 가정폭력이 증가했다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직면한 심각한 현실이다(주로 서양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다). 이는 단순히 가정폭력의 주체가 나쁘다는 생각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그들이 평소에도 폭력적 성향을 보이거나 실제로 폭력을 가했다 한들, 강제로 가두는 정책만 취하지 않았더라도 무고한 피해자가 나올 확률은 상대적으로 늘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장기간 집에 있게 되면서 육아 문제, 가족 구성원의 생활 방식 등 여러 영역에 걸쳐 갈등을 겪었다. 즉 가정 불화가 기존에 비해 더욱 늘고 또 심해진 것이다. 오죽하면 '코로나 이혼'이란 말이 생겼을까?

거리 두기는 본질적으로 특정 계층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도 상처를 내는 체제였던 것인데, '모두'를 위한다는 거리 두기가 생각보다 많은 이에게, 그리고 곳곳에서 부작용을 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였고, 또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런 현실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그리고 정부는 '외출을 자제해(달)라', '집에(만) 있으라'고만 했다. 그것이 당시로서는 유행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랬을 테지만, 사회적 동물로서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접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독이었음 독이었지 결코 득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제도와 인식이 강제한 각종 정책과 지침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었으나, 이를 치유해줄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회 문제로 대두된 '심리 방역'에 대해 정부는 어떠한 정책적·지역별 지원도 하지 않음으로써 고립으로 인한 모든 결과를 철저히 개인의 몫으로 돌렸다. 말이 돌린 거지 아예 떠넘긴 것이었다. 말로는 "국민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으로 방역이 진행되고 있다" 했지만, 실제로는 그 희생과 헌신에 대해선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그 부담은 모든 사람이 떠맡고 있다. 심지어는 방역 강화를 외치는 이들까지도.



-코로나 시기에 발생한 한국 사회의 가정 문제에 대해선 아래 기사가 잘 기술하고 있다.

<한국만 줄어든 가정폭력…답은 '코로나가 만든 그늘', 머니투데이 김민우 기자, 2022.03.04.>
링크 :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22030316145725132#_enl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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