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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Sep 24. 2023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feat. 지방 소멸)

지방 소멸은 민주주의에 어떤 위협을 가하는가?

글을 시작하면서 이 질문을 던지려 한다.


"지방 소멸이 민주주의와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분명 있을 것이다. 지방 소멸을 대개 경제적 문제와 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이에 따른 정치적 문제는 상대적으로 뒷전인 관계로 이 질문이 다소 생소하게 여겨질 수 있다. 이게 무슨 뜻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투표선거의 개념을 살펴보아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흔히 선거라고 알려져 있고, 이는 또한 맞는 말이다. 민주주의 사회의 개개인이 (명목으로라도) 정치 주체로 인정받으려면 '주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주권이 전제된 행위가 바로 투표이자 선거라는 점에서 그렇다.


선거의 원칙 중 하나가 바로 '평등선거'다. 그 사람이 어떤 배경을 타고났건, 경제적 지위가 어떻건, 거주지가 어디며 직업이 무엇이건 오로지 해당 국가의 국민이라면 한 표를 행사한다는 것이 평등선거다. 한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의 경우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에 한해 투표권을 보장하지만 결국 투표 대상에 해당된다면 누구나 '오직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볼 것이 하나 있다. 이 '한 표'의 가치가 과연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법리적으로는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평등을 전제로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개개인이 지닌 역량은 상이하며, 그가 사회 및 경제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도 천차만별이다. 예나 지금이나 약자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빈자(貧者)와 강자의 대명사와도 같은 부자의 힘은 달랐고 또 다르다. 특권이 법제화돼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힘 없는 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입헌주의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님)의 수립과 지속을 위해 필수적인 하나의 전제이자 약속이지만, 그 형식이 실질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언제고 그 견고함을 위협받을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나라나 기본적으로 지닌 문제지만, 대한민국은 유독 전 세계를 통틀어 지역 편중이 가장 심한 국가다. 일본만 해도 무려 약 4400만 명이 전 일본 국토의 약 9%에 해당하는 '수도권(일본명 슈토켄)'에 몰려 있는 상황으로, 비율로 따지면 30% 중반(일반적으로 35%로 잡음)이다. 이마저도 상당히 지역 편중이 심한 것인데, 한국의 경우, 대한민국의 실질 지배 영토인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의 12%에 약간 못 미치는 지역(=수도권)에 무려 인구의 50%가 넘게 산다(2020년에 발표된 자료로, 2019년 말에 수도권 거주자가 전 인구의 50%를 뛰어넘었다.). 이는 워낙 대대적으로 보도된 탓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지역 간 경제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의 제2 도시는 사실상 인천이 되었으며, 수도권을 제외하고 가장 큰 도시권인 부산과 대구의 인구 유출도 심각한 수준이다("20대, 가장 많이 떠나" 2023년 1분기 대구·경북 인구 순유출 지속 / 부산 인구 연평균 1만9천명 순유출…절반 이상이 청년). 역설적이게도 광역시를 필두로 한 도시에는 그 주변 도시의 거주자가 몰리지만, 정작 그 대도시 출신자는 '초거대도시'인 서울과 경기도권으로 떠나는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이는 광역시뿐만 아니라 일반 시/군에도 해당하는 얘기다.). 안 그래도 최근 무안군이 시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는데, 이에 달린 댓글은 하나같이 '주변 도시와의 통합'을 주문하는 내용이었고, 한편으론 올해 최초로 부산 지역 대학 수시 모집 인원이 미달이라는 기사도 게시되었다. 지방 중소도시야 말할 것도 없지만 광역시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 위에 언급한 일본은 '그나마' 사정이 나아서, 도쿄 인근으로의 인구 유입이야 계속되고 있긴 하나 상위 대학에는 전부 각지에 설립된 국립대학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평지 면적이 4분의 1에 불과한 대만(중화민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최)상위 대학 죄다 서울 소재 사립 대학뿐이다.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립대학은 서울대를 제외하면 단 한 곳도 상위에 속하지 않는다. 4-50년 전에야(최대한 넓게 잡으면 2-30년 전까지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중 한 군데라도 못 가면 그냥 우리 지역 국립대 가라'며 단호하게 나와 눈물을 삼키고 부모의 말을 따라야 했던 비수도권 출신의 자녀가 상당히 많았지만 이는 정말 옛말이 되고야 말았다.


이런 사회-경제적 격차는 워낙 전부터 오랫동안 지적돼 온 점이라 많은 이들이 인지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지방 소멸이 대체 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가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그 어떤 문제보다 지방 소멸이 현 체제에 위협적인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지방 소멸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야기한다, 말은 거창하지만 이유인즉 실은 아주 직관적이면서도 간단하다. 특정 지역으로의 인구 편중은 평등 선거의 원칙을 매우 강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민주주의의 핵심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앞서 평등 선거의 원칙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하긴 했지만, 이를 엄청 쉽게 요약하자면 생물학적으로 사람이고, 법적으로 그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식상 모든 표는 동일한 효력과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그 형식이 실질을 보장하지는 않음을 염두에 둔다면, 지방 소멸이 왜 평등 선거의 원칙을 위협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규모로 이익집단화될 수 있다는 점이 그 이유에 해당한다.


특정 지역 거주자가 대규모의 이익집단으로 변모한다는 것은, 투표와 선거에 있어서는 그 어떤 차이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력화됨을 의미한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옛 격언이 보여주듯, 누군가가 아무리 그럴듯하고 맞는 말을 한다 해도 그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모여 세를 과시하면 그의 발언은 묻히기 마련인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 수립과 결정 과정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가 '대중'이며, 그러므로 '대중 결집'과 '여론 형성'이 입법가 및 행정 관료의 권한 및 의도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 시대에 수도권 인구 과밀은 필연적으로 수도권 거주자를 중심으로 한 대중 및 여론 형성을 야기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가격 폭등 사태도 엄밀히 말해 서울-인천-경기, 즉 수도권 지역에 해당하는 문제나 다름없었다. 인구의 절반이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의도가 좋았다 한들 그 부담이 죄다 세입자에게 전가됨으로써 집을 구하지 못해(또는 이를 염려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생기지 않았던가? 그로 인해 소위 '영끌족'이 대거 쏟아져나오던 게 고작 3-4년 전 일이다.




정치가 경제에 종속되면 안 된다는 어떤 이의 말에 절대 동의한다. 문제는 이미 정치의 경제화가 진행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고, 따져 보면 안 그랬던 적이 있긴 한가 싶다. 그만큼 정치와 경제는 긴밀한 관련성을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수도권 거주자가 수도권 지역의 이권 수호를 위해 그 어떤 차이를 막론하고 동일한 이익집단으로 결집할 경우, '지방' 거주자들은 도무지 손을 쓸 수 없어 그저 그들이 요구하고 주장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참으로 개탄스럽게도 생존을 위해 수도권 주민이 된 이들은 그와 동시에 기득권층이 돼버렸으며, 수도권 전출을 앞두고 있는, 또는 계획하고 있는 이들은 잠재적 기득권층이 다. 역사적으로 기득권층이란 늘 소수 계급(계층)과 동의어였건만, 한국의 수도 인근 지역의 인구 과밀이 그 어느 국가보다 심화되면서 이제는 '주거 지역'에 의거하여 다수가 기득권화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마저도 수도권의 몇몇 시군은 수도권의 핵인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또한 접경지대 인근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수도권 광역 전철이 확장되고 있고, 언젠가 과밀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면 한때 '개발 규제 지역' 내지 개발 가치나 매력이 떨어진다고 간주되어 온 지역에도 결국 사람들이 들어오게 될 텐데, 인간 지옥이라고 불릴 만큼 사람이 미어 터지는 수도권 전철이 1-20년 뒤에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가 않다.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도 연결된다. 수도권 지역으로 인구가 계속해서 유입되고 이에 따라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가 감소한다면 각 지역의 예산 분배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인구가 적은 곳은 사실상 버려지게 될 것이다. 설령 지자체에 돈이 있다 해도 그 지역에 사람이 없으면 이를 마땅히 쓸 방법이 없어 결국 현금성 정책의 시행이 빈번해질 가능성 낮지 않은데, 이미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격차가 벌어져 있는 상황에서 돈을 뿌린다고 형평성이 보장될까? 오히려 지방 도시는 입주자 미달 사태와 빈집 발생의 속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며, 지역 경기는 완전히 박살나고 심지어는 지방자치제도마저 끝장날지 모른다. 안 그래도 한국이란 국가의 특성상 지방의 중앙 종속 구조가 워낙 공고데 여기에다 인구마저 줄어든다면 안 그래도 심각한 불신의 대상인 지방자치제도 유지불가능해진다. 지방자치의 붕괴, 이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에 해당한다. 미국의 각 주가 그렇게나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를 저지하려는 건 '합중국'이라는 특성이 일순위기기는 하나, 한편으론 국가의 기본 단위는 지역(주州, state)이라는 인식이 미국의 민주주의 구성 요소의 핵심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지방의 인구 유출이 날로 심해지고 수도권에 더 많은 인구가 몰리게 되면 수도권 주민들은 당연히 수도권 지역의 이익(특히 부동산)을 더 잘 보장해 줄 정치인을 원하게 될 것이고, 중앙집권제 국가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에게도 이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인데, 실로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에야, 아니,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이 아닌 이상에야 지역 균형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로 남게 될 것이다. 실제로 박정희 정부 시기에 수도 이전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제대로 추진되기도 전에 그가 살해당하면서 물거품이 됐고, 약 30년 뒤에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 이전을 하려다 성문헌법 국가에서 '관습헌법 위배'라는 황당한 판결이 나며 대차게 실패한 후 행정수도 기능만을 담당하게 된 세종시가 건설되었지만 결과는 보다시피다. 공무원 도시란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다 인구가 30만도 채 안 되는 지방 소도시 수준인 세종시를 과연 어엿한 행정수도라 얘기할 수 있을까?




내가 늘 우려하는 것은, 한국의 각종 사회 문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방 소멸은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있는 매우 중대하고 시급한 문제라서, 15세기(1400년대) 조선 초에 시행된 사민정책 수준의 극약 처방을 써야 나마 해소가 될까 싶수준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대통령이나 정당이 탄핵 불사의 각오로 이를 강력히 추진한다면 아마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산 매매가 최상위 지역을 위시하여 <사유재산권 중대 침해>, <국가 전복 및 공산화 시도>, <거주 이전의 자유 박탈>, <행복 추구권 침해> 등을 구호로 삼아 4.19 혁명, 87년 민주화 항쟁, 2016년 탄핵 촛불 시위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가두시위가 전개될 것이며, 당연히 그 대통령은 탄핵, 집권 여당은 정계에서 완전 축출을 당하고야 말 것이다. 이마저도 가장 점잖은 시나리오로, 대통령 공관이나 국회, 정당 당사 대상의 폭동도 있을 수 있으며, 최악의 경우엔 계엄령 발효나 쿠데타 발생 가능성도 있다. 수도 이전 문제로 온 나라가 난리인데 이를 평화적이고 온건한 방식으로 진화(鎭火)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에 열거한 이야기는 '소설', 즉 가상의 영역에 해당하지만, 그만큼이나 수도권 인구 과밀 현상 완화는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배제한다면 사실상 해결할 수 없는, 모두의 손을 떠난 문제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안 그래도 정치 세력의 극단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비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몇몇 세력을 필두로 권위주의(=독재) 체제로의 복고 물결이 퍼지고 있으며, 현존하는 최고(最古) 민주공화정 국가인 미국의 양당 체제는 그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채 대립만이 존재하는 정치적 혼란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이는 곧 미국 국내 불안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정치-경제의 불안으로 확대되어 왔다. 미국과 쏙 빼닮은 한국의 양당 체제는 오죽할까?

이런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중차대한 범국가적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는 없으며, 해결은 둘째 치고 이를 직면하는 것조차 너무나 어려운 형국이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위협받고 있는데 이를 지키고 또 발전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주권자 개개인과 대의자(정당)가 극으로 치닫고 있으니 지방 소멸이고 뭐고 당장 내가 지지하는 당, 내가 속한 당이 집권하는 게 우선인 것은 현 상황으로 보아 그들에게 있어선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과제이자 목표다. 그런데 그 과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수단이 '표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고, 그 표를 가장 많이 확보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이들이, 인구의 절반이 넘게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을 간과한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 그래도 정치 기본적으로 지역구를 기반으로 하기에 지역구 주민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게 의회 구성원(=의원)인데, 내가 소속된 지역구 주민들에게 집중하기보단 더 많은 이들이 거주하는 타지역 주민들을 위해 당 차원의 역량을 총동원하는 것이 당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판단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진정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의회 정치는 악화 일로로 치닫는 수준을 넘어 아예 산산조각나고 말 것이다.


평등 선거의 원칙이 지방 소멸, 달리 말해 수도권 인구 과밀로 훼손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이유다. 정치의 극단화와 대립의 격화는 반드시 대중영합주의의 유혹을 받는다. 그런데 그 대중을 구성하는 다수가 특정 지역에 거주한다면, 정치가들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들의 이익만을 증진하려 들 것이고,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그들의 이권은 철저히 지켜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기울어진 시소처럼 수도권은 굳건한 철옹성이 돼갈 것이고, 비수도권의 도시 살아남으려 무슨 짓을 해도 수도권의 아성에 가로막혀 번번이 실패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진정 이 나라의,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되지 않으리라 그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이 추세가 더욱 심해져 수도권이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점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은 근본적으로 선거를 시행하는 의미를 잃고 말며, 그 한 측면으로는 더는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할 이유없어진다.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이 진행될 것이며, 또한 모든 정치인이 다수 논리를 들며 적자생존을 외치게 될 텐데, 평등 선거의 원칙이 무슨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지금도 위태로운데 그때에 가서는 1인 1표가 정말 동등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게 된다. 대변할 지역구의 이익이랄 것이 없어지고, 지방의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줄어간다면 그 누가 수도권의 밀집된 인구를 흩어야 한다고 당당히, 강력히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등장한 근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오로지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득권 논리로 변질될 텐데, 이는 옳지 않다고, 지금이라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할 이들이 나오기는 할까? 혹여 나오더라도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정계에서 축출되거나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며, 그들에게 있어 가장 유력한 선택지는 자유와 민주의 중대한 훼손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1차 대전과 대공황으로 허덕이던 독일을 구원하겠다고 나온 이가 누구였나? 그가 어느 당을 이끌었던가?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이고, 그 당은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속칭 나치스)'이 아니었던가? 그와 그 추종자가 자행한 짓을 떠올려 보라. 지금은 사람 해하지 않되, 여태까지 인간이 믿어 왔던 여러 정치-사회적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선택을 할 이가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지방 소멸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경제적 문제를 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 모두는 <1984>, <동물농장>, <멋진 신세계>를 그저 수많은 가능태의 하나로만 간주할 수는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 것이며, 민주주의를 혼란과 무능으로, 권위주의를 안정과 질서로 인식하는 이들로 가득하게 될지 모른다. 이게 불과 수십 년 전 다수 한국인의 모습이었으며, 아직 적잖은 이들이 이러한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음을 고려한다면, 이를 방치할 경우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실로 껍데기만 남은 채 특정 세력의 전유물로, 특정 가치의 괴뢰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을 결코 외면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안 그래도 '주거 계급론'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지방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수도권에서 태어나 자라났고 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임과 동시에 실질적으로는 계급 없다는 나라의 상위 계급에 해당하는 것과 같다.


과연 한국인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포기해서라도 지방 소멸과 수도권 과밀 문제를 직면하고 또 해결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명목적으로라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며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인가? 개인적으론 이미 답을 내린 상태만, 그 답이 부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둘 다 극과 극이라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제발 이 나라가 위기를 회피하는 쪽을 택함으로써 어느 쪽으로든 극으로 치우쳐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리고 이 21세기에, 국가의 명운이 곧 개인의 존망으로 이어지는 비통하고 참담한 상황은 맞이하지 않아야 할 테니.

이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길을 잘못 든다면, 국가가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주권자'인 우리 개개인은 다시 한 번 국가와 사회의 부속으로 전락하고야 말 것이다. 이는 터무니없는 공갈성 예측이 아니라, 실제로 직면할지도 모를 잠재적 위기다.


대처가 시급하다.



<끝>


-대표사진 : https://biz.chosun.com/topics/topics_social/2022/11/01/RJE4XFY72NBMRPPZKMS7HRCW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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