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Sep 28. 2023

오늘도 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노동자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쉼을 허하라.

추석 연휴 첫날.

엄마는 일을 가셨다. 주간보호센터에 오는 노인들을 맞이하시기 위해서다. 일주일에 남들과 같이 5일을 일하시지만, 요양보호사로서 필수로 수강해야 하는 교육을 위해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 탓에 월차를 사실상 쓰지 못하시는 엄마는, 도대체 그 자녀들은 무엇을 하는지 몰라도, 명절마저 혼자 있어야 하는 노인들로 인해, 쉬고 싶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며 집을 나서셨다.

엄마는 10월 2일 임시공휴일에도, 10월 3일 개천절에도 일을 나가신다. 공휴일 휴식은 실로 남의 이야기.


일주일에 6일을 일하시는 아빠. 그런데 그런 회사에서 또 명절에는 일을 안 시키는 모양인지 10월 3일까지 내리 쉬신단다. 그러나 정작 아빠에게 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아빠에게 쉼이란 '정규 노동', 즉 생업이 아닌 다른 노동을 할 수 있는 날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월초에 아빠는 4일간의 휴가를 내내 벌초하러 다니시는 데에 쓰셨다. 이젠 좀 쉬시는 법을 배우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쉬면 뭐가 생기냐는 식의 대답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하시는 '훌륭한 노동자'이신 아빠.


오늘 하루, 지역 마트는 성황일 것이다. 명절 준비로 바쁜 이들이 대거 그곳에 몰릴 테고,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겨우 명절 하루를 휴일로 받아 그 하루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아침부터 밤까지 물품을 나르고, 진열하고, 계산할 것이다. 거기에다 명절을 맞이해 전 부치는 이들을 임시로 고용할 테니 일하는 사람으로든, 식재료를 구매하러 온 사람으로든 마트는 미어 터지겠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누군가는, 그리고 그들은 대답할 것이다. "그건 그들/우리가 선택했기 때문에 별 수 없다."라고.


지도 앱으로 음식점과 카페 몇 곳을 검색해 보았다. 많이 쉬는 곳은 딱 이틀. 오늘(28일)과 내일(29) 쉬더라. 일반적으로는 딱 추석 당일만 쉬고, 심지어는 아예 휴무일이 없는 영업장도 있었다(대부분 프랜차이즈 업종이 그랬다.).

일반 노동자야 선택지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자영업자들은 정기휴무가 없는 이상에야 겨우 하루밖에 쉬지 않는다는 게 쉽게 수긍이 되지 않는다. '그들이라고 안 쉬고 싶은 건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쩌면 이때야말로 영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만약 후자(後者)라면, 그건 그것대로 비극이다.




언젠가 한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는 쉬고 싶어하면서 남이 쉬는 건 싫어한다. 음식점 한 곳이 쉬어도 '장사 안 하려 그러나?' 한다. 이렇게 남 쉬는 꼴 못 본다."


누군가는 이에 동의 안 할지 몰라도, 나는 저게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내가 쉬는 날에 내가 자주 가는, 혹은 내가 가기로 한 영업장이 쉬면 못마땅한 생각을 하는 게 사람들의 심보다.

그런데 그들은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내가 쉰다고 그들이 일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

마트도 마찬가지다. 그냥 추석 명절 전날까지만 열어놓으면, 그리하여 휴일을 맞이해 영업을 일시 중단하기 전에 부지런히 마트에 가서 식재료를 사 오면 될 문제다. 굳이 추석 직전에 뭔가를 사야 할 이유도, 그리하여 마트 직원들이 고작 하루만 쉬어야 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사업자의 욕구와 소비자의 욕구가 합치함으로 발생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자다. 노동자라면, 직종은 다를지라도 같은 노동자인 이의 형편과 처지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파업을 하고 투쟁을 하는 것만이 연대가 아니라, 나는 쉬는데 저 사람은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이유로 쉬지 못하는 상황에 문제 의식을 갖는 것, 이것이 인간으로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이러한 의식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 불야성의 거리, 늦게까지 놀다 들어갈 수 있는 건 실은 누군가의 노동이 전제돼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모두가 외면한다. 외국인마저 자국은 재미가 없다고, 반면 한국은 새벽까지도 밖에 있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하는 것에 '역시 한국'이라며 박수를 치지만, 그들이 이룩한 사회는 누군가가 저녁 이후에까지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리하여 각자가 알아서 자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회임을 우습게 여긴다. 누군가의 편리함(편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노동이 투입되어야 한다. 이 간단한 진실을 간과하느냐, 아니면 무겁게 여기느냐가 한 사회의 전반적인 삶의 질을 좌우한다.


도대체 왜 스타벅스는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을 해야만 하는 걸까? 평소에는 오전 7시에 영업을 시작하지만, 연휴 기간이라는 이유로 '한 시간' 미뤄 가게 문을 오전 8시에 여는 것을 두고 그들에게 '쉼이 주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일까? 대중교통 기사/운전수는 쉴새없이 승객을 나르지만, 정작 그들은 언제 쉬며, 언제 집에 갈 수 있는 걸까? 자영업자들은 왜, 굳이 하루나 이틀만 쉬면서까지 가게 문을 열려 하는 걸까? 왜 주간보호센터는 단 하루의 휴일 없이 매일 문을 열어야 하는 걸까? 요양원은? 절대적으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정당한 그 어떤 추가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혹자는 오히려 '그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데 왜 추가급이 필요하냐'며 반문하겠지만, 그런 생각이야말로 나라를 노동 지옥에서 못 벗어나게 함을 그는/그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몇 달 전, 주 52시간제에서 69시간제로의 소위 '개선책(?)'이 발표되자 어마어마한 반발이 있었다. 논리도 참 웃겼다. 한꺼번에 일하고 한꺼번 쉬면 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반발했다. 지금도 못 쉬는데 69시간제가 웬말이냐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거센 저항을 직면한 정부는 이 안을 철회했다.


하지만, 노동 시간 상한치가 주 52시간이든, 69시간이든, 문제는 이게 아니다.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는 사회,

쉬어야 할 때 쉴 수 없는 사회,

쉬려면 사유를 대야 하는 사회

심지어는 쉴 수 있는데도 쉬지 않는 사회.

한국이 이런 나라라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선택에 따른 결과'라는 말,

합리적이지만, 한편으론 참 잔인하고 냉혹하다.

그들에게는 왜 휴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가?


묻는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쉴 수 없는가?

누군가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쉴 권리가 박탈되어도 되는가?

정말 불가피하게 쉬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분하고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는가?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이 나라엔 '명예 고용자'가 너무 많다.




최종수정 : 2023.09.28. 17:21

작가의 이전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feat. 지방 소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