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집단 사직으로 인한 의료 공백이 지속되면서 '의료 재난 위기'가 대두되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하다.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해야 할 이들이 파업하거나 사직했으니 말이다. 그 짐은 병원에 남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떠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소위 '의사 수 부족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정원 증원을 위해 갖춰야 할 것을 상세히 파악하고 준비에 돌입하는 과정은 완전히 생략한 것도 문제거니와, 애초에 왜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진학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간파했다면 정원을 2천 명이나 늘리겠다는 이런 무지막지한 대응책은 쉽게 고려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이 방면에서 윤은 문보다 더하다). 잘살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 정원 증가가 확정된 상황에서 다른 계열로 진학하려 할까? 전혀. 지금도 대기업 계약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어떻게든 의대에 가려는 게 이 나라의 현실 아닌가. 더군다나 몇몇 '연구' 결과와 같이 진짜 이 나라에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지조차 모르겠다.
아무튼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한국에선 코비드 방역에 대한 반성이 영원히 불가능하겠다는 것이었다. 국민의 안전, 생명과 직결된 직군 종사자들의 쟁의가 금기시된다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선 그 어떤 행위든 정당화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역 논리가 그랬고. 감히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나 사회를 상대로 그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 나라 사람들의 여론이라면 그밖의 가치는 고려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되버린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고 의사들의 투쟁이 (간호사들의 지난 쟁의를 고려할 때) 과연 합리적인지, 그리고 지속 가능한지에는 회의적인데다 그간 의협의 행태를 고려할 때 내가 굳이 의사들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는 없으나, 사회에서 고평가받는 직군의 집단 투쟁이 꽤나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과그들을 질타하는 이들의 논리를 고려하건대, 결국 제 목소리를 내려면 이 나라에서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의료에 대한 국민 정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강경하다는 점을 재차 깨닫게 된다.
좌우간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사항은 후자다. '생명'과 '안전'만을 자유와 권리, 사회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 합리성 등의 앞에 놓으려 한다면, 지난 3-4년간 사회를 헤집어 놓았던 방역의 근본적 문제점과 모순을 지적하고 그 책임을 묻는 일이야말로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대로라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숭고하고 처절한 투쟁을 어찌 감히 비판하고 비난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 사례와 (이면에 가려진) 각종 문제 및 의혹은 '대를 위한 소의 희생'으로 간주하여 묻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색적으로 말하면 사람 하나 살리는 데에 수단이고 방법이고 따질 이유가 없으니 그 방법의 정당성이나 후과 따위 운운하는 행위는 역적질이나 다름없는 것이라는 의미다.
4년 전, '의료진 여러분 고맙습니다'라는 구호로 전개된 캠페인(?)과 지금 상황이 퍽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그때 대중이 의료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던 건, 결국 그들이 사회와 정부의 요구, 궁극적으로는 '나의 필요'를 충족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지, 그 외에 다른 이유는 없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번 의료 대란 사태에서 의료진을 향한 국민적 비난과 지탄이 더더욱 이해가 되는 한편, 동일하게 이 문제를 추진하려 했던 전임 정부를 대했던 대중의 반응은 지금과는 꽤나 달랐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아래 세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는다.
도대체 한국 사회의 대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진정 사회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서로 다른 주체가 제기한 동일한 문제'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진정 공평하고 합리적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