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의 양태가 대동소이하다고는 하나, 유독 이 사회에는 다수가 '이상적인 기준'을 설정, 그리고 이에 대거 동조하여 그 기준을 달성한 이는 우러르고, 이에 미달한 이(자기 자신을 포함)는 조롱·비난하거나 채찍질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신체(사이즈/외모)와 소비 행태.
정작 그 이상적 기준의 달성이야말로 비정상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방식을 전제함에도, 아무런 문제 의식조차 느끼지 못한 채 오히려 이를 자아 실현이나 성공의 척도처럼 여긴다는 게 문제로, 그게 잘못된 것이냐 되묻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기준에 스스로를 완전히 끼워맞추었기에 이에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며, 심지어 그것이 자기 자신과 사회를 공멸로 이끄는 것이라고도 전혀 생각지 않는다. 이를 위해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그것이 사회 차원으로 확대된 나머지 각종 상황에서 유무형의 압력이나 부담으로 작용함에도 여전히 그 이상적 기준에 부합하고자 애를 쓰는 것이다. 요컨대 '극단성의 일상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한 사람만 그런 것이라면 이는 그저 개인의 집착이나 강박으로 그친다. 하지만 대중이 그런다면 얘긴 달라진다.
그것이 자기 착취일 뿐만 아니라 사회 차원의 집단 착취임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그리고 그 어떤 사회보다) 강하게 '행복'을 희구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외적인 표준에 집착하는 사회가 정말 행복한 곳이라 할 수 있을지, 또 이런 사회에서 궁극적으로 행복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심히 의문이 든다.
한국은 그야말로 개인의 개인에 대한, 사회의 사회에 대한 대규모 가스라이팅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