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알고 지내는 사람도 이젠 얼마 없지만, 그들에게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내가 얼마나 대만을 좋아하고 또 잘 아는지 안다는 것이다. 평소에 대만 대만 노래를 부르고 다니기도 했고, '중국고대문화' 수업에서 '중화민국 현대사'를 주제로 자원하여 발표까지 했으니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내가 대만에 있은 건 고작 1개월 남짓이다. 첫 번째 2주는 종교가 있었을 때 종교 선전 활동으로 보냈고(전도나 선교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지만 지나치게 종교적이라 굳이 쓰고 싶지 않다), 두 번째 2주는 학교에서 보내 준 단기 어학 연수로, 세 번째 5일은 생애 최초로 한 해외 여행으로 보냈다. 그렇게 긁어 모은 날이 한 달 조금 넘는다. 대만에 대한 애정에 비하면 상당히 짧은 시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만을 향한 나의 마음이 결코 다른 이에 비해 떨어지지는 않는다. 저기서 '다른 이'라 함은 타이펑진마(臺澎金馬) 지역에 거주하고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중화민국 국적을 보유한 사람을 말한다. 복잡한 대만의 정치 및 역사 사정상 '중화민국'을 사랑하는 이와 '대만'을 사랑하는 이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나는 중화민국도 사랑하고 대만도 사랑한다. 물론 내가 대만을 더 사랑했다면 제목을 '나의 중화민국, 나의 대만'이라고 달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명을 지명에 앞세운다는 것은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니까.
이렇게 '중화민국' 운운하는 외국인을 대만 사람들은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확신하건대, 대만이 없다면 중화민국은 없다. 설령 중화민국 정부가 중화인민공화국, 곧 중국공산당으로부터 대만을 지켜 적화(赤化)하지 않도록 했다 해도, 이미 중화민국이 대만에 뿌리를 내린 지 70년이 훌쩍 넘은 이상 중화민국과 대만은 떼어놓을 수 없이 긴밀하게 연결된 유기체나 다름없다. 다만 중화민국은 국가요, 대만은 지명이라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있을 뿐, 중화민국의 존립을 위해선 대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대만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들의 입장과 동일하다.
몇 년 전부터 10월 10일이 되면 나는 늘 대만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국경절 행사를 시청했고, 이는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식전 공연도 보았고, 라이칭더 총통 부부와 샤오메이친 부총통 등 정부 요인과 고위 각료가 외빈을 맞이하는 것도, 한궈위 입법원장이 축사를 하는 것도 봤다. 아쉽게도(?) 상황상 라이칭더 총통의 연설은 보지 못했지만 역시나 대만의 주권을 역설하고 중국에는 현상 변경 시도를 단념하고 평화 유지에 전념할 것을 주문했더라.
이 국경절 행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준비를 해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국가주의적 행사가 중화민국의 얼마 남지 않은 실질 영토에서 수십 년간 진행돼 왔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어쩌면 철 지난 상징인 국부(國父) 손중산의 초상(肖像)에 국궁례(鞠躬禮)를 올리는 것도, 헬기에 초대형 국기를 매달고 타이베이 상공을 비행하는 것도 실로 '국가 종교'를 연상케 하는 의례 행위 같다는 점에서 '저게 대만 사람들에게 먹히나?' 싶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과정을 영상을 통해 관람하는 외국인인 나조차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보면 가슴이 뛰고, 마치 무너져 가는 청조를 타도하고 새로운 나라, 곧 민국(民國)을 건설하고자 몸과 마음을 바쳤던 '선열'들의 심정과 행보가 떠오르는 것만 같아 벅차오를 때가 많다. 비하자면 망해가던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 조선을 세우려던 소위 '급진개혁파'나, 광복을 맞아 인민주권국가를 세우려 분투하던 독립운동가(여운형이나 김구 등)들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은데, 당연히 사선을 넘나들었던 그들에 나를 투영한다는 것은 웃기면서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중화민국과 대만을 향한 나의 마음 또한 결코 어떤 허상이나 환상에 불과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올해는 중화민국이 건국된 지 114년이 되는 해다. 한국은 멀쩡히 서력 기원을 사용하지만, 대만에서는 높은 비율로 '민국 기원'을 사용하여 중화민국이 수립된 1912년을 기년으로 잡아 햇수를 센다. 그러니 올해는 민국 114년이 되는 것이다.
중국 본토든 대만이든 그 어떤 관계도 없는 순수(?)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적 정체성과 사고 방식을 갖고 자라난 내가 어떻게, 또는 어쩌다 이렇게 중화민국과 대만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신비스럽고 의아하기 짝이 없다. 엄마의 열의로 초등학생 때 한자를 배우고(사실 억지로 해서 당시엔 그 어떤 재미도 못 느꼈다),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한문을 배우며 고전(古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이 계기라면 계기일 것이고, 결정적으로 고등학생 때 일본어 대신 중국어를 택한 것이 근본적인 요인일 것인데,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간에,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나 그의 향배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지금의 내가 대국인 중국(PRC) 대신 작디 작은 대만과 중화민국(ROC)에 눈을 돌리게 될 줄을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을 테니까.
아무튼 과정이 어쨌든 간에 내가 대만이란 지역과 중화민국이란 나라를 사랑하는 것만큼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랑이 결코 맹목적이지는 않음을 밝힌다. 직설하자면 대만 땅과 그곳 사람들, 그리고 그곳의 풍속을 사랑하는 것과 국가(國家)를 사랑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일로, 과연 이 중화민국이란 나라가 사랑받을 만한지를 따져 보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해야 정직한 처사일 것이다. 중화민국의 시작은 중국국민당과 결코 뗄 수 없고, 중화민국의 역사에서 저 정당이 지니는 의미가 엄청나다는 걸 고려하면,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벌인 과오와 실책, 그리고 대만에서 자행한 고압적이고 강압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모습은 절대 긍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 국민당과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중화민국이란 나라는, 그저 공산주의를 표방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천진난만하게 띄울 만한 그런 위치에 있지는 않다(한심스럽게도 순전 이런 이유로 중화민국을 추앙하는 이들이 있더라마는).
그러나 이번 국경절 연설에서 라이 총통이 말했듯, 시간이 흐르며 권위주의 통치 시기를 민주정치 시기가 앞질렀다는 사실은 결국 이 중화민국이 대만화(臺灣化)해 온 과정, 즉 중화민국의 대만 현지화가 양자를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런 관계로 자리매김하게 했음을 증명한다. 그래서 내가 중화민국을 사랑하는 것은 곧 대만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반대 또한 성립하게 된다. 중화민국을 사랑하면 대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대만을 사랑한다면 중화민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동의하지 않거나 쉽사리 하기 힘든 이들(대만 본토주의자 또는 화교)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적어도 나의 입장으로는 그렇다.
역사란 참으로 운명의 장난과도 같아서, '중화'이면서 동시에 '중국'이었던 이 나라가 되찾은 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은 영토에 갇히게 되고, 그렇게 애타게 그리워했던 고토를 회복하지 못한 채 수십 년이 흐르면서 이제 사람들은 '중화'도 '중국'도 거부하는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내가 이런 상황을 두고 뭐가 맞니 그르니 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은 처사겠지만,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인정하는 존재로서, 역사란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음을 알기에, 나는 중화민국을 우선시하는 사람들도, 대만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도 다 이해가 간다. 그래서 여권에 적힌 국호 REPUBLIC OF CHINA가 대폭 축소되어 청천백일 문양 옆에 둥근 띠의 형태로 새겨진 것이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TAIWAN이란 글자가 커진 건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생각에 또 수긍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각으로 대만과 중화민국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 땅과 나라가 현실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바깥 사람의 입장에서야 뭐라고 말하든 상관이 없을 수 있겠으나, 안 사람 입장은 그렇지 않음을 아니 어느 하나가 딱 옳다고 단정짓기는 곤란하지 않은가. 겨우 한 달 되는 시간만을 대만에 있었던 나도 그곳을 이렇게나 그리워하는데, 정작 대만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이곳이 얼마나 지긋지긋할까?
누군가에겐 천국이고 낭만인 곳이 누군가에겐 지독히 평범한 곳이자 심지어는 지옥일 수 있다는 점, 이를 아는 나는 명확한 관점이 있긴 하지만, 현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존중하기에 오늘도 중화민국을, 그리고 동시에 대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게 나의 중화민국과 대만에 대한 신념이고, 마음이다.
오늘 10월 10일의 의미 또한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해외 곳곳에 거주하는 화교에게는 가슴 벅찬, 그리움을 일으키는 그런 날이겠지만 대만 사람 입장에선 그냥 국경절 행사나 하고, 어둠이 찾아오면 밤하늘에 불꽃이 수를 놓는 그런 날 정도일 터.
나는 이 두 가지 마음을 다 이해한다. 그리고 이에 공감한다. 다만 그럼에도 나는 이 날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 10월 10일 쌍십절, 중화민국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자, 중화민국이 대만과 하나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이 날을 나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이 날을 기념할 수 있기를, 중화민국과 대만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 또한 이 날을 함께 축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중화민국과 대만이 부디 안녕하기를,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굳세게 버티기를 바란다. 그것이 중화민국 국적자도, 대만 거주자도 아닌 그저 이웃 나라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곳에 사는 한 한국인의 진심어린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