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Jun 18. 2022

어떤 글에 실려 있었던 구절

정확히 어떤 글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인터넷에서 본 글인지, 아니면 책의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단락이 '음모론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기억한다.

<+>글을 올리고 나갑자기 기억이 났는데 <의무란 무엇인가 : 마스크 시대의 정치학>이란 독일 태생의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이트(역자 박종대)'가 쓴 책이다. 참고로 그는 방역(에 따른 각종 통제조치) 옹호론자의 입장에서 해당 도서를 집필했다.


대강 내용은 이렇다. <음모론자는 자신을 제외한 외부 세계, 즉 세상과 악전고투하는 한 명의 전사다. 당연히 자신과 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이 주변에 없기에 고립될 수밖에 없고, 그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 여기기보단 '사람들은 자신들이 틀린 생각을 갖고 있음을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며 더욱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간혹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이들을 온라인에서든 실제 공간에서든 마주치게 되면(1차적으로는 대개 온라인에서 조우한다) 그들과 유대감 및 연대의식을 형성하여 함께 '진실을 깨우치지 못한 세상'과의 싸움을 결의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평평한 지구론'을 신봉하거나 금번 코로나 바이러스 대유행이 '사기'이며 조작되었다 말하는 사람들을 들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베리칩(몸에 이식하여 생체정보를 외부에 인식하게 하는 칩)'을 기독교 경전에서 사탄의 징표라 하는 666표와 동일시하여 절대 이 칩을 심으면 안 된다고 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도 동일한 예시 중 하나다. (작가인 프레이트 교수는 저런 이들을 비난하며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로 묘사한다.)


한편, 음모론자와 극단주의자는 사실상 동의 관계로, 음모론에 대한 언급은 곧 극단주의에의 언급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극단주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극단주의로는 정치 세력으로서의 극우와 극좌를 들 수 있는데, 극우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배운 것 없고 멍청하다'는 것이고, 극좌에 대한 인식은 '헛 배워서 아는 척은 하지만 실속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실제 극우와 극좌의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다만 극우에 속한 이들의 주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주로 자연과학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극좌인 이들은 현상(특히 모순)을 분석하는 능력은 갖추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하는 방법과 그 과정이 매우 편향적이고 또 실현하기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당연히 양측 모두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러나 비단 이 한 가지의 차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극우와 극좌 모두 '변화'를 외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극좌의 경우는 막스Marx주의라는 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나름의 체계가 서 있고, '체제의 모순'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역사·사회적 기반이 있다. 하지만 극우는 체제의 모순보단 존재하는 현상이나 대상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고, 추상적인 '진실'을 자주 언급한다는 점에서 극좌와는 다소 다르다. 극좌도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사실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만들어 낸 거짓'이라고 얘기하긴 하지만 극우는 뭔가 좀 더 뜬구름을 잡는 듯한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주로 나오는 것이 '음모론'이다. 극좌 세력은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라 하는 배후 세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당장 '자본주의'란 타도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우는 위에 언급했듯 극좌보다 추상적이라 사람들이 극좌의 말을 들으면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닌데 결론이 왜 그 모양이냐'고 생각하지만 극우의 주장을 접하면 '대체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반응을 많이 보이고는 한다. 거기에 차이가 있다. 추가적으로 극좌파는 '공산주의'라는 체계를 기반으로 정치·경제의 변혁을 외치기에 운동성이 있는 한편 결사(結社)하여 움직이므로 스스로가 외로운 전사라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지만, 극우파는 사람들에게 아예 '비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자신의 주장이 수용되지 않음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스스로를 두고 '진실을 외치기 위해 투쟁하는 외로운 전사'라는 생각을 더 쉽게 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극단주의 세력을 마냥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그들은 분명 어디 화성이나 금성에 살면서 지구로 자신들의 의견을 송신하는 외계의 존재가 아니라 당장 이 지구, 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무시할 경우, 극우는 특히 세를 규합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므로 되레 역효과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런데 더 중요하면서도 '골 때리는' 문제는 따로 있다. 사실 언론에서 말하는 것이, 그리고 정부나 전문가의 주장이 언제나 옳지는 않음은 다수가 인정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이들의 발언이나 주장이 표면적으로는 현상이나 사실에 부합할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맞지 않아 그들의 입장을 따르게 되면 궁극적으로, 또는 장기적으로 일 잘못되겠다 생각하는 이들은 이미 전부터 존재하여 '당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애초에 잘못됐다'고 주장해온 극우와 결을 같이하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매번 모든 극단주의자가 헛소리를 한다'는 명제는 귀납적으로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틀리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은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정부에서 말하는 것은 다 사기고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어쩌고)…"라고 말했을 뿐인데 정작 그중 일부라도 맞는 내용이 있어 사회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상식적인 사람'을 자처하며 양극단을 경계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반(反) 윤석열파이자 극우를 자처하는(이런 사람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하지만) 변희재가 윤석열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 개인, 그리고 김건희 여사를 비판·비난하자 이를 안 (또한 반윤세력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 인사들이 자신들이 진행하는 방송이나 제작하는 영상 컨텐츠 촬영에 그를 섭외하여 같이 대화하는 일이 생겼다. 되게 웃기면서도 얼핏 보면 불가해한 현상이다. 변희재는 본래 한국의 진보 세력에 속했는데 특정 시점을 기점으로 우파 성향을 갖게 되더니 아예 스스로를 극우로 칭하는 데까지 이른 사람이다. 그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사기이고, 그러므로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니 당연히 탄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 뿌듯함을 느껴온 민주당 지지 세력이, 안 그래도 0.8%의 근소한 표차로 20대 대선에서 패배하여 분노와 슬픔의 칼을 갈고 있었던 찰나 '극우 인사'인 그(변희재)가 '안티 윤석열'을 자처하자 '이게 무슨 일'이냐며 거의 불구대천의 원수 격인 그와 일종의 '전략적 제휴' 관계를 수립한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배신하고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이고, 변희재의 입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부실한, 조작된 증거를 기반으로 탄핵에 이르게 한 아주 나쁜 놈이기에 여기서 의외의, 예상치 못한 접점이 생겨버린 셈이다. 그리하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버린, 적잖게 일어나긴 하지만 분명 '정상적'인 건 아닌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내가 왜 이렇게 변희재와 민주당 지지자(특히 김용민 등)에 대해 구구절절 언급했느냐, 방역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정부와 언론, 전문가의 선전 구호가 완전히 먹통이 된 2022년 현재, 방역의 유지가 무의미함에도 애써 그 구태 체계를 붙들고 있는 이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예상치 못하게 2020년부터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정치방역을, 2021년엔 백신 무용론(물백신)을 주장해 왔던 이른바 '극우세력'과 접점이 생겼음을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한국인이 여전히 마스크가 바이러스 감염을 막아준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델타 및 오미크론 대유행을 거치며 정말 그러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 사람들과, 방역의 장기화와 지나친 강제가 사회 곳곳에 큰 구멍을 내면서 오히려 없던 문제를 생기게 하고 있던 문제는 키우는 꼴임을 인지하여 생각을 바꾼 이들은 이렇게 '신생 소수'가 되었는데, 그들이 막 발걸음을 떼자 '전부터 있어 왔던 소수'인 극우 세력이 근처에 있음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백신의 효능 자체에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지만 백신을 강제하기 위해 도입한 방역패스의 실행을 '차별'이라 비판하고, 정작 마스크를 주로 벗는 곳은 실내인데 마스크 착용이 실내에서 의무화되어 있는 것이 무의미하다 여기며, 각종 의무화 조치를 해제하는 방식을 택한 세계 각국과 달리 여전히 의무화 조치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바, 결론만 따지면 극우세력과 거의 궤를 같이하는 수준이다. 전부터 극우 세력의 극단적 주장과는 거리를 둬 왔던 이들이 생각의 변화만으로 그들과 '연대'하기에는 꽤나 꺼림직한 상황이 생긴 것으로, 강하게 주장을 밀고 나가자니 극단주의자 취급을 받을까 염려가 되지만, 그렇다고 안 그러자니 사회가 계속해서 통제 일변도로 치우칠 것이 걱정되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정당정치의 영역에서는 전략적 제휴라는 것이 의미를 지닐지 몰라도 크게 보기 좋은 건 아닌 것 또한 사실인데, 방역은 순전히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정치의 영역이라기엔 너무나 많은 영역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전략적 제휴라는 것이 그다지 유효한 분야가 아니다. 자칭 극우 세력과 진보 세력이 공적을 만나 손을 잡은 것이 못마땅한 이가 스스로 동일한 행위를 한다?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이 자기모순임을.

마치 일본의 역사적 만행을 비난하고 북한과의 통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가 똑같은 생각을 하지만 정작 '환단고기'를 운운하며 '배달국의 중국 대륙 국가 수립론'을 외치는 국수주의자들을 맞닥뜨렸을 때 '쟤넨 뭐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내 생각에, 분명 극단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를 볼 때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겠다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이런 딜레마에 처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글을 쓰는 내가 그렇다. 난 내가 극우 취급을 받고 이기주의자로 매도당하는 것이 매우 불쾌한데, 결론적으로는 그들과 한패가 되어버리는 이런 상황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하지만 이대로 두었다간 한국은 민주주의 제도는 멀쩡히 유지되지만 사회는 '연성 권위주의'화되는 이중적 상태에 놓일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별 걸 다 고민한다고 하겠지만, 방역 전체주의가 횡행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사실상 동류 취급을 당하기에 이를 간과할 수는 없겠단 생각이 들어 하는 말이다.

다행인 것은, 분명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정부의 방역을 비판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각자의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단 점이지만, 불행히도 이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이나 이 사회는 아직도 방역을 종교처럼 믿고 있다. 이런 절대적 열세의 상황에서 극단주의에 발을 담그지 않고자 하는 이들은 더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니, 이를 어찌 쉽게 넘길 수 있을까? 이미 떠나온 길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가기로 한 길은 가시밭길이니, 참으로 어려운 싸움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으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편으로는 극우주의자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도, 공감도 된다. 이 또한 의도치 않게 말이다.


그들과 걷는 길(방향)은 다르지만, 하필 중간에 잠깐 같은 길을 걷게 됐단 현실이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사람 일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절감하는 요즘이다. 사회는 미쳐 돌아가고 있는데, 미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헛소리를 주로 하는 이들과 한 목소리를 내게 될 처지에 있게 됐음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사람들이 알기는 할까?



*본인의 블로그에 게재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왜 사극풍 드라마에서 민중은 주로 전라도 말씨를 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