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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01. 2022

왜 사극풍 드라마에서 민중은 주로 전라도 말씨를 쓸까?

이런 것도 문제 삼느냐 하기엔, 너무 만연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극풍 드라마에 출연하는 평민 배역은 왜 전라도 말씨를 쓸까?'란 생각 말이다. 이른바 정통 사극을 제외한, 고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의 경우 실제로 상민이나 노비는 '한양말'이 아닌 '전라도 말씨'를 구사한다. 어릴 때에도, 커서도 별 생각 없이 들었던 그들의 대사가, 언젠가부터 그다지 순순히 들리지 않게 됐다. '이게 맞나?'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동이 워낙 어려웠던 전근대 시대엔 지역적 차이가 지금보다 훨씬 뚜렷했을 것이다. 그러니 같은 도(道)를 넘어 아예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소통이 훨씬 어려웠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양으로 와 생활했던 신료들 또한 각지의 방언에 완전히 익숙해 있었을 것이므로 소통의 편리함을 위해 일종의 '한양화' 작업을 거쳤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21세기인 현재, 드라마 대사를 지을 적에 그들이 썼던 고어()를 살릴 수는 없으니 일단은 '현대화된' 양반 계급의 말씨에 가깝게 대사를 지었으리라고는 생각한다. 사극이나 사극풍 드라마에 등장하는 저 '양반 말투'는 상대높임법 중 격식체에 속하는 '하십시오' 또는 '하오' 및 '하게'체로(상대높임법은 표준어를 기준으로 함), 19세기쯤에는 한양에서 쓰이기 시작한 말투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올시다." 이런 말투는 안 쓰니 20세기는 지나서야 굳어진 말투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주연이 아닌 조연의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애초에 '정통 사극'이란 것에는 굳이 한양말을 제외한 다른 말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시대극이 아니라면야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사극풍 드라마'의 경우에는 반드시 한양말이 아닌 다른 말투가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을 보필하는 배역으로 나오는 이들(주로 노비)이나 저잣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상민 배역의 경우엔 대사를 읊을 적에 거의 빼놓지 않고 '전라도 말투'를 쓴다. 예를 들면 "~~하는 것이여~."라든가, "~~한당께요?" 또는 "~~하제잉?"과 같은 말과 더불어 전라도 지역 특유의 억양이 가미된 대사 말이다. 종종 보는 <붉은 단심>이란 KBS2 드라마 주인공 '유정(배우 강한나)'의 측근인 '똥금(배우 윤서아)'이가 구사하는 말투가 딱 그렇다. 실제로 전라도 사람들이 그런 말투를 쓰는지는 몰라도, 딱 들으면 전라도 말씨를 흉내내는 듯한 느낌이 나는 건 내게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분명 어느 시대에나 상류층과 하위 계층이 쓰는 말투는 지역을 막론하고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슨 도로나 철도가 놓인 것도 아니고, 절대 다수가 농업에 종사했던 시대에 굳이 전라도 사람이 한양이나 경기 인근에 이주할 일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란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거엔 거주 이전의 자유란 것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상민 또는 노비라 한들, 임금이 있는 경사(師, 수도)에 거주하는 그들이 평소에 과연 전라도 말투로 대화를 주고 받았을까? 절대 아니다. 이는 계급별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드라마 제작사에서 의도적으로 '(양반들이 쓰는)한양말'과는 다른 어떤 말투를 골라 해당 배역에게 쓰도록 한 것이고,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전라도 말투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물론 전라도 말투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경상도 말투도 나온다. 하지만 경상도 말투가 등장하는 경우는 철저히 '지역적 배경'을 띠고 있다. 2018년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함안댁(배우 이정은)'은 그 호칭에서 드러나듯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이라 경상도 말투를 쓰지만, 말 그대로 함안에서 태어나 그런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같은 드라마의 '이완익(배우 김의성)'은 설정상 함경도 태생의 관리라 그쪽 지방의 말을 썼던 것이고, 2010년작 KBS 드라마 <추노>의 '업복이(배우 공형진)' 또한 관동 지역, 즉 강원 영동 지역에서 포수로 활동했단 설정이 있었기에 그쪽 지역 말투를 쓴 것이다. 하지만 그쪽 지역 사람이 아닌 내가 듣기에도 뭔가 어색한 이 '전라도 말투'는 그 사용 근거가 너무 빈약함에도 그저 '계급이 낮다'는 이유로 드라마 대사에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곧 '전라도 말투는 낮은 계급 또는 지위에 속해 있는 배역에 활용될 만하다'란 인식하에 사용되고 있다 해도 무방하므로 지역 차별에 해당할 수 있음에도 사극풍 드라마 제작 시에 이런 일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난 이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행태는 자제해야 한다. 만약 쓰게 할 거면 아예 경기 및 강원 영서 지역의 중부 방언을 살려 연기하게 해야지, 그것도 아니면서 굳이 '한양'에 사는 설정의 배역에 완전히 동떨어진 지역의 말투를 쓰게 한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솔직히 사람들이 이에 문제 의식을 갖고나 있을까 싶다. 아마 드라마 제작사에서도, 시청자도 '그게 뭔 대수냐'고 반응할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을 따져 보아도 전혀 걸맞지 않는데 구태여 그런 말투를 쓰게 한다는 건 고증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며, 그 무엇보다 해당 지역 사람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난 '호남' 지역이 한국 현대사에서 갖는 특수한 지위를 들어 그 지역을 우대하는 차원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또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을 하는 것뿐이다. '지체 높으신 이들'에게는 표준어를 쓰게 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전라도 말씨와 같은 '요상한' 말투를 쓰게 하는 건 명백히 지역 차별적이다. 아마 드라마 업계의 이런 관행은 결코 쉬이 바뀌지 않겠지만, 방송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뭔가 좀 다르게 생각하기를, 여태까지 해 왔던 것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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