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Y Jul 02. 2022

한국의 노동 생산성

이제는 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다.

코로나 대유행이 촉발한 개념 중 하나가 '주 4일제 근무'다. 주 5일제 근무가 전면적으로(물론 사무직에게나 해당되기는 하지만) 적용된 지 10년이 꼬박 넘어가는 현재, 전부터도 주 4일제에 대한 논의는 있어 왔 소수 담론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지만, 감염 우려를 이유로 장기간 원격 업무 체제가 수립·지속된 것을 하나의 자료로 삼아 이 시기에는 본격적으로 주 4일제 근무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제기되었다. 쉽게 말해 '못 할 것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 4일제 근무 시행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그 사회의 노동 현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그 사회의 노동 현실이 여러모로 열악하다면 실행한다 해도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노동 상황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사실 모두가 예상하듯 한국의 노동 시간은 OECD 국가를 통틀어서도 최상위 수준이며, 이는 사실상 부동의 수치(數値)다. 다른 나라와 1-2위를 다투는 수준에 있는데, 경쟁 대상(?)은 그마저도 중진국인 멕시코며, '노동생산성'을 따지면 한국은 중간에도 못 미친다. 이는 곧 노동생산성이 노동 강도(시간)에 비례하지 못함을 제시하는 중요한 자료로서, 과연 한국이 최상위 수준의 노동 강도를 유지하는 것이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더욱이 수도권을 기준으로 하자면 출퇴근을 위해 상당히 긴 시간을 써야 하는데, 편도로만 따져도 인천에서 서울까지 82분 정도가 걸리며, 심지어는 아예 다른 곳(수도권을 제외한 강원 및 충남 등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경우 140분, 즉 두 시간 넘는 시간이 걸린다 하니 야근까지 포함하여 하루 11시간을 일한다 가정하면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하여 평균적으로 업무에만 최소 13시간 정도를 쓰는 것인데, 이 정도면 집에 가서 씻고 자기 바쁘다. 가정이 있는 이가 가정에 신경을 쓸 만한 여건 자체가 못 된다는 의미다.

뉴시스, 서울 출근시간 평균 '53분', 경기→서울 '72.1분'…인구이동 빅데이터, 2021.09.08.

누군가는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노동'만큼 기여한 것이 없다며, 석유와 같은 주요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생산성을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이뤄져 있고, 이를 바꾸는 것은 곤란하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더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일하지 못하게 하는 악법'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위의 지표가 보여주듯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실로 '한국이 생산적인 나라인가?'에 대해서는 마냥 긍정할 수 없는 수준이며, 과연 자발적으로 더 근무하겠다 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 것인지, 또한 그들이 노동계 전반에 걸쳐 존재할 것인지(만약 특정 직군에만 그런 이들이 몰릴 경우 이는 직군 격차를 심화하는 꼴이 됨)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실제로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하여 업무 강도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이런 형태의 노동은 잠시라도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 쉬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다 애초에 주 6일이 기본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다수가 자발적으로, 기꺼이 더 오래 일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 합당할까?


그러므로 노동시간이 길면 그만큼 효율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는 건 그다지 지혜롭지 않다. 35도 이상의 높은 기온에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10시간을 일한다고 효율이 높아질 것이며, 아무리 실내에서 일한다 한들 11시간 가량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는 노동자가 그 시간에 따른 분량만큼 일할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기계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은 결코 기계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쉼이 필요하며, 그 쉼은 스스로가 안락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취해야 비로소 휴식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리 쉬어봤자 더욱 피로감을 호소할 뿐이다. 만약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무조건 많이 일하는 것만이 기업의 이윤 창출에 기여하고 국부를 증대시키는 데에 최선이라 말한다면 차라리 모든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문제는 임금이다. 노동 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줄어들어야 하는 것이 이치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임금 저항은 상당히 거센 편으로, 이를 일러 '하는 것 없이 돈만 많이 받아먹으려는 못된 심보'로 폄하하는 이들이 적잖은데, 이는 사실 단지 편하게 일하고 돈은 많이 벌려는 마음으로 무작정 간주하기보단 한국 사회의 노동자가 스스로 인식하는 노동의 가치 및 강도에 비해 현재 수령하는 임금이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노사 관계는 개발독재 시절 고효율을 내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억압되는 형식으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민주화가 진행됐음에도 그 거리감과 적대감은 크게 좁혀지지 않았으며, 이런 이유로 호혜적 또는 상보적 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기업이나 노동자 모두 손해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단 점이 노동 문화 개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수도권에 모든 것이 몰려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노동 시간을 낮추되 임금도 그만큼 삭감하는 형태로 갈 경우 물가 문제가 생긴다는 점도 노동 강도(시간)을 쉽게 줄이지 못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더 이상 정부가 물가를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임금은 낮아졌지만 물가가 그만큼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직군별 차등 임금제를 도입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 이는 양극화를 대놓고 부채질하겠다는 게 되어버려서다. 결국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한국은 노동 시간 대비 노동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짐에도 문제를 쉽게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노동생산성 개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한국의 노동 문화는 개인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고, 이는 저성장 시대에는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단순 또는 육체노동 시장의 인력은 진작 부족한 상황이고, 성장을 견인하는 산업의 인력도 쉽게 충당되지 못하는 판에 인간을 단순히 노동력이나 자원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견지한다면 사람들은 일에 몰두하느라 다른 삶에는 신경을 잘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출산율인데, 그렇게 바닥을 찍는 출산율은 걱정하면서 '일은 많이 하는 게 좋다'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모순이나, 아직도 구시대적 노동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는 기성세대와 정책 결정자들로 인해 진작 정착했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은 정착조차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말 국가의 미래를 결정한다면 옛 사고방식을 적용하려 들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그게 안 되고 있으니 여러모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력 부족 문제의 만성화와 더불어 인구 감소 문제가 심화되면 이를 해결할 방법은 대내적으로는 없다고 봐야 한다. 결국 한국도 외국에서 사람을 들여와 노동현장에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인을 제외한 외국인 및 서구 문화를 제외한 다른 문화에 배타적인 한국 사회의 특성상 이것이 산업 현장 전면에 실현될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니 외국인 노동자들은 고위험 직군에 대거 포진할 것이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분명 사회 문제가 생겨날 것이다.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아니라, 고강도 노동에 꾸준히 노출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과연 가만히만 있겠냐는 것이다. 당연히 언젠가는 노동 환경 개선을 외칠 터인데, 이 나라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갈등은 격화되기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기업은 노동 시간을 통한 노동생산성 제고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복지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방책을 사용함으로써 시간 대비 고효율의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정부는 앞으로 삶의 질 문제가 더욱 부각될 것을 고려하여 물가를 중심으로 한 경제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립해야 할 것이다. 기업과 정부의 노력이 전제된다는 조건하에, 노동자 또한 이에 호응하여 스스로 노동생산성에 대한 강박과 집착을 내려놓고 임금 문제에 있어서도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서로의 변화 없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는 대외적으로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기보단 말뿐인 선진국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안은 썩어 문드러지는데 겉은 번지르르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에는 고속 경제 성장에 가려진 내적 모순과 폐단이 어마어마함에도 그 경제 성장이 한국 사회를 견인하였기에 이를 바탕으로 내부의 문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자꾸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각종 지표가 제시하듯 한국 사회는 결코 스스로가 추구했던 그런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를 개선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여러모로 국가-기업-개인의 협력이 절실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글에 실려 있었던 구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