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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n 29. 2022

또 시작이다.

무의미한 방역, 언제까지 되풀이하려는가?

한두 시간 전, '20일만에 확진자 1만 명 돌파', '감염재생산지수 1 초과'란 내용의 '속보'가 떴다.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소식에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은 갈린다. 이게 과학방역의 결과냐며 비아냥대는 이도, 수치로 선동하지 말라는 이도, '확진자가 늘었다는데 어쩔 거냐'며 앞선 이들을 조롱하는 이도 있다. 반응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서로 다르게 주장하는 이들의 대립은 꽤나 팽팽하여 그 누구도 쉽게 굽힐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지난 2년 반 동안의 추이와 바이러스 확산 대한 정부 대처를 돌이켜 보면, 대유행은 몇 차례 있었고 정부는 이를 막지 못했다. 사실은 막을 수가 없었다. 정부가 무슨 신도 아니고, 확산하는 바이러스와 감염을 어떻게 차단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건 이제 막 옹알이를 하는 아기에게 일어나서 걷고 말을 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전자는 '통제'고 후자는 '확산 저지'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과 감염은 결코 틀어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로 바이러스와 공존함으로써 자연감염을 유도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며 추구해야 할 마지막 남은 선택지다. 문제는 이 나라 정부와 전문가 집단, 그리고 국민들은 이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됨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간에게 침투하는 바이러스를 막겠답시고  '한국식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보니 참 가상하고 갸륵하기까지 하다. 이런 헛된 정책을 언제까지 펴려는 걸까?


오미크론 대유행 당시 62만 명까지 확진자가 나온 것을 생각하면, 틀어막아 최대한 감염자가 안 나오게 하는 한국식 방역은 그 목표 달성에 보기 좋게 실패했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이후로 감염자가 줄어든 것은 바이러스의 성질(계속해서 약화돼 가는 속성)이 드러나서 그런 것뿐, 더 이상 방역 조치와 마스크 착용은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지금 잠깐 확진자가 1만 명 이상이 됐다지만 감염에 기복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다. 바이러스도 숙주에 침투하고자 애를 쓸 테니까. 이 정도면 그냥 더불어 살아도 무방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은 연일 속보란 이름으로 정부 발표를 받아적고, 사람들은 이에 또 민감하게 반응하여 걸리면 다 죽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미안하지만 절대 안 그렇다. 방역은 이제 하면 할수록 역효과만 낸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만을 지출하게 하고, '이제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만 늘게 할 뿐이다. 그러나 방역 만능론을 신봉하고 바이러스에의 공포를 내면화한 이들은 "이제 그만하자"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이기주의자와 잠재적 살인자란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비난하고 있으며, 정부는 아직까지도 실패하여 진작 폐기됐어야 할 '방역 체계 자체'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으니, 이처럼 밑 빠진 독에 물 부어대는 일이 또 얼마나 있나 싶다.


방송에서는 실내의 진행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별 생각 없이 넘기면서 일상에서는 마스크 안 쓰려는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내가, 그리고 모두가 본 한국인이다. 이는 관용이 아니라 더러운 이중성이며, 이마저도 '방송에 한해서는 정부에서 미착용을 허용했으니 괜찮다' 생각했으니 이는 방역의 노예이자 정부 통제의 순응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었다. 언젠가부터 이 사회에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으나, 그것은 계속되는 통제를 내면화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게 됐기 때문일 뿐, 여전히 일률적 통제의 적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정부와 언론에서 각종 수치를 들먹임으로써 조장한 '위기 상황'으로 인해 곧 실외 마스크 착용도 다시 강제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생길지 모른다. 여전히 밖에서도 열심히 마스크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니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주장이다.

한편으로 노키즈존, 장애인 이동권 문제,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사회 현안을 해결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타인에게 배려를 강요하지 말라'는 이유를 들어 거부하면서, '마스크 착용은 의무임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니 반드시 써야 한다' 말하는 건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싶다. 분명 '타인에게 배려를 강요하지 말라' 하지 않았나? 그런 이들이 마스크는 타인에 대한 배려이므로 무조건 써야 한다니, 이런 강요된 배려가 과연 배려이기는 한가? 기업의 사회적 기여(책임)는 순전히 그들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면서 마스크는 그렇지 않다 말하는 것은 자기 논리로 스스로를 묶는 꼴임을 부정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게는 각종 수치가 '한국인', 그리고 '한국 정부'가 달성하길 원했던 것과는 반대인 상황에서조차 방역을 위해선 개인의 자유가 마땅히 제한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바이러스보다 공포스럽다. 이런 이들이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취한 각종 부동산 조치가 '실패'로 돌아가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를 즉각 중단하라", "실패한 정책을 즉각 중단하라" 말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취지만 좋으면 그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방역에는 적용해 놓고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적용하기를 반대한다? 이런 위선이 있을 수가. 오히려 '확진자 0명'이란 방역의 방점에는 도달할 수 없단 문제가 있으니 그런 식으로는 해선 안 된다 말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그리 말하는 이는 여전히 절대 소수이고 또 비난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실패한 정책이라면 폐기해라 말하는 것이 옳지, 계속 시행하라 말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방역이 현재 진행형임에도 확진자가 늘었고, 감염재생산지수가 늘었다면 이를 폐기하라 말하는 게 옳고 또 바람직한 것이다. 그 어떤 부문에 있어서도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이들이, 실패한 정책을 끝까지 밀어부치라 말하는 것으로는 방역이 유일할 것이다.


위기가 계속되면 이는 일상이 되며, 일상화된 위기에는 둔감해지는 것이 현실인 한편 인간의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이(었)다. 더군다나 그 위기가 일상화됐단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기에, 특효약과 같이 사태를 일시에 해결할 방도가 있지 않는 이상에야 이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이 상식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다. 그럼에도 방역만큼은 그것이 한국인과 한국 정부가 목표한 바를 이뤄주지 못했음에도 계속되길 바란다는 것은, 스스로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됐다" 하긴커녕 "멈추지 말라" 외쳐 온 것이야말로 사태 해결을 돕긴커녕 악화했음을, 그리고 애초에 '당신들'이 원하는 '사태 해결'이야말로 허상이었음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처사임을 알기나 할지...답답하고 또 답답하며, 이런 비합리적이고 고집불통과도 같은 태도가 심히 염려스럽다. 근본적으로, 또 엄밀히 말해 성공한 방역이란 있을 수 으며, 통제를 거듭하여 확진자 0명을 만드는 것이 곧 성공한 방역이라 생각 또한 당장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스스로가 설정한 방역이란 모래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고, 방역이란 끝없는 터널을 지남에도 이를 알지 못한 채 끊임없이 끝을 찾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바람은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나, 제발 뭐가 맞는 건지를 '목을 뻣뻣하게 한 사람들'이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는 내게(그리고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방역에 반대하는 게 지겹지도 않냐 말하며 비아냥대고 조롱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당신이야말로 철 지나 진작 폐기했어도 모자를 방역을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지겹지 않냐"라고. 난 지난 2년 가까이 열렬히 방역 속을 외쳤으나, 그것에 심각한 모순과 폐단이 있음을 깨달아 이를 외면할 수 없어 입장을 바꾼 것이고, 그렇게 일관적이었던 게 신물이 나서라도 말도 안 되는 한국의 방역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애초에 이렇게 말하는 게 지겨울 것 같았으면 아예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므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람 잡고 사회 망가뜨리는 방역, 즉시 전면 중단하라고.



#방역중단

#통제중단

#코로나박멸은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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