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회복' 운운하는 이들에게
그건 일상 회복이라고 할 게 못 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전면 해제되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가 해제되면서 언론에서 일상 회복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일이 꽤나 늘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고작 그 두 가지를 들어 일상이 회복됐다 말하는 건 뭘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예를 들어 보자. 만약 우크라이나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시크 일대) 지역을 포기하는 대가로 러시아와 종전 협약을 맺음으로써 '일상이 회복됐다' 발표한다면, 아무리 전쟁이 끝났다 한들 그것이 진정 그들에게 일상의 회복으로서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대다수가 '절대 아니'라 말할 것이다. 회복이란 그 의미상 100%를 전제하지 8-90%를 말하지 않기는 않기에, 그것은 그저 말뿐인 회복이 되는 것이다. 벌써 2014년에 크름(크림) 반도를 빼앗긴 상황에서 그게 무슨 회복이란 말인가? 다른 말이지만 '나아졌다'는 표현과 '나았다'는 표현이 같지 않은 것 또한 이런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일제의 패망을 독립 또는 국권 회복과 연관 짓는 것도 당연히 잘못됐다. 일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은 이른바 '한민족'의 전적인 주도하에 건국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냉전이란 시대적 상황하에 미소 양국의 신탁통치를 거치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립됐으므로 '독립'의 본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에 따라 두 개의 다른 정권이 한반도 영토를 절반씩 나누어 각각 통치하기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진정 국권 회복에 부합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의 범위는 곧 거짓이 되어버린다.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한반도 이북 지역이 본래 혈연적 배경만 같은 이들이 살았을 뿐, 예로부터 아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아온 게 아닌 이상에야 말이다. 진정한 국권 회복이란, 적어도 한반도의 역사적 배경과 헌법을 고려할 때 '한반도 및 그 부속 도서가 단일 정권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이는 무시한 채 '자유민주주의 정권'이 한반도 일부 지역을 통치하고 있단 이유로 국권이 회복됐다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기만이다. (단, 헌법이 개정되어 이러한 조항이 삭제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한국의 방역은 현재 진행형이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는 모든 실내에서, 그리고 특정 조건하의 실외에서는 여전히 강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회복이란 표현 사용을 일삼는 이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이거나, 최악의 경우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마는) 대중을 기만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서 그리하는 것이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그것은 결코 회복이 아니며, 그런 상황을 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성립하지도 않는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애당초 정부의 정책에 의거하여 회복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라면, 이는 결코 회복이라 일컬을 수 없고, 그리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절대다수의 언론과 개인, 집단은 잘못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그리고 특히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인식이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면, '회복'이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오로지 관념으로만 남게 되며, 정부 또한 '회복이 아닌 회복'을 기준치로 삼아 계속해서 지침을 강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이 마치 100%가 최대 용량인 배터리를 80%만 채우고서 '충전이 다 됐다' 하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므로 이 '뉴 노멀'이란 개념이 100의 회복이 아닌 80의 유지를 일컫는다면, 이는 적극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기꺼이 수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좋게 말해 적응이지 사실상 포기나 다름없다. 가지고 있던 것을 버려놓곤 '어쩔 수 없으니 이를 원상태로 간주하고 살자' 말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처사도 없음을 명심하자. 그토록 '마스크 없는 삶'을 바란다면서도 정작 이를 위해서는 (기약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정부의 방역 지침을 끝까지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마스크 없는 삶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삶은 정부의 진두지휘 하에 되찾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 그런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이를 되찾아야 한다. 정부는 결코 해결사가 아니다. 이는 모두가 지나온 시간과 그 과정이 증명한다. 이것이야말로 불편하지만 반드시 인식하고 또 추구해야 하는 진실이다.
한국은 중국처럼 심각하고 극단적인 방식만 취하지 않을 뿐, 사실상 '확진자 0명 정책(소위 '제로 코로나' 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정부 방침과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이 기세로라면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방역을 지속할지도 모른단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불필요한지 알지도 못하고서 그저 바이러스에의 공포감을 인해 정부에게 기꺼이 모든 걸 맡기겠다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또 어리석은지를 대체 언제 깨달을까?
언젠가 바이러스가 통제 범위에 드는 날이 온다면, 이는 한국인과 한국 정부가 합심해서 이뤄낸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바이러스의 자연스러운 생리가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그건 비단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각국도 마찬가지다. 인류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에 패배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한, 적어도 한국을 포함해 방역에 목을 매는 나라만큼은 부질없는 방역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앞으로도 계속 허우적댈 것이다.
최근 '원숭이 두창'의 확산이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데, 이런 소식으로 인해 안 그래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낮아진 회복의 기준을 갖게 된 사람들이 아예 회복의 본의와 기준치를 완전히 허물고 무력화할까 매우 염려스럽다.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에 먼저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