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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l 23. 2022

요즘 세상을 보면

21세기 이념 논쟁 ; 과연 진보주의는 절대 우위인가?

한참 유행했던(?) 진보주의적 교육은 힘을 잃고, 다시금 이전 시대의 가치관이 득세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성별과 관련된 문제가 그러하다. 여성스럽다거나 남성스럽다는 표현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말'로 교육받은 세대가, 오히려 이를 부정하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종래의 가치관을 선호하는 이들이 현대적 가치관으로 점철되어 온 사회와 이를 주도한 이들에 총반격을 가하는 듯한 양상인 것 같다.

물론 적잖은 사람이 변화된 가치관(성적 고정관념은 '강자'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사고 방식)을 내면화하여 이에 의거하여 '과거의 가치관'을 비판하고 이를 극복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오히려 그들보다도 '왜 그것을 극복 대상으로 삼아야 하느냐'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는 것은, 진보주의를 힘입은 현대적 가치관이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고 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대한 거부 반응이 대표적으로, 이 올바름에 대한 기준마저도 이미 '정치적'이란 단어가 알려주듯 특정한 시각을 기반으로 하기에 과연 이를 절대적인 올바름이라 할 수 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과연 모든 것을 치우치지 않고 묘사 또는 서술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을 고려하면 현대성을 탈피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도 이런 현대적 가치관은 쉽사리 수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성별은 남성과 여성뿐이었므로 그에 따른 특성은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나뉘며,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남성은 남성성에 충실했고 여성은 여성성에 충실했다. 다만 여성이 남성보다 성적 고정관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다수의 여성에게 여성성이란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성격'으로서 역사를 통틀어 볼 때 그들에게 이것이 구속이자 제약, 더 나아가서는 억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단, 이를 주체적으로 내면화한 여성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남성이 무조건 근육질의 몸매를 가져야만 했던 것은 아니나, 그런 '전형적인 남성성'을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남성은 농업이 중심이었고 전쟁이 빈번히 일어났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에 상대적으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은 반면, 여성은 노동력의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가정을 넘어 사회, 심지어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은 대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만한 상황에 있지 못했고, 이는 여성이 남성적 특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더욱 여성성을 추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남녀가 남성성과 여성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다. 근대 및 현대인이 점차, 그리고 급진적으로 전통과 과거를 부정하면서 해체가 기본값이자 미덕이 되었고, 이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란 개념이 '생물학적 개념'으로 명명되며 그에 따른 특성으로 여겨졌던 것은 '기존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해당되지 않는 이들'을 위해 해체되어 결국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성 역할)'으로 규정되며 지금에 이른 것인데, 정해진 것에서의 해방을 외쳤던 것이 도리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는, 해방을 외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구시대적 사고 방식의 도전을 받는다는 것이야말로 아이러니라는 말이다. 더욱이 (위에도 언급했듯) 어릴 때부터 해방과 평등의 이념을 교육받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이를 '불공정'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과연 옳고 그름을 논할 이유가 없다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한 현대적 사고 방식이 그 목표를 이루었는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남성성과 여성성의 해체는 남녀에게 부여되었다고 여겨져 온 고유한 성적 특성과 거리가 있는 이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남성임에도 비교적 '남성다운 것'과는 거리가 먼 남성(유대-기독교 경전(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이란 인물은 일가의 지도자였지만 어릴 때 그 어머니인 리브가(레베카)와 잘 어울렸다는 내용만 봐도 그러한 이가 예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음)과 여성임에도 '여성다운 것'과 거리가 있는 여성(전형적인 남성성에 부합하는 인물로,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었던 잔 다르크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성 전투 민족인 '아마조네스' 등이 대표적)이 기존의 전형성(표준)에 억눌려 자신의 특성(개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이 해체란 것은 '드러내고 살아가게끔' 돕는 것을 넘어 이를 실현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훗날 동성애자를 시작으로 '성 소수자'가 사회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유한 성적 특성으로 여겨지던 것(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사랑하는 것)에 위배되는 이들과, 아예 생물학적 성(부여된 성)과 인식적 성이 불일치한 이들이 먼저는 스스로의 존재를 사회에 알릴 수 있게 했고, 더 나아가 이들이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드러내고 사회의 주역으로 살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다수는 그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는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계도 대상'이자 심하면 '폐단을 지닌 자'가 되어버린다는 점이 늘 문제였다. 그들은 그렇게 교육받아 왔고, 그들을 교육한 이들이 불순한 의도로 그리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전통적 가치관을 함양했다는 이유로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기에, 개혁과 변화를 외치는 소수는 자신들의 지지 기반이 되어주어야 할 이들을 적으로 돌려버리는 상황을 맞닥뜨리고 만다.

그렇기에 현대 교육에서는 변화된 가치관을 기본적으로 가르침과 동시에 '역차별'이란 개념 또한 가르친다. 변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아예 거부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은 '전부터 그래왔던 것'을 형성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충분히 검증되었다고도 할 수 없는 주장만으로 함부로 무너뜨리려 드는 가치 체계로 인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관철하려 들면 기존의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왔던 이들은 이에 반발하기 마련이고, 의견의 관철이 단지 캠페인 수준에서 그치지 않기에, 각종 정책에 그것이 반영되도록 하려는 이들의 시도가 기존의 가치관을 지닌 이들의 '입지'를 좁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언제 공산주의자들이 자본가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던가? 무정부주의자들이 정부를 옹호하는 이들과 더불어 살 수 있다고 말했던가? 안타깝게도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이들은 기존의 세상을 뒤엎고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하려 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부딪힌다. 이러한 거시적 갈등은 비단 20세기의 냉전 종식으로 끝난 게 아니다. 21세기에 이르러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이념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달라진 가치관과 기존의 가치관 사이의 전쟁이다. 물리적 전쟁이 사람의 목숨과 국가의 명운을 결정한다면, 관념적 전쟁은 사람의 사고와 사회의 풍조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가치관을 만들고, 또 이에 영향을 받는 인간에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가치관의 갈등은 종교사회보다도 세속사회에서 더욱 치열하고 첨예하게 벌어진다. 현대의 사실상 유일한 종교사회인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강력한 세속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한 이런 논의가 쉽게 나오지 못한다(안타깝게도 이슬람 세속주의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일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종교법이 세속법과 대등한 지위에 있거나 이를 압도하기에 이에 의문을 제기하면 물리적인 위해나 제약이 가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성별에 따른 행동의 제약이다. 그런 이유로 이슬람 사회의 여성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회가 규정한 여성성'을 벗어나려 하기보단 이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세속사회야말로 종교가 그 색채를 잃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논쟁이 자주, 높은 강도로 일어남을 알 수 있는데, 이로 보아 성별에 대한 관점의 대립은 발언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젠더 이슈'가 본격적으로 탈종교화하기 시작한 현대 유럽 사회에서 먼저 나온 이유기도 하다.

한 사회에서 특정 가치관이 주를 이루면 그 사회는 활기를 잃고, 서로 다른 가치관이 대립할 경우 사회는 극단으로 치달아 그 사이에서 광기가 발현된다. 당연히 두 사회 다 문제가 있다. 하지만 과거에 수많은 이들(역사·사회적으로 '절반'에 해당하는 이들)이 특정 가치관에 억눌려 왔던 것은 사실이므로 이를 해결하고자 전면에 나선 이들이 되레 특정 가치관을 주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려 하, 그들에 의해 '기득권층'으로 규정된 이들은 그들이 어떤 계급 또는 계층에 속해 있건 새로운 가치관을 거부할 것이고, 그렇게 주류가 되려는 이들과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이들이 극한으로 대립하여 사회는 혼란과 광기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21세기 사회가 딱 그렇다. 적잖은 '지성인'과 '시민'이 이뤄 왔다는 새로운 가치관은 반대편을 반지성적이고 시민이 아닌 존재로 폄하하는 반면, 상대 진영에서는 새로운 가치관을 '언제고 전복될지 모르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사상'으로 여기며 비판하므로 사태가 해결될 것이란 전망을 낸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이고 한편으로는 어리석은 견해라고 본다. 이미 세상은 각종 정치 및 문화 혁명으로 변화했으나, 그에 따른 반동 또한 어마어마함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기에, 나아가려는 이와 '그것은 나아가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의 정신적 투쟁은 아마 세대를 거듭하여 전개될 것이라고 봄이 합당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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