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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Jul 26. 2022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일시적(잠정적) 선을 실현하기 위해 신뢰, 용납, 인내와 같은 항구적 선을 파괴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그 일시적 선이란 것은 중장기적으로나 궁극적으로나 절대 모두를 위한 게 아니다. 그저 특정 시기에 얻을 수 있는 이로움 정도다. 하지만 이를 강력히 외치는 이들은 '일시적 선의 실현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이라 말한다.

이는 개인의 이익을 집단의 이익(여기서의 집단은 결국 '이기적인 개인의 집합'을 의미)이 덮어 '선'으로 포장되어 나온 상당히 얄팍한 개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시적 선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진정 모두에게 필요한 항구적 선은 뒷전으로 둬야 한다고, 심지어는 그 필요성조차 언급해선 안 된다 한다.

나는 묻는다.

이것을 과연 '선'이라 할 수 있는가?


언제부터 '이익은 곧 선'이란 등식이 절대 진리였는가?

일시적인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문제란 생각은 안 드나? 그 이익이 정말 다수에게, 심지어 소수에게도 돌아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이익을 교묘히 비틀어 옳음의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은 유사 이래 늘 누군가가 악용해 온 것이었다. 근데 근 몇 년간 저 '누군가'의 범주에 다수가 들기 시작했다. 상황을 오판한 다수가 일시적 선을 외치는 순간, 그 다수에 의해 되레 다수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이는 모든 개인이 정치 주체가 된 현대 사회에서야말로 제일 유념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더욱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지켜야 하는 것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그리고 있어야 하는 가치임을.


모두가 나치리만큼 이해(利害)에 몰두해 있는 세상이다. 그만큼이나 이해(理解)는 찾아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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