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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Y Aug 17. 2022

장애인의 삶을 생각한다

그들은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까?

5년 전, 저녁을 먹으러 기숙사를 나와 식당에 갔다. 맛있게 먹고 다시 기숙사에 돌아왔고, 하루를 문제 없이 마무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일어나 보니 왼쪽 발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인가 싶어 병원에 갔고, 인대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목발을 하고 다니게 됐다.


4년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묘소에 안장한 후 돌아오는 길, 비가 온 직후인데다 흙길인 비탈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 발에 힘을 싣다가 땅을 콱 디디는 바람에 발이 땡땡 부었다. 하필 1년 전에 다쳤던 그 발, 그 부위였다.

그렇게 두 번째로 목발을 하고 다니게 됐다.


죽을 맛이었다. 해가 쨍쨍 내려쬐는 그 여름날, 돈도 없어서 편하게 택시를 타고 다닐 수도 없었고, 학교도 산자락에 있어서 강의실까지 억지로 갔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바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겹게 학교와 기숙사를 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특히 미칠 노릇이었다. 모든 버스가 저상버스인 것도 아니고, 모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도 아닌데다 있어도 이용하러 갈 만한 거리가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를 탔는데, 그 계단 세 칸이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른다. 그때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장애인은 정말 힘들게 살고 있구나.'란 생각.


한국은 효율성을 앞세워 급속도로 발전해 왔다. 그리하여 편리함이 무엇보다 중시되고,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구조다. 그러나 여기엔 큰 결함이 있다. '효율'과 '속도'는 기본적으로 신체에 문제가 없는, 이른바 '정상적인 사람'들을 기준으로 하는 가치다. 그러니 효율을 추구할 수도, 속도감 있게 살 수도 없는 사람들은 이런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가 절대적으로 어렵다. 특히 6.25 전쟁 직후라 총포에 의해 장애를 입은 민간인과 (6.25와 더불어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상이군경이 꽤나 많았던 시절임에도 산업화 시대의 한국은 빨리 발전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이유로 천천히 살아가야만 했던 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이 효율과 속도란 두 가치는 아무런 제약 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노인들에게 독이 되고야 말았다.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과 국가가 추구했던 효율성과 속도감에 부합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현재성에 충실했던 결과였다. 그렇게 멀쩡했던 이들도 노인이 되니 이리도 힘겨워하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더군다나 상(常)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한 나라가 한국인데, 자신의 의지로 다친 게 아님에도 일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질시를 받으며 살아왔을지...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지금의 구조로 바뀌기 전의, 마치 섬처럼 길 한가운데에 있던 광화문광장의 모습떠올려 본다. 광화문 바로 앞쪽을 지나치려면 제법 긴 시간이 소요됐는데,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고 주어진 약 50초 정도의 시간은 두 발로 멀쩡히 걸어도 꽤나 촉박했다. 그런데 여기를 목발을 짚고 지나간다? 운전자의 호의에 기대지 않으면 결코 그럴 수 없다. 심지어 원주 중앙시장 A도로(원일로)의 5m 정도 될까 싶은 길목마저도 몸이 불편한 사람은 한 번에 건너가지 못했다. 거리가 짧다는 이유로 배정된 시간마저 짧게 책정된 것이 그 이유였다. 만약 당사자가 시각장애인이면 건널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 장애인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이는 절대 다수의 건강한 사람에게는 철저히 남의 일이다.


몇 달 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약칭 '전장연')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지하철 시위를 벌였다. 출근 시간에 이뤄진 시위로 동시간대에 지하철에 탑승한 모두가 출근에 지장을 겪었다. 한국의 기본적인 질서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몰지각한 처사'였고, 이 일로 전장연 대표인 박경석 씨와 국민의힘 전 대표 이준석 씨가 이와 관련하여 TV 토론까지 벌일 정도로 화젯거리였다.

나의 입장은 이중적이었다. 장애가 있지 않기에 지하철에 탔던 사람들의 조급함과 불쾌함에 공감했지만, 한편으로는 두 번이나 목발을 짚으며 '개고생'을 했던 입장으로서 장애인들의 마음에 절로 공감이 됐다. '권리'가 아닌 '호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이들이, 다수의 편리함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한국 사회의 논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를 벌이는 것이 너무나 서글펐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연은 이른바 진보 단체고, 모든 장애인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정치 성향을 떠나 장애인이라면 모두가 스스로의 일상이 얼마나 천천히 돌아가는지를, 그것이 절대 자의에 의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또 공감할 것이다. 경험 절대주의를 언급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뭔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문제를 직접 겪었거나 주변의 사례를 통해 보고 들어서라도 알기 때문에 그리하는 것이다. 나는 분명 비장애인이지만, 몇 달이나마 장애인의 삶이 어떠한지를 의도치 않게 겪으면서 그들이 얼마나 불편하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장애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불편한 존재'인지를 알게 됐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출근하는 이들에게 해를 끼치긴 했으나, 차마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한국 사회는 언제까지 다수 논리를 앞세울 것인가?'


이틀 전인 15일, 아침에 눈을 뜸과 동시에 이번엔 오른발에 통증이 느껴졌다. 전부터 아팠기 때문에 그 문제인가 싶었지만, 그땐 발바닥을 손으로 누르거나 바닥에 디뎌야 통증이 있었는데 이번엔 가만히 있어도 아파서 영 이상했다.

다음날이 돼서도 통증은 이어졌고,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처음엔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사진을 보니 한쪽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으나 바로 옆의 다른 뼈에는 결절이 있는 듯 보였다. 곧바로 씨티 촬영을 했고, 의사에게서 골절 판정을 받았다. 결국 발에 깁스를 또 했다. 세 번째였다. 진짜 미칠 것 같다. 요 며칠 날씨가 좋아서 모처럼 시내에 나갈까 했던 나의 소소한 계획이 일순간 물거품이 됐으니까. 발에 모래주머니 두어 개를 찬 듯한 묵직한 느낌과, 그 묵직함을 비집고 나오는 통증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장애인은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까?'


상해(傷害)는 통증 내지 고통의 차원이다. 그러나 장애는 아픔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다치면 일상에 지장이 생기지만, 장애는 그 평범한 일상조차 영위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상해와 장애의 차이다. 상해가 심하면 장애가 된다. 그러나 그 정도로 심각하게 다치는 사람은 비율상 그리 많지 않다. 결국 겪지 않는 이상, 장애는, 그리고 장애인의 삶은 영영 이해할 수 없다.

효율과 신속을 기본값으로 누려 지금의 삶, 현재 한국 사회에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장애인의 요구가 다수에게 불편함을 끼치거나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이동권은 곧 인간답게 살 권리다. 분명 인간임에도 인간 대우를 온전히 받지 못하는 장애인에게,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너무나 간절하다. 당장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아마 시간이 흘러 뒷짐을 지거나 지팡이가 있어야 다닐 수 있는 때가 와야 절감할 것이다. 이 세상은, 한국 사회는 결코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사실을.


유감스럽게도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의 노력으로 불편함을 겪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살아갈 수는 있다. 나는 한국 사회가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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