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대로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게는 '권위'가 없다.
권위와 거부권은 동의어다. 즉, 권위 있는 자에게만이 무언가를 거부할 권리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권위 없는 자에게, 강요와 강제를 거부할 권리 따위는 없다. 그저 하라는 대로 따라야 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곧 타인의 질타와 비난을 받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당한다. 도저히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동양, 특히 한국 사람은 집단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뿌리를 내린 주요 관념이자 '문화'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은 개인이 오로지 그 사회의 공통 인식에 순응하고 정부의 방침에 부합하게 행동해야만 비로소 주어진다.
이런 사회에 자유란 없으며, '나'는 존재할 수 없다. 매일 '나'를 말살하며 그저 군중 속의 개체로 편입된 채 살아야 한다. 태어나 자라며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듣고 배워 온 이들은 결코 스스로를 집단에서 유리되게 둘 수 없다. 그것은 곧 사회적 사망선고를 자처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집단 논리를 거부함으로써 강제로 분리되어 개체로 남는 것과 내성적 내지 내향적이라 타인과의 교류를 최소화하는 것은 아예 다른 차원이다. 한국인은 후자엔 익숙할지 몰라도, 전자는 매우 두려워한다. 이는 그들이 '늘 함께여야 함'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함에 따른 자연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인위적인 결과다. 개인의 결정은 결코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게 한국이다.
나는 '나'로서 살고자 하나, 집단에 속하지 않기를 택함으로써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고 싶지도, 분명 인간임에도 인간 아닌 존재로 취급받고 싶지 않다. 속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내가 주체·독립적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적어도 이 나라, 이 사회에서는 없다. 그저 입을 다문 채 상전의 말에 복종하는 노비로 살아가는 것만이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인 것이다.
이 사실이 나를 그 무엇보다 절망스럽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