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랑 많이 받고 자랐나 봐요"
"미안해, 나는 재혼하더라고 아이를 가지지 않을 거야"
싱글대디였던 내가 9살이나 어리고 미스인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가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꼭 그랬어야 했었나'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그땐 저 생각이 정말 강했었다.
이혼으로 상처받은 내 아들.
나의 목숨과도 같은 존재지만 내가 만약 재혼해 새로운 아이가 생겼을 때 나의 마음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균형을 유지한다고 하더라고 아들이 그렇게 느끼지 않고 또 상처를 받지 않을까?
이 생각은 미스였던 아내가 아기를 낳고 아이와 성장하는 기회를 빼앗는 아주 이기적인 마음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줬고 우리는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엄마가 처음 된 아내와 나는 아들의 상처가 치유되고 따듯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했다. 사랑하는 마음은 기본,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행동했다. 13년간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이제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다.
나에게는 이기적인 욕심이 하나 더 있다.
재혼가정에서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가족애를 느끼며 자라기는 쉽지 않다. 나도 해보고 알았다.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내 아들의 아내는 이혼 재혼가정이 아니라 무탈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였으면 했다. 부모 때문에 상처받는 일 없이 사랑 많이 받고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면 자란 아이였으면 했다.
그래서 아들과 3년째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참 고맙고 이쁘다. 누가 봐도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비타민 같은 아이다.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존경하며 엄마와는 친구처럼 지내며 남동생과도 우애가 좋은 듯하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알 수는 없겠지만 이 아이와 가족이 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아이의 성장환경은 평생에 많은 영향을 준다.
돈, 물질, 학원 그런 환경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과 신뢰형성이 중요하다. 이는 한두 번의 이벤트로 되는 게 아니라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황이 좋든 안 좋든 굳건해야 한다.
"○○이는 사랑을 아주 많이 받고 자랐나 봐요"
얼마 전 아들 대학졸업전시회에 갔는데 그때 지도교수님이 해주신 말이다.
"네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어서 어버버 했다.
"○○이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데 부모님을 보니 그 이유를 알겠습니다"
교수님이 다시 한번 감동을 주셨다. 우리 부부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지난 주말, 아들의 생일이었다.
우리 부부, 아들과 여자친구 이렇게 생일파티를 했다.
중식당 룸에서 식사를 했다. 아내가 끓여온 미역국과 여자친구가 가져온 케이크를 놓고 생일노래를 불렀다.
식사 후 아내는 아들여자친구와 네일숍에 가서 여자들만의 시간을 가졌다.
미래를 알 수 없겠지만 이 날 우리는 한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