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섯 살 때였을까. 너무 춥지 않은 초저녁이었던 거 같다. 엄마를 따라 들어간 갈색 철문의 떡볶이 집. 희뿌연 수증기가 자욱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강렬한 형광등 불빛. 다 찢어진 동그란 스툴 의자. 테이블 위에 올려진 초록 접시 위의 밀 떡볶이. 엄마는 떡 한 개를 오뎅국물에 씻어 내 입에 쏙 넣어줬다. 은은하게 매콤하고 짭짤한 국물 맛. 그리고 처음 느껴보는 몰캉한 식감.. 아련히 떠오르는 나의 첫 떡볶이 었다.
중학생 때는 학교 끝나고 간식 먹을 곳이 분식집, 햄버거 프랜차이 정도였다. 학교 앞 지하상가에 분식집이 모여있었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달큼한 설탕과 매콤한 고춧가루 냄새가 심장을 콩닥 이게 했다. 그곳엔 온 동네 여학생들이 다 모여있었다. 여탕 같은 곳이었다. 남학생이 있으면 눈에 띄었다. 일주일 동안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누가 누구랑 사이가 안 좋은지 어떤 선생님이 사고를 쳤는지 알 수 없다. 헉 할 정도의 단맛, 고소하고 납작한 어묵. 으깨진 삶을 달걀을 본인 앞접시에 덜면 가차 없이 응징당한다. 아니 한꺼번에 비벼 다 같이 먹어야지. 주문이 너무 많을 때면 사장님이 라면사리를 대충 익히기 때문에 꼬들한 식감이 나는데 난 이때부터 슬슬 꼬들파가 된 거 같다.
알바를 할 수 있는 대학생 때는 선택지가 더 다양해졌다 일단은 사진 찍기 좋은 아웃백이나 소렌토에서 만난다. 미니홈피에 인증숏을 올린다. 그리고 2차로 떡볶이 집에 간다. 자취하는 친구가 있으면 너무 좋다. 라볶이를 잘 만드는 친구가 있었다. 은은한 향과 적당한 달콤함이 어른의 떡볶이를 먹는 거 같았다. 매화수나 달콤 이슬과 마시면 더 맛있었다. 비결은 카레가루. 그때는 그녀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같은 과에 이상한 조원 때문에 고생한 썰, 소개팅으로 만난 옆학교 오빠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다니.. 대학교 친구들과는 느낄 수 없는 재미가 있다. 왜 우린 어른이 돼도 하는 얘기가 똑같고 가고 먹는 게 똑같을까? 깔깔 댄다. 배불리 먹고 친구 침대에서 다 같이 자던 그 포근함이 문뜩 떠오른다.
사회초년생 시절. 라떼만 해도 회식은 꼭 참여해야 하는 행사였다. 회식이 꽤 자주 있었다. 당연히 모두가 속을 부여잡고 출근을 한다. 당시 풍채가 상당한 여자 선배가 있었다. 본인 말로는 소주 살이라고 했다. 해장에 철학이 확고한 분이셨다. 쌀국수, 물냉면과 치즈버거 등 그분 덕에 알게 된 해장템이 많다. 정점은 엽O 떡볶이 었다. 평소에 딱히 찾아먹지는 않는 메뉴였다. 근데 점심시간에 엽O을? 경외감이 느껴졌다. 이 때는 매운맛 조절, 로제? 이런 거 없었다. 그냥 오리지날. 혓바닥이 쓰리고 머리가 뜨거웠다. 감당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콧물을 연신 닦아대며 계속 먹었다. 그 순간만큼은 업무에 대한 푸념이나 험담이 멈췄다. 우리는 오로지 매운맛을 감당하는데 신경과 감각을 집중했다. 땀을 쫙 빼고 다면 뭔가 시원함이 몰려왔다. 나는 사우나를 잘 안 하는데 엄마들이 이 기분에 하시는 건가? 그렇게 우리는 업무로 힘들 때마다 엽O 채팅방에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 ㄱㄱ하시나요?
순한 맛의 떡볶이를 보면 초등학교 실습시간 떡볶이를 함께 만들던 친구들이 떠오르고, 칼칼한 후추 떡볶이는 알바 때 야식으로 만들어주던 동료 언니가 생각난다.
낡은 초록 플라스틱 그릇을 보면 처음 떡볶이를 먹여주던 엄마 생각이 난다. 쉽게 먹을 수 있다. 맛있다. 많이 끓여야 더 맛있다. 나눠 먹기 좋다. 나눠 먹으면 더 행복하다. 행복의 추억으로 먹는 떡볶이.
행복했던 당신의 추억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