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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선 틀기 Oct 30. 2023

실패해 보셨나요?

자기소개서를 쓰다 보면 성공 혹은 실패 경험을 써 보라는 문항을 자주 만나곤 한다. 이전에 수업을 들었던 PD출신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대개 지원자가 쓰는 실패 경험은 아래와 같이 분류된다고 한다.


1. 팀플/동아리에서 겪은 갈등 2. 교환학생 가서 겪은 어려움 3. 입시 실패 4. 인간관계 실패


20대 초중반이 인생에서 산전수전을 겪어봤으면 얼마나 겪어봤을까. 저 네 가지 외의 옵션은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이 질문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성공 경험도, 실패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성공 혹은 실패로 경험을 이분화하기 보다는 감정의 언어로 치환해왔다. 이를테면 성공 대신 성취감, 실패 대신 슬픔 혹은 우울감,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학업목표 달성은 내 인생의 성공이 아닌 성취감의 영역이었고 지금까지 맞딱뜨린 역경들은 실패가 아닌 우울의 동인에 해당됐다. 나에게 성공이나 실패는 아주 깊은 서사가 필요한 개념이었나보다. '겨우 이런 일들이 내 인생의 성공이나 실패가 된다면 삶은 얼마나 시시한 거야'라는 오만한 생각과 함께. 당시에는 쉽게 들뜨기도, 눈물 짓기도 했던 주제에. 어렸던 생각이다.


그런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올해, 연이은 불합격들을 받으며 '이게 혹시 실패인가?'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나는 방송국 취업 준비생이다. 일 년 전, 아니 반 년 전만 해도 내가 이 판으로 들어오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처음엔 발만 담가보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에서 '간절하다'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건 꽤 무서운 일이라는 걸 느낀다. 계속 거절 당하는 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객관식처럼 오답 이유를 명쾌하게 알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와중에 함량 미달이란 말을 들은 것만 같아서. 내가 가진 역량에 집중하기보단 내가 이 회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의심하기 일쑤다.


가장 가고 싶었던 방송국에 떨어져버린 지난 주는 취업준비를 하던 올해 중 가장 힘들었다. 너무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물밀듯이 들었다. 무엇보다 마음 한 켠이 늘 불안한 일상을 그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이젠 어딘가 정착하고 싶었다. 지극히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작제로 면접을 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솔직히 이 모든 과정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원망만 한다고 변하는 건 없다. 그리고 바꿀 수도 없다. 시간을 돌이켜도 어차피 나는 같은 답을 썼을 거다. 그냥 어쩔 수 없는 거였다.


지금껏 원하던 것은 모두 나름대로의 노력으로 취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원하는 걸 얻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각오하고 들어선 길이지만 결말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괜한 길을 택했나. 역시 순리대로 살았어야 하나. 분수에 맞는 그런 길을 또 택했어야 하나.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던가. 불안감의 대부분은 의심에서 나온다. 5월에 봤던 면접에서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으로 '가장 싫어하는 게 뭐냐'고 물어봤었다. 당시 나는 '나에게 안주하는 것'이 싫다며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다른 면접관이 내게 "계속 발전하는 삶 피곤하지 않아요?"라 했었다. 당시에는 시비조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조금 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했다. 어쩌면 잘 지치는 나를 꿰뚫어봐서 더 얄미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날 그 면접관의 말이 계속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책임지지 못할 말을 쉽게 뱉어버린 기분이었다. 순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은 거지 안주하지 않을 사람이 맞나, 나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는 것에는 괜시리 더 책임감이 실린다. 좋아하는 만큼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 잘 알아야 할 것 같고, 열정이 식지 않아야 할 것 같고. 방송국 취업을 준비하기 전까진 그 책임감이 무서워서 피해왔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을 책임지는 게 두려워서 도망가고, 포기하는 걸 그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면으로 맞서기를 택했다. 흐지부지 아련한 사랑으로 남겨두느니 그 진위를 가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매사 미련을 남기지 않는 게 좋으니까. 난 지금 그 진위를 열심히 가려보는 중이다.


올해 내가 꾸준히 밀고 있는 말이 있다. 나는 성공이 필요한 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여전히 변함없다. 나는 내가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보단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 위해선 삶이 마음 먹는 대로 다 흘러가는 건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실패인가. 아니, 실패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여전히 내게 이쯤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를 닮은 브레이크, 정도로 말하고 싶다. 사실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있는 건 도전을 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쉬움과 부족함이 한가득이지만 도전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설사 희망하던 결과를 보지 못한다 해도,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기죽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미련이 없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자.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배가 크고 길면 그 파도를 융단처럼 깔고 가거든.

박준 <계절 산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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