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불이 나면 듣게 되는 말들

화재는 불로 마음의 재를 남긴다.

by 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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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계속된 화재 뉴스에 마음이 뒤숭숭했다.

자욱한 연기를 바라보면, 다시 내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마음 한켠은 계속 쓰렸다.

나는 뉴스와 SNS의 댓글부터 확인했다.


이제는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눈을 떴을 때, 앞이 보이지 않았다.
희뿌연 연기 속에서
흰색, 노란색, 회색, 그리고 짙은 검정까지—

색들이 겹쳐진 듯 퍼졌다. 마치 물감이 번져 섞인 듯한 흐릿함. 안개처럼 뿌옇지만, 공기는 차갑지 않았다.

숨이 턱 막혔다.

창문을 열고 뛰쳐나온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덮쳤지만, 나는 더 뜨거웠다.

비명을 질렀다. 고통이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급히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가던 길. 그 풍경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처음 '물집'이라는 걸 인지했던 건 7살쯤. 팬 피자를 먹으려다 냄비에 손을 데었던 날.
하루 종일 물집 속 물을 뺐다, 다시 차면 또 빼던 기억.

하지만 이번엔…

손가락 하나에도 아픈 그 물집이,
온몸에 퍼졌다.

화장실 손비누 크기의 물집.
수도 없이 생겨났다.


매일 아침이면, 나는 소리를 질렀다.

새살이 돋기 위해선, 물집을 거즈로 떼어내야 했다. 상처 위엔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치료실 바닥은 우리가 알던 평범한 바닥이 아니었다.

피, 딱지, 고름이 묻은 붕대들이 하루에도 수없이 쌓였다.

내 마음은 소각장이었다.
타도 타도, 쓰레기가 계속 나왔다.


진통제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링거를 꽂을 자리가 없어 사타구니, 허벅지, 발등까지.

바늘을 찔렀다.
막히고 또 막혀, 여러 번 찔러야 했다.

어디가 아픈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붕대 속 물집이 다 떨어진 후의 얼굴.

손마디 하나에 생긴 물집도 끔찍한데, 그 빨간 속살이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예쁘게 벗겨진 상처는 아니었다. 얼굴 전체에, 비누만 한 구멍이 뚫린 듯한 자국들.


아침이 무서웠다.

너무 아파서.
그리고,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짧은 면회 시간.
사람들이 찾아왔고,
나를 보며 울었다.

작은 몸이 붕대로 뒤덮여 침대 하나를 채웠고,

입이 보이고, 콧구멍이 보이고,

붕대 사이로 조금씩 드러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화재는 불로 마음의 재를 남긴다.


퇴원 후, 나는 인류애와 인간 혐오를 동시에 느꼈다. 이해하려 했지만, 그 감정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서야 조금씩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모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그 감사함 덕분에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지금도 세상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복잡하고 아프다.


우리 집은 목수였던 아버지가 하나하나 지어올린 집이었다.

새로운 시작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울었다.

살면서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다.

사람들은 말했다고 한다.

"딸은 죽고, 자기만 살아남아서 보상금을 전부 받으려 했다는 말이 돌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를, 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가 새롭게 정성스럽게 지어준 그 집이 밉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를, 나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학교에 가자 친구들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 얼마 모금했는지 알아?" 만원. 오만 원.

어느 날, 한 친구가 나를 따로 불렀다. 자기가 모금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불에 타는 기분이 어때?"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몸이 아픈 건 지나갔지만, 네 말은 몸이 불타는 것보다 더 아팠다고.

그때의 나는 너무 작고 힘이 없어서, 이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병원에 다니며 하루를 버텼다. 정신과 치료도 받기 시작했다.

잠을 자면 죽을 것 같은 공포. 지금 생각하면 여러 감정들이 뒤엉킨 상태였다.

병원이 멀어, 수면제와 안정제를 최대치로 처방받았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게 전부였다.


어느 날, 삶을 버티지 못한 가족 한 사람이 내 약을 한꺼번에 삼켰다.

겨우 목숨을 건지고, 그 뒤 들은 말은 이랬다.

"네가 이 약을 먹고 죽으면 다행인데, 살아서 불구 되면 누가 책임져?"

그 이후, 나는 병원에 가지 못했다.

내가 약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죄처럼 느껴졌다.

나는 멍들어 있었다.


화재는 재가 되어, 몸에 남는다.


20년이 지났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아픈 엄마가 떠났을 때, 그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했다.

"보험금은 얼마나 받았어?"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신경 쓰고, 얼마나 돈을 모았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가족이 없는 지금, 내가 번 돈으로 나를 위해 쓰는 것조차 이야깃거리가 된다.

"엄마 보험금 얼마나 받았냐고."

나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세상엔 못난 말이 많다. 시간은 흘러도, 말은 남는다.

화재 장면을 볼 때마다, 나무가 자랐던 내 마음이 다시 불타는 것 같다.


내가 다시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기까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두려웠던 건, 말이었다. 그리고 눈빛이었다.

그것들이 내 존재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다 지난 일 아니야?" "왜 자꾸 꺼내?"

하지만 이건 '소재'가 아니다. 이건 나의 '삶의 방향'이다.

큰 사건은 시간이 지나도 흔적을 남긴다.

이야기를 꺼낸다고 해서, 잊은 걸 억지로 꺼내는 게 아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나온 길 위에 다시 서야 한다.

모래성은, 바람에 날려 올라서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아야, 올라설 수 있다.

화재의 불꽃은 꺼졌을지 몰라도, 그 재는 아직도 내 몸 안에서 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계속된다.

그리고 나는 그 재 위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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