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옷을 염분기만 빼고 꼭 짜
공용 건조대에 걸고 있자니
뒤에서 묻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 수영 하세요?”
제주도,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
머리가 길게 흘러내리고, 커다란 백팩하나에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온,
뭔가 범속적이지 않았던 중년의 게스트하우스 메이트가 내게 묻는다.
바다수영, 방금까지 같은 물에 있던 사람 전부
엄연히 바다 수영일 텐데?
그런데 물장구 말고, 휴양 말고
뭔가 업(業) 같은 느낌이 났는지 그렇게 물어왔다.
가히 최고의 질문.
나는 아 네.. 넵 뭐 물에 갔다 왔어요 그랬나
아마 하루, 이틀 자기가 볼 때마다
쫄딱 젖은 몸으로 그렇게 물기를 탈탈 털던 내가 그렇게 보였나 보다.
역시 범속적이지 않게
나는 멍하고, 헙-하는 날이 반복되자 제주도행 티켓을 끊었었다.
바다와 초록, 세련되지 못한 건물들과 삼삼한 인구밀도.
제주도는 내게 피안이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매번 반복되는 공간과 똑같은 호흡 속에 살던 나는
멈춰버린 시간의 물꼬를 조금이라도 트려면
필히 공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얍! 하고 좋아지진 않았지만 그곳에
머물며, 바다에 가며, 고등어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니 나았다.
그러다 어쩌다 보니 같이 방을 쓰는 사람과 말을 트게 되었고
저쩌다 보니 다음 날은 같이 바다에 가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사교계 진출이었다.
그렇게 눈뜨자마자 아침을 먹고 뽀송뽀송하게 해를 받으며 우린 바다로 향했고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하는데 이내 한 친구가 계속 태양을 걱정하며
(체감) 5분에 한 번씩 선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그게 그냥 강박이었고 나는 당장에 소리쳤다.
물놀이 와서 물을 걱정하느냐고 (해를 걱정한 거임)
그렇게 나 혼자 해를 다 맞고 비 오면 비 다 맞으며 수영하고,
중간중간에 걱정이 친구에게 물미역도 걸어주고
튜브 빌리네 마네 하며 뽀글뽀글 놀다 허리를 딱 피는데
순간 그제서야 시간이 찰-칵하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제야 1분 아니 1초가 지나는구나.
이 난리 속에 산지 3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똑같은 시간은 시간으로 안치는구나,
똑같은 시안을 시안으로 안 치듯.
우리는 그렇게 정말 노는 것처럼 놀다
배가 고파져 치킨을 시키고
바다를 바라보며 나중에 다시모여 호텔을 차리자는 둥
자신의 장기를 고려해 사업을 하자는 둥 건설적인 대화를 했다.
그러다 다시 비가 오고 그제서야 나는
아아앗 맞다!! 빨래 널어놨는데!! 하며
서둘러 돌아가기로 했다.
도시에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걱정
한 번도 이유가 될 수가 없던 귀가 촉진 사유
‘마당에 빨래 넣어놓고 옴’
비 온다고 널어놓은 빨래를 걱정하는 게
이렇게 낭만적인 일이었던가
그렇게 후다닥 뛰어가는데 한번 돌아가면 숙소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워
가는 길에 세상 싫어하는 롯데리아를 사갔다.
모래알이 돌아다녀 씻는 게 급선무였던 우리는
햄버거를 거실에 던져놓고 씻으러 들어갔는데
일찍 들어와 우리 밖에 없던 공간에 나오자
오직 햄버거 냄새만이 가득해졌다.
롯데리아여도, 식고 눅눅해졌어도 상관없었다.
손가락까지 먹지 않게 조심할 판이었다.
그리곤 내가 강박이라고 소리쳤던 그 행위를 하지 않은 피부는 금방 반응했고
우리는 녹차물을 만들고, 찬 수건을 둘둘 말아서 온몸에 붙이고
수순대로 깜빡 잠이 들었다.
포만감. 정서적 포만감 같은 것을 느낀 나는
이런 비슷한 일들이 내게 더 잦았더라면
내가 가진 괴로움들은 과연 아직도 괴로움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효기간이 있다해도 가공처리되지 않은 음식처럼 비교적 짧았을 것.
통에 든 통조림같이 몇 계절이고 그대로를 담보로 하는 게 아니라.
내 괴로움은 왜 죄다 통조림 속에 들어 갔을까.
다른 사람은 적당히 해갈하며 사는데
나는 그게 안 됐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오아시스 격으로
사태를 만들고 내가 만든 사막에서 허덕이기를 반복..
하기를 또 반복...했다.
그렇다고 어렵사리 먹은 물에
왜 또 넌 그렇게 어렵게 먹었냐고 질책할 수는 없는 일.
그렇게 제주도에서 몇 초를 벌었으니 그걸로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