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막 먹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점점 더 미쳐갔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게 능동적인 행위인 줄 알았다.
예전에 친구가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기 무서워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뛰어내릴까 봐해’라고.
나는 실제로 고소공포증도 있었고 그 말을 판단하기엔 어렸고
그 말을 한 친구를 사랑했기에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건지
나는 창문살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내가 덥석 뛰어내릴까 봐
무서웠다. 나는 분명 이 방 안에 앉아있는데
저기로 그냥 걸어 들어가 뛰어내릴 것 같았다.
그게 정말 무서웠다.
나도 모르게 내가 나를 해칠 것 같아 무서웠다.
그렇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찾아간 게
집 앞 요가원이었다.
너무 좋으면 그게 나중엔 쫌 안 좋더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그 요가원은
많은 수행자들을 앓게 했다.
어딜 가도 그 만한 요가원은 찾기 못해 훌찌럭 거리는 사람들을 양산해 냈다.
마치 내가 오랫동안 심층심리학에 능했던 선생님과의 상담을 종결하고
다시 마음이 아파져 올 때, 어떤 치료자도 나에게 부족했을 때,
그때 처음으로 선생님이 미웠던 것처럼.
무슨 얘길 했더라.
아 요가원.
내가 첫날 간 요가원은 아침수업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중간 통로를 비워두고 수강생들은 양쪽 벽에 붙어
서로 마주 본 채로 매트를 깔고 수업을 진행했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곳이었다.
2층이었던 그곳은 12층인 사람은 보지 못하는
나무의 얼굴을 초밀착시켜 보여주었다.
1층에서도 모를 얼굴이었다.
창문은 온통 초록잎으로 낭창거렸다.
그 뒤는 바로 도로변이었음에도 오히려 그게
나무와 내 사이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그 창이 있는 벽은 우드색 벽돌로 되어있었는데
그게 내겐 전부 나무 같았다.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수업이 끝나갈 때 나는 무릎을 꿇고
드디어 한 번 숨을 쉬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두 번, 세 번 조금씩 가기 시작했고
사람이 많아질 때는 다시 일렬로
빼곡히 닭장 같은 행렬을 하고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에 빠진 지 오래였다.
아쉬탕가, 역동적인 시퀀스로 알려져 있어
호불호가 갈리고 또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좋아하는 이것을
나는 곧 너무 좋아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쉬탕가를 할 때, 나는 욕이 나왔다.
이토록 힘들다니. 욕이.. 막.. 욕이 막 나오려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경건한 곳에서 할 수 없어 조용히 입을 꾹 다물고
끙- 하며 팔을 뒤로 깍지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목 뒤에 태어난 땀이 내 턱선을 타고 입 아래로 모아졌다.
나는 순간 죽었다.
라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죽은 게 아니라
나를 쥐고 흔들었던 우울증의 죽음
정확하게는 짧은 기절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내가 살았구나.
땀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게 아니던가
목 뒤에서 턱 아래로 처음 길이 나자
나는 요가의 혁혁한 역사가 왜인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요가 끝나면 나는 내게 과분한 것이라도 받은 듯
고요해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특별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나는 요가원에 가길 망설여지는 일을 겪게 되었다.
요가는 보통 마지막으로 사바사나, 시체자세라고 불리는 자세를 끝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 온 듯한 음악을 들려주며
잠시 불을 끄는데
나는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온다.
아, 아니 왜
아니 어떡하지
눈물은 줄줄거렸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릴까 나는 너무 곤란해져 버렸다.
이 고요 속에서 이게 무슨 일이람.
그런데 그 날 뿐 아니라
그 후로도 한참을 나는 요가 마지막 시간이 되면 훌쩍거리게 되었다.
아마 어떻게든 비틀어 막은 우울과 슬픔.
소음으로 틀어막으려던 내 안의 비명을
저항 없이 조용히 들을 때 그 경청이 눈물을 부르는 모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그 요가원 외에서는 다시는 그러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 후 한참 뒤 요가를 다시 시작했을 때
그때 마음은 벌써 어디가 버리고 없었고
내가 와놓곤 아.. 이딴 거 왜 한다고 했을까,
돈들이고 시간 들여 왜 그랬을까 그리고 저 남선생은
도대체 숫자를 왜 저렇게 늦게 세는 걸까 할까 하고
부들거리다 불현듯 깨달았다.
그거구나.
요가는 고통 속에서 호흡하는 법을 가르치는 거구나.
물리치료 만 번 받으며 알게 된 사실은
원래 사람은 고통스러울 때 숨을 팍 하고 멈춘다는 것이다.
뱉어야 하는 호흡을 얼굴 빨개질 때까지 참고 그건 매우 해롭다.
그런데 물리치료사나 요가선생님처럼 내게 안전한 고통을 주는 사람은
그건 본능이지만 뱉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받아들여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받아들여보세요
숨을 후하고 계속 밀어 보세요.라고
후-
또 읍-하고 참으면
숨 참으시면 안 돼요 호흡 뱉으세요
후
그렇게 나는 ‘읍-‘에서 ‘후-‘를 배워갔다.
이 작은 데모 demo안에서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