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덜하지만, 예전에는 정말 ‘정신과’하면
상담을 권하기만 해도 내가 정신병자냐고 길길이 날뛰던 분위기가 있었다.
보통 중년 남성들이 그 대사를 많이 했지만 하여튼 문턱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것은
사실.
어떤 사회학 책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었다.
섬에 사는 원숭이집단에게 그전 보다 더 나은 방법으로 고구마를 먹게 되는 법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서를 다룬 일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순서는 가장 먼저 어린 암컷 원숭이, 그다음은 성인 암컷
원숭이, 그리고 후발주자는 수컷 원숭이 그리고 마지막엔 변했는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던 게 수컷 원숭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인간과 놀랍도록 똑같다고 생각했었다.
찾아보니 그건 ‘100번째 원숭이 효과’라고 불리는 내용에 소개되는 글이며
이 사례는 보통 ‘임계점이 넘게 되면(100번째 원숭이까지 씻어먹게 되면) 판도가 바뀌게
된다.’라는 걸 설명할 때 쓰이는 모양이다.
어찌 되었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늙은 수컷 원숭이였다는 것이다.
정신과 약에 있어서는.
약은 정말이지 마다하고 싶었다.
‘한 번 먹게 되면 끊기도 어렵잖아요 그거’라고 말했을 때
내 상담선생님은
‘너도 정신과 약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구나,
적절할 때 먹으면 고금이다.’
그리곤 선생님은 가끔 내 소식을 전할 때
아직까지도 약을 먹는 내 약이 어떤 건지 궁금해하신다.
‘무슨 약을 먹고 있으려나..’
먹는 약을 좀 적어뒀다 불러드려 볼 걸.
예약해 둔 정신과 진료 첫날,
오래도 기다렸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더 두근거리며 말했다.
저.. 약은 먹고 싶지 않은데요..
저는… 저는 그러니까 상담치료를 오랫동안 해왔어요..
그래서.. 혹시 상담을 위주로 하고 약은.. 안 먹는 쪽으로는.. 안 되나요?
그게 그렇게는 안 되나요?
안된다.
지금의 병원 대기를 기다리며 그 사이 급히 다른 정신과에서 약을 타 먹을 때
내가 든 생각은 아, 정신과의사는 앉아있는 약사구나 싶었다.
약국에 가면 약사들은 대부분 서있다.
처방전 받고 이름 확인하고 약 제조하고 전달하고 하루에 몇 번 먹으라 안내하고
그 일련의 과정이 5분 안팎으로 이루어지고
정신과 역시 초진을 제외하고는 처방해 준 약이 잘 맞는지 확인되면 다시 같은
약을 처방해 주고 돌려보낸다. 역시 5분 안팎이다.
긴 호흡의 상담에 익숙했던 나는 저럴 거면 왜 앉아있지라며 부들부들 떨었다.
부들부들…
‘고금’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
내 머릿속에는 온통 한번 먹으면 끊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실제로 아무렇지도 않게 5-10년째 약을 먹고 있다는 사람들의 고백.
그리고 내 눈앞에서 직접 본 약 먹는 사람의
잘게 떨리던 손가락과 팝콘처럼 튀기던 눈동자.
오직 그것만 선명히 떠오를 뿐.
그럼에도 나는 약을 먹기로 결정했다.
일단 선생님이 그건 어렵다고 했고
지금 상태는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고백하였다.
그때 내가 약을 먹기로 한 건
선생님의 공들인 설명 때문이 아니었다고
병원의 벽 색깔과
조용한 말투 때문이 아니었다고.
그저 내 병 때문이었다고
약은 어떤 말에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금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약을 화폐로 썼다.
참으로 어두운 선택이었다.
그 고백을 할 때쯤에는 의사와 신뢰도 쌓이고
흔히 말하는 라포도 만들어진 상태라
약을 다시 최소화하고 무언가를 제안해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약은 내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 질긴 그 약과의 줄다리기에
이미 올라선 다음이었다.
연습도 없이 무대 위로 올라져 버린 남의 사랑처럼
이미 바다 위로 띄워진 작은 배 하나처럼 *심수봉-비나리中
약은,
약은 의존성이 없는 약이 더라도
그 자체로 의존성을 함의한다.
내가 약을 매일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의존 그 자체였고
그건 필시 불안을 동반하게 했다.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으로
불행해졌다.
그렇게 무수히 약 먹는 사람 중 하나가 되고
수년째 약 먹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