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J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는 울고 있다.
너무 기뻤던 탓일까?
감동받아서일까, 뭐일까.
아니다.
오늘은 내 생일도 아니고
지금은 파티 중도 아니다.
여기는 트라우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담센터이고
지금은 EMDR(트라우마치료에 사용되는 치료법)을 하는 중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나는 허리를 숙여 엉엉 울고 있다.
그 앞에 전문가가 약간은 놀란 채로 서있을 뿐
어떤 날도 아니었다.
치료는 중단되었다.
선생님은 내 울음이 잦아들자 내게 왜 우는지 물어봤다.
지금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나는 말도 채 있지 못하고
생일 축하는 태어난 거 축하하는 날 부르는 거잖아요.
근데 트라우마치료와서
죽는 게 꿈인 애가
그 노래 부르고 있자니
너무 슬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불행의 중심에서 갑자기 행복의 중심 노래를 부르자니
그 모순에 푸릅하고 눈물이 터져버리는 수밖에
허리 숙여 울먹일 수밖에.
결국 나는 여기까지 왔다.
상담치료 n 년, 정신과 치료 n 년째,
그리고 결국 트라우마 전문 치료까지
그 세월을 다 합쳐 들면 여느 회사 과장급이 될 것,
어느새 나는 여기까지 와버렸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뽑아 든 이름하여 트라우마 치료는 대부분 매웠다.
가차 없이 맵고
아프고 속상했으며
그리고 후련했다.
그리고 이것과 너무 똑같은 경험 하나가 떠올랐다.
한 옛날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놈의 보호자가 필요한 수술 중 하나였던)
당시 나는 그저 알바 가기 전에 별생각 없이 들렸을 뿐인데 수술얘기에
수술이 먼저인지 알바가 먼저인지도 판단이 안 서 어벙벙했다.
의사는 수술 시간을 잡고 서둘러 옵션을 말했다.
“하반신 마취를 하실 건가요? 부분마취를 하실 건가요?”
지금 쓰면서도 어이가 없는데 하반신 마취가 선택지로 있을 정도면
당연히 하반신마취를 해야 한다. 의사는 딱 그 두 문장만 주었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순진하게 가격이 적게 나가는 것으로 해주세요 그랬다.
나중에 당시 일을 상담하던 선생님께 이런 일을 말하니
‘아니 의사가 설명 안 해주던?’ 그러셨다.
그러게 말입니다. 무슨 극비도 아닌데 결국 어린애 생살을 찢게 만들었을지요.
여자 선생님이 수술하는 게 좋겠죠?라고 해놓고
정작 내가 차가운 수술실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수술부위 제모를 위해 들어온 늘그막 한 남의사였다.
나는 애초에 여자선생님을 굳이 찾아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수술까지 이어지게 된 것.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황당하고 무자비함의 한가운데인 것이다.
찬 수술실에 찬 손으로 사각사각 소리만 나는데
그때부터 나는 뜨겁게 서럽기 시작했다.
좀 말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정말 궁금하다 수술하다 어디가 덧나나?
수술을 여자 선생님이 집도한다고 그 선생님만 달랑 들어가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 남의사도 포함될 수 있으며 또 그 안에 남의사가 제모할 수도 있는…
이런 게 아니어도 그냥 좀 몇 마디만... 다 불필요한 말인가
그런데 내게 너무 필요했던 말을 연달아 놓친 나는
수술이 시작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우울증, 남을 과도하게 신경 쓰는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많이 걸리지
본인은 정작 돌보지 않으니. 나는 그쪽에 속하기에
아프다고 소리를 빽-지른다는게 내겐 없는 일이었는데
없던 일이 그날 다 일어났다.
나는 칼이 닿자마자 소리를 질렀고 수술은 계속되었다.
선진을 달리는 시스템, 수술 전 간호사는
내게 헤드폰을 건네며 음악을 틀어준다고 했다.
무슨 음악으로 틀어드릴까요, 요즘 노래요?
아니요 클래식이요.
그리곤 귀에 꽂자마자 후회했다.
노래가 구슬픔과 내 몰골이 맞물려서 나는 벌써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칼이 닿고 악소리와 함께 수돗물처럼 눈물이 쏟아진 것.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염증 부위는 마취가 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마취가 들지 않는 달까…그래서 다들 하반신 마취를 하지...
그런데 그걸 국소 부분만 마취하고 칼을 댔으니 그냥 생살을 찢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소리 질러 본 적도 콸콸 울어본 적도(상담할 때도 가끔 있는 일)
없다 거기서 다 하게 되고 서럽거나 말거나
엉엉 울어 눈물로 길이 만들어진 내게 집도의는 제거한 염증을 보여주며
생각보다 더 컸어요. 이 정도면 큰 거예요. 빨리 수술하길 잘했어요.라는 말을
연달아하고 수술은 끝났다.
칼을 댈 때도 땔 때도 프로였다.
아이고 선생님 우느라 암것도 안보임니더
외과의사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트라우마치료도 이렇게 생살을 찢는다.
아니 다른 방식으로 생살을 찢는듯한 고통을 준다는 게
더 정확할 것.
내가 길고 긴 심리 상담을 했을 때도
그게 모자라 다른 치료자들을 여럿 만나며 핏을 맞췄을 때도
봄바람 같은 구석은 그래도 항시 있었는데
트라우마 치료만큼은 마취가 들지 않는 영역으로 재분류됐다.
하긴 이미 시간까지 초월하는 게 트라우마라는 것이다.
마취 따위 들겠는가.
다소 안정적이지 못한 회기에
종결도 따로 짓지 못했지만
나는 트라우마 치료가 끝날 때마다 항상 그 수술이 떠올랐고
트라우마 치료자 역시 '외과의사..'라고 부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