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처럼 동그랗게 말린 몸으로 누군가에게 안겨있던 기억.
그렇게 잠들었을 기억을
나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어떤 이와 가지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배경은 대부분 이모네 집이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나는 항상 집을 떠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충 배꼽 겨우 여물 때쯤부터.
그때부터 ‘집을 떠나고 싶다’라는 내 긴 소원이 시작된다.
아마 그날도 이모네 집.
보통 내가 이모네 집에서 보는 얼굴은 뻔한데
어떤 날은 그렇게 자주 보진 않았던 옆집 아저씨가
늦은 밤 이모네 집으로 성큼 들어왔다.
냉장고처럼 큰 아저씨였다.
그리고는 이모에게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오잉? 저스트 투 오브 어스가 아닌 초미성년자인 나까지 포함,
늦은 밤 동네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노래방에 가기로 한 것이다.
통장이었던 우리 이모를 빼놓고 갈 리가 없던 것.
어쩐지 다들 이모한테 뭘 항상 가져오고
이모는 또 늦은 밤 서류철을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더라니.
나는 ‘노래방’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내 이모가 부를 노래는 ‘남행열차’겠구나”라고 단박에 떠올린 게
지금 생각해 보니 귀엽다.
아주 작은 아이가 이모의 애창곡을 알고 노래방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담담히 예견을 한 것이 귀엽다.(당연히 들어맞음)
그렇게 왁자지껄 노래방을 갔는데 말했다시피 늦은 밤,
아이는 자고 있을 시간에 딸려 나온 지라 나는 스르륵 잠이 왔다.
참으로 웃긴 것이 낯익은 내 집에서는 그래본 적 없으면서
이모와 몇 번 본 삼촌 말고는 전부 낯선 사람 투성에
시끄럽고 요란한 조명아래 낯가림도 심한 내가 솔솔 잠이 왔다는 게
지금 생각해 보니 서글프다.
사실은 잔 게 아니라고 말해줘 덜 슬프게
자그마한 아이가 졸려하자 어른들은 자연스레
돌아가며 자신들의 허벅지에 나를 뉘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꿈처럼 가끔 보는 아저씨 품에 천사처럼 안겨있었다.
내가 천사라는 확신은 나를 보는 아저씨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이런 커닝은 난생처음이었다.
이런 기분이구나. 노래로만 들어봤는데
작은 나에게 아저씨는 정말로 커서 넉넉하고도 안전한 느낌에
도리혀 잠을 쫓아내어 이 기분을 영원히 영원히 느끼고 싶었다.
웃겼던 것은 아기가 잔다고 흥이 나 마이크를 잡고 열창하는 사람에게
조용하라고 성을 낸 게 너무 웃겼다.
얘 자지 않느냐고…
나를 위해 노래방이 노래방임을 허락하지 않았던 아조씨…
그것도 다 큰 나야 웃지만 그때의 나는 그 단단했던 방패감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를 딱딱 부딪히며 으르렁거리는 사람의 턱을 나는 처음 본 것이다.
저 이빨을 나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고?
줄 곧 그것만 봤는데.
그때 아저씨는 왜 그랬을까 그냥 의자에 재워도 충분히 작아
괜찮았을 나를 왜 어느새 덥석 안아 올려 오른쪽 왼쪽으로 작게 흔들었을까
아저씨도 딸만 둘이어서 그랬을까?
그 아저씨는 자기 집에서 딸이 잠이 들면 그렇게 한 번씩 번쩍 번쩍
안아 조용히 흔드려나, 무서운 일이 들이닥치면
아이들이 부모 목에 아롱다롱 매달리는 게 당연한 집이었으려나.
날 덥석 끌어안은 그 냉장고아저씨는 홀어머니와 살고
내 이모가 친한 건 그 홀어머니.
호수가 가까워 유달리 더 각별한 사이였다.
어떤 날은 늘 그렇듯 이모 손을 붙잡고 옆집 할머니 집을 가는데
이모와 할머니는 분주했다.
그날은 종이 뭉치가 집안 가운데 떡 하니 놓여있었다.
가까이서 본 흰 종이에는 몸 군데군데 멍이 든 모습이 확대되어
글과 함께 프린트되어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모습이 선명했다.
이모와 할머니는 회의 중이었고
나는 혼자 조용히 그 이미지에 압도되어 버렸다.
아이가 봐서는 안될 종이였다.
그러나 이모와 할머니는 내가 있는 줄도 잊은 듯했다.
그것은 소송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멍은 그 큰 아저씨가
자신의 아내를 때려 그 아내가 증거를 포함한 소장이 그 집으로
날아든 것일 것이다.
“어디서 자기가 쥐어뜯고 나서 잘도 올렸네”
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그 아저씨의 큰 손과 큰 몸을 떠올렸다.
어떤 게 진짜 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냉장고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후에 어떤 게 진실이 됐을지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도 크고 거기 사는 딸 둘도 많이 컸을 무렵
이모에게 소식을 물었더니
후에 장성한 그 아저씨의 딸들은 할머니에게 너무 많이 맞아
지금은 연 끊고 산다고 했다.
“애를 왜 그렇게 쥐어 패서는…” 이모는 말했다.
왜 이렇게 다 못 때려서 안달일까
그곳도 실은 나만큼이나 무서운 숲이었을까.
어쩌면
아이가 작으니 노래방 간이의자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나와
아이가 작으니 저딴 의자에 뉘일게 아니라
꼭 당신 품에 안아야 하는 게 당연한 세상도 안은 같았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그 저 그 집 딸들도 집에서 겪지 못했다고
평생 겪지 못하진 아니해
어쩌다 품에 품을 기억하나 얻어가
어쩌다 늦은 밤, 나처럼 생각나길 바랄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