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는 없어요. 친구 비슷한 건 치료자뿐이고요

by 내담자 Jay


“J님 보호자님, 보호자님”

간호사는 두리번거리며 대기실에서 내 보호자를 찾았다.

“보호자는 없어요.”

아까 분명 말했다. 또 말하게 하다니

“아, 네 그럼 올라가시죠.”


나는 인생에서 하루정도 입원이 필요한 수술을 세 차례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세 번 다 보호자는 없었다.

“보호자가 없으면 대장내시경을 해드릴 수 없어요. 저희 병원 방침이 그래요.

마취가 풀려도 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에 거동 시에 보호자가 필요해요.”

이때도 나는 보호자 없이도 마취에서 잘 깰 수 있다는 이상한 말을 하며

당일 날 더럭 혼자 와버렸다.

“보호자.. 없으세요? 하.. 일단 앉아 계세요.”


내 보호자는 어디에?

나는 본가가 지방이고 홀로 서울살이를 하느라... 그런 것도 아니고

서울에, 부모와 함께 산다.

요새 일 안 하는 사람 어디가 있어요 당연히 바빠서 못 오지-도 아니고

전부, 집에 잘 계신다.

그런데 왜?

그건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 책이 나온 것 이기는 하다.

보호자가 얼비치는 삶을 사느라


아플 때 곁에 누가 없다는 건 항상 서러운 것과 엉겨 붙었다.

그건 낫고 나서도 감정은 남아 내 내구성을 떨어트렸다.


대장내시경정도야 애교로 친다 해도 수술을 그렇게 한 다음에는

도무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어 구멍 난 지갑으로 택시를 얻어 타고 집에 가곤 했다.

이대로 날 어디 팔아넘겨도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시루떡이 되어서는.

그런데 그렇다고 정말로 팔아넘겨지면 안 됐기에

나는 멀쩡한 척 창 밖을 보며, 이를 악물고 허리를 고쳐 세우고 앉곤 했다.

난 몰랐던 것이다. 갓 나온 빵에서 냄새가 풀풀 나듯

방금 병원에서 나온 사람은 약 냄새가 풀풀 난다는 것을.


어쨌든 집에 무사히 가는 것도 내게는 수술과 더불어

번번이 한번 더 들쳐 업어야 할 짐이었다.




한 번은 은사님으로 불리기에 부족한 학창 시절 선생님과 뜻밖의 재회 후

넉넉한 마음으로 같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럼 J야 너는 친구는 없고 대부분 선생님들(치료자)이랑만 이런 이야기를 한 거니?”

“네 보통은 그렇죠”

그때는 분명 씩씩했는데 집에 오니 그 말이 왜 그리 맵던지.

그러네. 선생님의 통찰이 아니었으면 나는 그동안 누굴 사귀며 커왔는지도

모르고 살 뻔했네.

그랬네.


나는 친구라고 부를만한 인물은,

그러니까 서로를 신뢰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며 울기도 하고 펄쩍 뛰기도 하는

인물은 그러고 보니 치료자 하나뿐이었다.


너처럼, 친구의 폭이 좁은 사람이 있다.

그렇게 두지 마라. 너랑 같이 뒤풀이 한 동아리 친구들도 다 친구들이 아니면 뭐니


앞으로 선생님이라는 대명사로 등장할 단 한 사람, 내가 가장 오래 상담을 받은 선생님이

내게 해 주신 말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굳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아니 실은 1초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내게 해 주신 말이었다.

선생님은 사실 친구의 폭이 뾰족한 사람이라고 나를 묘사하고 싶지 않으셨을까?

바늘 끝처럼 뾰족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모른다고. 친구를 사귀는 게 뭔 지. 친구는 뭐고 타인은 뭐고 연인은 뭐며

아저씨는 또 뭐야? 같은... 말장난만 생각날 뿐

정말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다.

모르는 채로 누워있을 수만은 없으니 내 나름의 자구책들을 마련해 오며 살아온 건데

결론은 이렇게 나는 친구 비슷한 건 치료자뿐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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