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먹은 스펀지 감정

눈치일까? 감각일까?

by 리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은 상대의 감정이
내 감정처럼 스며들어 오는 순간이 있다.
꼭 물을 머금은 스펀지처럼.
모든 감정을 다 빨아들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대화에서는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그려진다.
대화 속 풍경이 만들어지고,
그 장면 위에 감정이 덧입혀진다.
나는 그 그림을 보듯
상대의 말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대화는 점점 깊어지고,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이 사람은 지금
이런 감정이겠구나.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말로 꺼내면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맞아. 맞아.”
그 순간,
내 안의 스펀지는
그 사람의 감정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대화가 끝난 뒤에도
그 감정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상대의 이야기,
상대의 슬픔과 망설임,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들이
내 안에 남아
오래 맴돈다.
그래서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건 눈치가 빠른 걸까.
아니면
감정을 그대로 느껴버리는 감각일까.
공감 능력이 좋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을 짊어지고,
눈치가 빠르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깊이 스며든다.
어쩌면 나는
사람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몸으로 먼저 느끼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장점인지,
아니면 나를 쉽게 지치게 만드는 성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오늘도
물 먹은 스펀지처럼
사람의 감정을 조용히 품고
대화를 끝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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