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땅 위, 드디어 첫 발을 내딛고 저 파란 하늘을 기어코 날아오르리 결심하던 순간이 있다. 마음에서 하는 말로는 “시간이 얼마 없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다급한 호소처럼 느껴졌다. 인간의 생은 반드시 상대적이어서 질서정연해 보이는 틀과 무관하게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단순 설문지의 평균값에 자신을 욱여넣으며, 생사의 폭을 대충 재단해 낸다. 보이지 않는 삶의 시간들은 불규칙성을 띠고, 자아인식을 통해 감각적으로 예측하는 시간의 유한함으로부터 ,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은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만의 이야기가 생겨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의 생을 서로 나눈 덕에 아픔과 사랑, 고통과 기쁨, 열등감과 자아존중 등 수많은 감각적인 감정들을 기억의 저장소에 수북하게 쌓아놓는다.
기억이란 것이 어느 날에는 다 패기 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 속에도 사랑이란 감정은 언제나 현존하며, 그곳에는 항상 존재라는 것이 있었다. 존재한다는 것과 의식의 현존. 시냅스의 단절을 두려워했던 날들에게 다가가 진심을 들어보고자 한다. 의식이란 자유로운 사고를 위한 수단이다. 이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최상의 자유로움, 삶의 방식 그리고 존재함이다. 존재이며, 동시에 인간이 서로를 연결하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오늘의 대화는 다양한 감정을 지닌 채, 이어지는 터라 조금 부담감이 있다. 무엇을 말하는지 그대로 느껴주는 것을 통해 바라본다. 화라는 감정, 짜증과 유사하며, 온몸에 미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오늘 하루 중 편안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잔상들을 택해본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맑아진 물속으로 살랑살랑 헤엄치는 물고기들, 어떤 것이 머무는 마음을 좀 더 유연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아기 자기한 그림? 낮에 본 풍경들의 연상작용 속 가장 예쁜 것들만 추려, 꺼내본다. 글을 쓰는 지금, 내 안의 날것이 숨 쉬는 것들을 지켜보며, 그대로를 표현한다. 화를 내보기도 하고, 이내 웃음이 터진다. 아, 화라는 감정을 바라보는 것은 웃음이 나는 일이로구나.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다음으로는 짜증이다. 울음과 맞물린 공간의 교집합으로 감정이란 녀석은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징징거릴 준비를 한다. 이러한 어린 자아는 잠시 격리하여, 시간을 두고 처리를 하기로 결정한다.
미숙한 자아의 표출은, 인성에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사람들은 내부의 자아와 자아의 연결감을 알아차리지 못하니, 스스로 일으킨 감정에 자책하지 않도록 공간을 이동시켜 따로 관리하는 행위이다.
시간의 여유를 주고, 앞서 이야기한 어른의 놀이를 해보는 것도 꽤 효과적이다. 어른들의 놀이만큼, 미숙한 아가 자아가 영감을 얻고 활력을 얻기에 좋은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 필자는 매일 꿈을 꾸어대는 통에 아가 자아를 대면한 적도 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메시지들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올 때도 있다.
물속은 무엇보다 자유롭겠지, 물과 함께 흐르는 기분을 매일 느낀다면? 무의식의 작용들 속 불쾌한 습관이 있다. 필자 과거의 역사를 차례로 훑어보며,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본다. 도저히 글을 쓸 엄두도 나지 않고, 집중력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로 감정의 흐름을 담아내고 싶었다. 감정 그래프처럼, 불필요한 습관도 그 흐름과 유사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머리가 맑아진 디폴트 상태를 온전히 느끼고 싶었던 터라, 이 시간이 더욱 간절하고 절실하다. 복잡한 감정의 폭풍이 몰려 올 당시, 나와의 대화를 진득하게 이어나간 적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마음의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의 모양새와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각들을 관찰하기 충분하다.
타는 속이 마치, 곧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빵빵하다. 이런 극도의 혼란스러운 감정은 살면서 여러 번 겪은 적이 있지만, 이 번의 감정도 그날만큼 만만치 않다.
대체제를 만들지 않은 상태는 이번이 처음 이기 때문이다. 대체제가 없는 습관의 물리적 이행을 최대한 순수한 것으로 변환시키기 위한 고집을 부려보았다. 혼란을 담는 것의 의미는 기록이자, 자신을 알아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임도 배웠으니, 행동해야지.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 명상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주고 놓아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언가를 계속하기보다, 그저 감정을 바라보고 놓아주는 단계의 처음은 누구나 혼란스럽고 어렵기 때문에 그 문장 속 진정한 답이 무엇인지 만약 진실로 아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이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해탈한 부처일 것이다.
필자의 흘러감은 흐르는 물에 비유하고, 그저 바라봄에 나의 감정과 같이 머물고, 이러한 것이 고통이구나, 짜증을 내고 있고 이 것은 화라는 것이구나, 이 몸이란 것이 그렇게 작용되고 있구나 하며, 감정의 시공간에 함께 머물러 주는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에 쌓인 깊은 감정들이 이러한 감각적인 승화 작업들로 자유를 얻었다.
모든 감정의 부정은 최소 최대의 저항을 만들어 내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면, 저항의 힘을 잃고, 그저 감정의 일어남을 알아차릴 수 있는 날이 온다. 여기에 더해, 호흡을 길게 여러 번 들이쉬고, 내뱉고 나면, 이 모든 감정이 반감이 되기도 하고, 몸과 좀 더 친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곧 안정이 찾아온다.
필자의 놓아버림의 방법이 기존의 방법과는 다를 수도 있고, 하나 일지도 모르지만, 필자가 느낀 바로는 통역사들이 제대로 통역을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이다. 그저, 필자만의 생의 터득 방법이니, 이 글을 통해 누군가는 아! 이렇게 하니, 감정 정리에 도움이 되는구나! 받아들이게 되니, 편안하구나!라는 마음의 꽃이 핀다면 그것으로 된거다.
금연의 밤, 마음의 대화? 갑자기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쓴다. 필자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들은 꿈속 세상과 다를 바가 없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이상한 글 일 수 있겠지만, 기록의 한 형태로 남기기에 완벽한 추억이다. 필자의 세계는 이것이 디폴트값이다. 이상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세계. 오늘의 감정은 금단의 스트레스와 수많은 감정이란 손님을 초대한 직후의 감각이다.
금단의 대화
지은이: 우산을 쓴 소녀
끈질기게 따라붙던 너라는 진드기.
어제는 비가 왔지, 이제 맑은 물에 첨벙첨벙
다 씻어낼 거야.
애태우고, 잊을만하면 스멀스멀 올라와
감정의 연기 속으로 빨아들였지.
니코틴이란, 금단의 열매.
얄미운 작은 악마.
고 얄미운 녀석, 몰아내려
양손을 마주 잡고, 깊은 곳의
주문을 외운다.
“가라, 네가 자리할 곳은 더 이상 없다!
니코틴! 나가라! “
가라, 니코틴.
퇴마의식이 시작되고,
그제야 작은 악마의 민낯이 공개되며,
시원한 연기 속으로
영원한 안녕을 약속한다.
(2025.5.5 어린이날, 어린 자아의 자유를 주는 날로 정해보자! 그대도 쉴 공간이 있어야 숨을 쉰다. 모든 감정을 느끼며… 깊게 들이쉬며,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