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 이면의 또 다른 세상

by 우산을 쓴 소녀


감정이란, 참으로 고유하다.

모두의 슬픔에는 이유가 다르니까.

감정도 개성이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늘의 감정과 함께 산책을 나가 본다.


얼핏 보면 발레리나들의 아름다운 몸짓 같고,

서로 무리 지어 날개를 펄럭이며 긴 다리를 쭉 뻗는 모습이

고고한 학처럼 우아하다.



마치 군무처럼 일렬로 척척 맞춘 몸짓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머문다. 따라가 본다.

그들의 예술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바라보며,

길을 나선다.


보이는 것 이면의 또 다른 세상.

화려하다. 화려하다 못해 과격하기까지 했다.



쫓기고 있는 두 마리의 검정새.


그들은 텃세를 부리고 있다.

우아해 보이던 모습과는 다르게 정착한 철새의

텃세 현장이었다. 웃프다.


지내기에 좁은 것도 아니고,

충분한 먹이와 풍요로움이 공존하는 곳임에도,

동물은 동물이다.

(이기적 유전자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검은 오리인지, 이리저리 잠수를 하며 쫓겨 다니기에

바빴다.


그래, 종을 뛰어넘는 자애로움은 동물에게 벅찬 거지.

응, 그래서 동물인 거다.


오늘은 윗동네서 원앙의 텃새를 관찰하였다.

원앙은 강해 보이는 왜가리나 강한 수컷에게는 덤벼들지 못한다.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수컷은 암컷 원앙을 데리고 멀리 떠난다.

같은 종끼리도 영역 싸움을 한다.

그래서 동물이다.


인간의 의식으로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요놈아, 같이 좀 있는다고 물이 줄어들지는 않아.”

원앙과 눈이 마주쳤다.

멀뚱멀뚱 양 옆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이 천상 연기자다.

예쁜 모습을 하고, 사랑꾼 행세를 하지만, 이웃에게는 공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무리를 이루면 강해진다.

혼자 있으면, 작고 힘없는 개체들만 졸졸 따라다니며 쪼아댄다.


그런 그들도

상위 포식자, 왜가리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나뭇가지 같다.

가냘프다 못해 톡 부러질 듯 연약하다.


왜가리를 좋아한다.

홀로 있어도 강한 녀석들이다.

그들은 무리 지어 생활하지 않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꽤 독립적이면서 영리하게 진화되었다.


뭘 하든 관심도 없다. 불편하면 자리를 뜨면 그만이다.

그러한 가벼움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일 거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는 중에도 왜가리는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자신의 몸으로 얼굴을 파묻고 꿈쩍도 않는다.


홀로 서는 강한 사람으로 남으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단호하고 굳건히, 자신을 의지하며 머물러야 하나보다.





(2025.5.18. 동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 뒤 스토리에 대해 우린 아는 것이 별로 없죠.

외부로 드러난 조건들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만큼 동물적인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존감이란 뜻을 진실로 실천하고 있다면, 자신의 맨 모습도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부 본연의 모습에 실망하거나 판단하려는 의식도 없겠지요?

여행자는 오늘도 잠시 머물다 집으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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