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지 않은 정신

by 우산을 쓴 소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쪼글쪼글해진 피부, 퍼석퍼석해지는 머릿결, 환영 밖에선 그 옷으로 나이를 가늠하긴 어렵다.

그들은 소년, 소녀 같고,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눈으로 신비한 광경을 탐험하는 듯 설렘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 길 위에 청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시들시들한 꽃 잎과도 같이 가냘픈 가지에 겨우 매달린 소망마저 꺾어내 버리는 어리숙한 존재들.

썩은 과일에 비유하기에 가장 알 맞은 선택 같다.


외적인 늙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움이지만, 내적인 나이 들어버림은 꼰대를 넘어,

인간대 인간으로 최소한의 선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가련한 늙은 존재로 스스로를 전락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지혜의 소리에 집중을 해본다.

매 번 필자의 가슴속에 큼지막한 생채기를 남기듯 흘리는 그 한 마디는

어설픈 한 인간의 심리상태를 또렷하게 떠올리게 한다.


불편감.

그들에게 느끼는 이러한 불편감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2차적 추측이 만든 편견은 아닐까?

수 없이 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거짓 없이 당당하게 살아왔는지,

과거의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헤맨다.


현존함이 없고, 이미 사라진 허상에 대한 소음을 극도로 반기는,

층층이 쌓아 올린 허상 위에 걸터앉아, 과거의 돌들을 하나씩 빼가며, 곧 무너질 탑의

흔들거림을 즐긴다. 그 흩어진 조각들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던지며, 오랫동안 가지고 논다.


더 이상 과거를 묻는 사람들도 없고, 그들 스스로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원치 않았다.

먼저 다가와 지레 겁먹고 방어하는 어설픈 가짜 어른의 행동을 바라보게 한다.


외로움.

“외로워서 그런 거야. 그들은 외로워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서 그렇겠지.”

“아무나 말을 받아주니 그런 거야. 다음에는 조금 더 냉정하게 대해도 괜찮아. 너의 시간이 더 중요한 거지.”


조언자들의 말.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전자는 무한히 넘쳐나는 인류애로 보듬고 사랑하며, 자신의 시간을 전부 다 내어줄 것이고,

후자는 특정 사람들에게 냉정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안전선을 지키고,

자신의 시간을 존중하며, 스스로 선택한 시공간에 머무는 것을 택할 수 있다.


전자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무의식 속 번뇌만 차 오른다.

굳이 활용되지 않을 생각들에 휘말려 버린다는 말이다.

애초에 자신에게 맡는 결, 가치관이 아니었음에도 누군가의 사상을 그대로 들고 와서

에고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잠시동안은 그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여러 번 반복이 되고

수년이 흐르면, 자신의 안전선을 내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더 많은 것들을 요구받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시를 들자면, 자신의 골칫거리 감정의 짐들을 함께 나눠 들어주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내비치고,

말을 무시했다며 도리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행동등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한다.


그렇게 누군가의 커다란 결핍은 마치 순수하고 연약한 속살을 파고들어 욱신거리게 만드는 고문 도구처럼 쓰일 때가 있다.

그들에게 결핍은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마치 타인을 향한 무기가 되어 휘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든 상대에게 무례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말로써 상처 입을 수 없지만.)


사람은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향기가 배어 오는 것이다.

오염된 부위를 깨끗이 씻어내고, 자신만의 향기를 되찾으면 그만이다.


이것은 비난의 말이 아닌, 사람의 향기는 그만큼 진하고, 그로부터 받는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한 사람의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특히 자신 안에 중심이 없거나 신념이 없다면,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개인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삶을 사랑하란 말의 깨달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외부에서 헤맨 시간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우고 버리기를 반복하며,

어느 날 하늘과 반영의 중심에 서있는 필자 스스로를 발견하였다.


온통 자신뿐이란 말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자신만의 진실된 사랑이 쏙 빠져 있고, 스스로의 관심에 목말라있는 상태다.

그것이 결핍의 공간을 만들어 외부에서 아무리 채우려 해도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다.


그들의 결핍의 정도는 자석보다도 더 강력하고, 필요에 의해 사람을 이용하기도,

이용 가치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돌변한다.


그들이 남긴 흔적에는 찝찝함이 묻어있고, 그 향기는 꽤나 고리타분하고 쾌쾌해서 새로운 향기가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들은 타인의 말에 꼬투리 잡기 선수이며, 영혼들과의 이간질에 능통하여,

얼핏 영웅처럼 비치기도 하지만, 실상은 속이 새카맣게 늙어버린 겁쟁이들이다.


반면, 외적으로 나이는 들었지만, 침묵하고 꿈을 꾸고 소망을 실현해 나가는 그들에게 늙거나

‘나이듬‘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 상쾌한 향기와 평온함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들의 경험은 젊은 마음들에게 씨앗이 되어주고,

영감을 가져다준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난 소년은 외적인 노인임에 분명했지만,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한 아이들 같이

순수했으며, 젊은 친구에게 자신들이 보고 느낀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 아기 오리들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수십 년을 사진과 함께한 젊은 노인은 진실된 지식을 쌓아 올린

자신만의 세상을 살짝 엿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두 분의 사진가들은 우연히 지나는 길에 마주한 동료들이었지만, 그들은 더 이상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허상에 대한 자기 평가가 아닌, 현존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보여주셨다.


그들의 시간은 흘러가지만, 삶의 주인으로 이곳에 존재함을 배울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침묵했고, 외로웠으며, 고독하였지만 결핍적이지 않았다.

누구보다 가볍고, 화려함을 버린 그들의 내면에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풍요의 샘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샘솟는 사랑으로 타인을 대한다.


자신의 귀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이에게는 존경을 표하고, 그들의 지혜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이에게는

깊은 감동과 찬사를 보내야 한다.


그들에게 외부는 더 이상 투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의 넘쳐 나는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미소 짓고, 눈은 흘러가고 있었다.


공감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공감이라 부르고,

직언이라 말하며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며,

상대는 원치 않던 조언들을 얹어 자신만을 표현하려는 것은

너무나 어설프게 늙어버린 하수다.


직언은

자신의 입장과 신념을 가지고, 상대와 존중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며,

상대를 판단하는 언어와 문장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로 뻗어나가는 각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다.


상대의 의견에 꼬리를 잡는다거나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 직언이거나 대화 거나 토론이라 생각했다면,

단어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대충 말만 하고 있다는 증거다.


개개인의 인생과 삶.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그들이 수없이 살아낸 환경과 기질적 특성 그리고 삶이 준 갖가지 변수들이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자신에게 맞는 교훈과 조언을 얻고자 하는 이를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


(2025. 5.14 나의 동료들에게,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신념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자신을 작게 만들기보단,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봐주세요.

의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흔들리 수 있습니다. 주변의 잡음으로 그대의 고유함이 흔들린다면,

자신과의 우정을 떠올리며, 그 소중한 두 손 꼭 잡아주세요. 그렇게 자신을 채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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