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관찰.
여행자는 관찰이 좋다. 관찰을 하다 보면 기존에 알지 못했던 패턴들을 찾아낼 수 있다.
새들도 그렇고, 보이는 모든 것이 그렇다.
사랑하는 것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표정은 어떨까?
어떤 미소를 띠고 있을까?
제대로 관찰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을 호기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움직임은 어떤지, 어떻게 보살피고 있는지.
물가에 몸을 씻고, 바람이 불어오는 마땅한 장소를 찾아, 젖은 깃털을 말리는 새들의 여가 시간을
관찰하다보면, 빠진 깃털을 정리하고 털어내며, 구석구석 자신의 체온을 곳곳에 채운다.
정성을 다하고 성심껏 깃털을 가꾼다.
그들은 관찰자의 시선에 더 이상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과 함께 있다.
늘 자신으로 있다.
비가 오면 억지로 날아오르지 않고,
날이 더우면 물가에 그늘을 찾는다.
그들에게는 가면이 없다.
오늘 나는 벗겨낸 가면들을 한 곳에 쌓아 놓았다.
구석진 자리에 포개 놓았다.
한강 다리의 남색물이 흐르고, 엉뚱하게 놓인 커다란 회색 바위는
물길을 바꾸고 있다.
자연은 벗겨낸 가면들을 한 곳에 모아 쌓아 올렸다.
계천으로 던진 가면들이 한강에 모여 탑을 쌓았다.
눈을 감고…
환영에 비친 진실은 어둑어둑한 남색 물결에 흘러가며,
모든 가면을 벗겨내고, 그제야 나를 보게 한다.
미안하지 않았다.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으므로.
고맙지 않았다. 서로가 감사함을 모르는 관계는 더 이상 고마움은 필요 없다.
사랑하지 않았다. 형태를 달리 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감사한다. 잠시 잠깐의 순간이라도 살아있음에.
미안했다. 홀린 듯 허울과 망상을 쫒은 나날들에.
사랑한다. 나로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영혼을.
“그렇게 살아라.”
나비를 쫒다가도 결국 너의 집으로 돌아가는 나로 살아라.
한 폭의 풍경이 된 자신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보게 된 오늘을,
스스로를 살고, 사랑하고, 꼼꼼히 채운다.
결핍, 그것은 비교로부터 오는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대 스스로를 채우는 귀중한 시간,
그 순간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곧 충만함”의 단어이다.
비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차렸다는 것은
공간의 쓰임을 비로소 찾게 되었다는 것.
그곳에 마음껏 그대의 세상을 그리고 채워라!
판단, 그런 척, 소음들에 넋을 놓고 있더라도 곧 알아차리고
너머를 본다.
아기가 되어버린 노인, 걷지 못하는 온전한 자들,
아이 대신 새들과 소통하는 엄마들
함께 존재하는 시간 그리고 공간이 있다.
그저 존재하고 있음을, 이 모진 생각의 꼬리를 끊어내고
내 발 길 앞에 놓인 꽃 한 송이에 손이 간다.
회색돌처럼,
생각의 물길을 달리해 본다.
존재하는 오늘을 마음껏 느끼며.
(2025.5.26 동료들에게…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나 봅니다. 소음은 사라지고, 정적이 찾아오듯 미움이 자리한 곳
누군가의 흔적은 이미 세상에 없습니다. 공연히 사라져 버릴 것들에 화를 내고 원망하는 순간, 그 모든 이들은 영원하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죽음은 자연히 아름다운 것이죠. 그들의 흔적에 미움마저 가면을 씁니다. 다 내던져 버리고 맨 얼굴로 오늘을 살아봅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