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검은 대나무와 배롱나무사이에서

신사임당과 율곡이이를 만나보며.

by 김경진

사임당 동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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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을 그리 자주 갔어도 오죽헌 한번을 못들렸다. 아이들에게 바깥 박물관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매표와 동시에 걸음은 빨라지고 설레임 폭발로 요동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곱디고운 형국의 신사임당 동상과 율곡이이상을 마주했고 문화해설이 시작되는 순간 조선시대로 와버린 느낌이다. 사임당 신씨는 (1504년 12월 5월~ 1551년 6월 20일) 조선 중기 빼어난 여류화가이자 문인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시, 그림, 글씨가 매우 출중했다. 유교사회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사임당을 키울 때는 상당히 오픈된 사고로 그녀의 재능을 잘 키워내었다. 또한 그녀의 자녀들 4남 3녀 중 율곡이이는 5번째에 해당한다. 첫째부터 아들, 딸, 아들, 딸, 아들(율곡이이), 딸, 아들 이렇게 규칙적으로 아들과 딸이 태어났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대한민국 지폐에 한 가정의 모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가문의 영광을 가져간 이력은 없다.


그녀가 남긴 초충도, 수박과 들쥐 등의 그림은 당대 여성화가로써 산뜻하고 섬세한 필력으로 평가받는다. 글씨 또한 남성들이 쓰는 글씨체인 초서체나 전서체를 주로 썼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신사임당은 여러 방면에서 능력이 있었고, 어머니로서의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자녀 교육에 힘썼던 팔방미인이 맞는 것 같다.


오죽헌, 검은 대나무를 마주하며


오죽헌에 들어서면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쓴 현판 문성사가 보인다. 울곡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사당이다. 그 옆에는 고려말 조선 초 시기에 가옥형태를 모두 가지고 있는 오죽헌과 몽룡실이 보였다. 몽룡실은 바다에서 용이 나와 이 방으로 들어오는 꿈에 율곡이이가 태어났다는 곳이다. 그녀가 자녀를 기를 때의 교육 철학들이 방 안에 몇 가지 쓰여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들은 변한 것이 없구나 싶다. 자연과 함께 하는 교육, 예술적 감수성을 길러주거나 도덕적 가치와 책임감을 중요시 강조하고, 스스로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정서적 안정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힘써 다재다능한 인재로 성장하게 도운 어머니였다. 거기에 아름다운 말과 본이 되는 행동으로 자녀들을 키워내니 7남매 모두가 훌륭한 인재로 세상에 귀감이 되고 있다. 문득 내교육철학도 그녀의 지향점과 같지만 여러모로 부족하여 고개가 숙연해졌다. 고즈넉한 오죽헌과 몽룡실 옆으로는 검은 대나무들이 속속들이 보였다. 연한 녹색에서 갈색 , 검정색을 지나 하얗게 된다는 대나무 한살 이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보통 마주하는 중간크기의 녹색 대나무들에만 익숙했었다. 신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의 외손자, 권처균이 이 집을 물려받았는데 검은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까마귀 오자에 대나무 죽 자를 써 오죽헌을 자신의 호로 쓴 것이 이 집의 이름이 되었다. 마당 끝쪽에 자리잡은 배롱나무는 가지럼을 피면 잎 끝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신사임당이 심었다고 하는 이 나무는 사실 겉과 속이 같아서 표리부동함없는 청렴함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실 현존하는 배롱나무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오죽헌 마당에 떡 하니 서있으니 의미가 더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를 지나 끝 쪽에 어제각이 있다. 율곡 이이의 <격몽요걸>과 어린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기 위핸 세운 것으로 200년이 지난 이후에도 정조가 그것을 궁으로 가져와 율곡이이를 찬양하는 글을 지어 새기게 하고 책에는 머리글을 지어 잘 붙여 보관하라고 돌려보냈다. 왕명을 받은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하기 위해 지은 집인 것이다. 후대 임금에게도 율곡이이는 존경의 대상이자 꼭 남겨 기려야 하는 인물이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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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 간지럽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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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설은 들을 때마다 설렌다


신사임당, 대관령을 오며가며.


그녀는 시댁 파주와 친정어머니가 계신 강릉을 오갔다. 강릉에서 돌아갈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지어낸 시가 가장 많이 알려져있다.


<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어머니 그리워>

산 첩첩 내 고향 천 리건만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 위로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는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 길 다시 밟아 가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할꼬


<사친>

산이 겹치고 또 겹쳐 천 리 길인데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돌아가고 싶네

문 앞에는 맑은 달빛, 버들가지가 흔들리고

창가에는 새벽빛, 대나무가 흔들리고

어머니 그리워 밤새도록 뒤척이니

새벽닭이 우는구나, 날이 새려 하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의 외도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예법과 자녀교육을 들어 처를 두지 말것을 이야기했으나 이원수는 끝내 주막집 권씨를 첩으로 들이고 딴 살림을 차렸다. 권씨는 술을 좋아하고 취하면 주정을 부리는데 큰 소리로 울거나 자살소동을 벌이는 등의 행패는 어머니 신시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니 자녀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였다고 한다. 사임당은 48세에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율곡이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마음을 다잡지 못하다가 금강산으로 출가를 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해설은 어제각에서 마무리되었지만 율곡기념관과 화폐전시을 이어 관람한 후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녀가 조선최고의 여류화가이자 문인, 시와 글에 능통한 여성이었다는 점에 7남매의 어머니자, 며느리,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한 현모양처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타이틀만 붙일 것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 전반에 독립적이며 진보적이며,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았다는 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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