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by 김상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가족 모두, 시차 적응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제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한 주였다. 아이는 2주간의 수행평가를 보느라 분주했고, 방송반 일로 아침 7시 40분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며칠은 내가 아이보다 일찍 잠들었다. 아이는 묵묵히 혼자 수행평가 마무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가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혼자서도 제 할 일을 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신랑은 여행 중에도 일이 많다는 연락을 받았다. 돌아온 뒤 몰려든 업무에 정신이 없을 거라는 걸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었다.


나 역시, 돌아오자마자 일상에 뛰어들었다. 아이들 수업, 원주 강연, 일상에서는 다시 걷는 여행보다 운전하는 날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운전대를 잡고 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머릿속에는 아직 여행지에서 본 풍경들이 맴돌았다. 융프라우에서 하이킹으로 내려오다 만난 하늘색 폴보덴 호수, 카펠교를 만나러 가던 골목 사이에서 불어오던 바람, 그리고 뮤렌의 슈타우프바흐 가던 길가에 핀 작은 꽃들. 원주 강연이 있던 날은 왕복 5시간 넘는 운전을 했다. 단 30분 차이로 퇴근 시간 정체에 걸려, “2시간마다 휴식”이라는 내비게이션의 알림을 무시한 채 휴게소 한 번 들르지 못하고 엑셀을 밟았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점점 진한 색을 입었고,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 한켠엔 묘한 설렘이 남아 있었다. 이 길 끝에는 저녁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기에.


생각해 보면, 이건 또 다른 여행이다. 목적지는 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고, 다시 돌아올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런 여행. 여행지에서 우리는 일상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조금 가벼웠다면, 이곳의 여행은 익숙한 만큼 무게가 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찰나처럼 빠르게 흘러가지만, 이곳에서 쌓이는 하루하루는 더 깊고 묵직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하루하루가 잘 짜인 시간표 속에 맞물려 흘러가고, 제자리를 지키는 일엔 언제나 힘이 든다. 하지만 그런 무게가 있기에, 우리는 삶의 중심을 잡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조금 피곤하더라도, 어긋남 없이 이곳에서의 리듬을 다시 맞추고 있는 것. 그 자체로 감사한 일이다. 여행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서로의 곁에 있고, 걸어야 할 길이 있다면, 그곳은 늘 여행이다. 이곳의 여행은 저곳보다 조금 덜 낯설고, 조금 더 무거우며, 그만큼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작은 일상 속에서 여행의 흔적을 찾는다. 아이와 나눈 수행평가에 관한 대화, 다시 바빠진 신랑의 무심한 "운전 조심해", 친구와 마신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 이 모두가 내게는 여행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처럼 소중하다. 여행이란 결국,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바로 나의 여행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큰 탈 없이 이곳에서의 삶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에 깊은 감사함을 느낀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던 여정 덕분에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이 한결 건강해진 듯하다. 여행지에서 튀긴 음식을 자주 즐긴 탓인지 몸이 조금 붓고, 체중도 2킬로그램가량 늘었다. 그만큼 여행에서 쌓은 소중한 추억과 기쁨이 가득하다는 증거라 생각하며 마음 한켠에 작은 위안을 품는다. 몸무게는 늘었어도 오랜 시간 앉아 있느라 달라붙었던 군살들은 조금 정리가 되었다. 역시 걷기만큼 좋은 운동은 없는 것 같다.


아빠는 살아계실 때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으로 스위스를 꼽았다. 여행 후에 바로 이어진 빡빡한 일정 때문에 미처 아빠를 찾지 못했다. 스위를 그리워하던 아빠를 만나러, 곧 다녀와야겠다. 동생 꿈에 나타나 울었다는 아빠는 지금 저 먼 하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까. 아빠는 살아 있는 동안의 여행을 끝마치고 저 하늘 어딘가에서 또 다른 여행 중에 우리를 보고 계실 거다.

스위스에서 아이가 찍은 사진들
스위스에서 아이가 찍은 사진들
스위스에서 아이가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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