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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Feb 16. 2022

예비 장모님(?)과의 첫 만남

여전히 ‘결혼’이라는 단어에는 거리감이 있는 우리 두 사람이었지만, 그 거리가 예전보다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여자 친구가 나보다 먼저 실전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완벽히 되어있었다. 

 “오빠. 뭐해?” 이른 저녁 시간에는 보통 전화를 하지 않는데, 전화를 받자마자 뭔가 큼지막한 전달사항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운동 가려고. 왜?” 계속 누워있을 계획이었지만, 아무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렸다. 

 “있잖아. 나 얘기할 거 있음!” 보통 이 정도의 텐션이면 내 결정권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건데, 순간 머릿속에선 오만가지의 생각이 서로 자기주장을 들이댔다. ‘뭐야. 내가 혹시 다른 여자랑 있었나? 아닌데? 그리고 저 텐션이면 나쁜 얘기는 아닐 거야. 뭔가 부탁하는 뉘앙스인데? 여행 가자는 건가? 친구들이랑 여행 간다는 건가? 강아지 좀 봐달라는 건가? 돈 빌려달라는 건가? 돈은 아니겠지. 어차피 돈 없는 거 아니까.’   “뭔데요?” 긴장하면 꼭 존댓말을 하고 만다.  

 “주말에 엄마가 잠깐 올라오기로 했어요!” 

 “에이. 뭐야. 깜짝 놀랐네. 알았어. 주말에 가족들이랑 시간 잘 보내세요. 데이트는 다음 주에 하면 되지” 긴장의 끈을 놓고 덮고 있는 이불을 다시 어루만지고 있을 무렵,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오빠 좀 보자고 하던데?” 이때 그녀의 목소리 톤은 어찌나 호기롭던지. 마치 ‘야 인마. 너 이제 큰일 났어. 어쩔래?’ 장난치는 것 같았고, 아. 이래서 처음부터 텐션이 좋았나 보다.  

 “........... 응........?... 아 정말??”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갑작스럽게 회장님을 만났을 때도 이 정도로 당황하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그나마 통화로 이 사실을 전달한 덕분에 당황한 기색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황했나봐?” 

 “당황은 무슨. 이참에 잘됐다.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주말이면 그럼 토요일 저녁?”

안절부절못하는 내 상황을 이미 상대방은 눈치챘겠지만,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짓궂게 놀려대며 장난을 치겠지만, 적당한 선을 지켜주는 건 항상 여자 쪽이다. 이럴 때마다 역시 남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자의 성숙함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다음날이 되어서는 처음으로 인사드리는 자리인 만큼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한정식집을 추천받아 괜찮은 코스로 예약했다. 전날 미리 가게에 가서 동선을 파악하고, 예약된 방까지 확인까지 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회사에서 수행비서 노릇 할 때마다 속으로는 거친 막말을 하며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동안 윗선들 의전하는 게 가끔은 내 삶에서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스치듯 하기도 했다. 

 뵙기로 한 당일날이 되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정장 중에서 가장 반듯한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 정장을 준비해뒀고, 혹시 몰라 약국에서 청심환까지 샀다. 약사는 보이는 내 모습을 그대로 힐끗 살피며 내 긴장을 풀어줬다.

 “면접 보시나 봐요?”   

 “네. 압박 면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예상치 못한 제삼자와의 대화였지만, 내 대응이 상당히 노련했다.  

 “떨지 말고 편안하게 하세요. 면접 시작 한 시간 전이나 30분 전쯤 드시면 돼요”

약속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나는 6시 20분에 도착해서 그때부터 식당 앞을 어슬렁거렸다. 1분이 지날 때마다 손목시계를 보았고, 정확히 6시 30분에 주위를 살피며 청심환을 꿀꺽 삼켜냈다. 혹시나 속이 조금이나마 안 좋으면 바로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화장실 동선까지 파악했다. 그동안 나는 이런 만남에 잘 떨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이날 새롭게 깨닫기도 했다. 준비를 과하게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더 긴장한다는 것을. 내가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긴 했나 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아니 시간이 느리게 흘렀으면 하는 반반의 생각들을 하면서 어느새 시계는 6시 55분을 가리켰다. 저 멀리서 식당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는데, 조금씩 가까워지자 그 세 사람은 잠시 뒤 나와 식사를 할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여자 친구의 언니까지 이날 내 압박면접에 면접관으로 참석한 것이다. 

 잠깐만,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하지? 선생님? 너무 정 없어. 예비 장모님? 너무 나갔잖아. 어머님? 그래. 어머님이 적당하다. 그러면 첫인사는? ‘안녕하세요’만 해? 너무 버릇없어 보이는데? ‘처음 뵙겠습니다’? 너무 형식적이잖아. ‘오시는 길 복잡하진 않으셨어요?’ 걸어서 5분 거리인데? 아. 이 망할 놈의 동방예의지국. 

 어느새 서로의 미소가 보이는 거리에 닿을 때쯤 나는 즉흥적인 애드리브에 매달렸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처음 인사드립니다”

 ‘어이구. 내가 뭐 그러면 그렇지’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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