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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ramram Mar 22. 2022

어차피 지나면 다 별 거 아니야

결혼반지까지 맞추고 나서 습관적으로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릴 때마다 이제는 우리의 결혼 준비과정이 잘 마무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태어나서 처음 껴보는 반지라 불편함이 사무칠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며칠 지나고 나니 손가락에 반지가 있는 듯 없는 듯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여자친구의 한 마디도 도움이 됐을 수 있다.

 “앞으로 반지 빼면 알아서 해.”

 그동안 큰 산은 다 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가장 떨리는 일은 한 가지 남아있었다. 결혼식도 그렇겠지만, 어느새 다가온 상견례 자리였다. 이럴 때마다 한 번씩 선배가 일러주었던 어른의 기준을 되새기곤 한다. 

 “불편하고 어려워했던 일을 그럴싸하게 대처해야 그게 어른 같아.”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른인 척이라도 해야 하는 순간들이 한 번씩 오곤 했다. 그동안에는 그 순간들을 최대한 피해 오면서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피하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 소모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부딪혀보는 삶을 살다 보니 이것도 어느새 적응이 됐나 보다. 사실 어떤 점을 새롭게 깨닫기도 했다. 멘탈 바로잡기에 대한 부분인데, 내게 묵직하게 들이닥치는 문제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 별게 아니라는 것이다.  

 상견례 자리가 그런 순간들에 포함되지 않을까. 한 치의 사소한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엄청난 부담감이 압박하는 자리임은 분명하기 때문에 최대한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어떤 무감각한 인간이 상견례를 안 하겠나. 어떤 걸 조심해야 할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등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생각들을 청심환과 함께 삼켜버리고, 마지막에는 일종의 최면처럼 ‘이것도 시간 지나면 별 거 아니야’라며 내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이 결혼 준비과정에서 가장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양측 가족 관계 속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고 있던 부분일 수도 있다. 특히 서로에 대한 존중이라는 건 단순히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가장 간단하면서도 복잡한 문제로 꼽히는데, 나는 이날 상견례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확신해버리고 말았다. 

 ‘이 결혼, 나만 잘하면 정말 행복하겠다.’ 

 막상 상견례 자리에서 내 입에 들어간 음식들이 어떤 음식들인지, 내 입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는지 돌이켜보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청심환 안에 망각의 성분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저리주저리, 평소 입만 열면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나였지만, 이럴 때는 오히려 순간적 기억 상실이 내게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이래서 술만 마시면 잔뜩 취하려는 건지도. 상견례 자리에서 나온 말들을 겨우 생각해낸다면 ‘남은 결혼 준비, 잘 마무리해달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라’ 등 훈훈한 말들뿐이었다. 

 아. 이 날 안건이 하나 있기도 했다. 망할 코로나 덕분에 결혼식을 미루는 사람들도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을 미룬다고도 하네요. 저희는 예정대로 진행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애들이 준비도 많이 한 상태고.” 본격적으로 얘기를 꺼낸 건 우리 엄마였다.  

 “네. 그렇게 하시죠. 다행이네요. 저희는 혹시 식을 미루길 원하실까 봐 걱정했습니다.” 엄마의 제안을 예비 장모님이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상견례가 끝나고 나서는 일말의 뿌듯한 느낌이 남아있는 걸 보니 그 자리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그래도 큰 일 치렀다는 감정이 앞섰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서히 더 가깝게 부부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결혼 준비의 끝이 보일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 대부분의 한국 기혼 남성들이 농담 같지 않은 농담으로 ‘결혼은 힘든 생활의 연속’이라는 말들을 쉽게 내뱉는데, 그 이유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유로는 결혼 이후 제한되는 게 많다는 것이었다. ‘경제권이 자유롭지 않다’, ‘귀가시간이 자유롭지 않다’, ‘개인 자유시간이 보장돼있지 않다’ 등을 종합하면 결국 ‘하고 싶은 걸 전부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모이게 되는데, 나도 이 점에 대해서 더 엄격히 성찰해야 했다. 

 먼저 나조차 일반 남자들과 다를 게 하나 없으니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결혼 선배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사소한 문제들로 작용할 것인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들로 작용할 것인지 판단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긴 시간 혼자 생각한 후 스스로 내린 결론을 내렸다. 나도 결혼 이후 생기는 제약들에 대해 일정 부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겠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결혼이지만, 오히려 결혼 이후 갇힌 삶에 대해 스트레스가 더 많아져 삶이 불행해진다면 그 결과는 서로에게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닌 이 사안은 결국 결혼 안에 담긴 서로 간의 좋은 감정은 그대로 유지하되, 내 마인드와 행동들을 바꾸는 게 가장 정답의 근사치라고 생각했다. 

 다시 처음부터 되돌려보면 먼저 경제권 박탈에 대한 부분은 크게 아쉽지 않았다. 술로 인한 소비가 심했지 옷이나 쇼핑 자체를 즐기지도 않았기 때문에 경제권을 넘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동안의 업보라고도 생각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했지만, 내 경우에는 개같이 벌어서 개같이 썼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인정하기도 하면서. 내 주머니에는 돈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경제권을 전부 넘기고 내 한 달 용돈은 15만 원으로 이미 결혼 전부터 최종 타협안이 타결됐다.  

 각자 개인 시간에 대한 부분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여자친구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

 “난 특별한 취미는 없지만, 가끔 글 쓰는 시간만 보장해줘.” 괜히 나도 모르게 을의 입장에서 허락을 받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내 시간(글쓰기), 여자친구의 시간(잠) 서로가 아끼는 시간들을 최대한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여기까지는 평화롭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내가 지인들과의 저녁자리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저녁 자리를 줄여야 한다는 건 아버지가 항상 조언했던 ‘술을 조심하라’는 말의 부분적 의미일 수도 있겠고, 사람들 좀 적당히 만나고 적당히 싸돌아다니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내가 무조건 바뀌어야 하는 건 분명했다. 순간적으로 겁이 나는 이유는 서른 가까이 된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인간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어느 정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또 주입식 정신 교육을 도입해야 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더 자주 꺼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저녁마다 혼자 집에 있는 걸 즐기는 인간이라고. 그래도 양질의 행복을 얻기 위해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는 점도 떠올리면서. 그리고 나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어쩌면 나도 이제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은 건지도. 또 혹시 모른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걱정과 생각들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지. 선배가 한 말처럼.

 “별 게 다 걱정이다. 어차피 너 결혼하면 저녁에 사람들이 부르지도 않을걸?”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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