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준비하면서 내 성향 중 많이 달라진 게 있다면 선택과 결정의 판단이 빨라졌다는 점이다. 메뉴를 고르거나 뭘 사야 할지 고민할 때면 하루 온종일 걸리던 터라 스스로가 단점이라고도 줄곧 생각해왔지만, 역시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였다. 그동안 예식장, 드레스, 가전제품, 가구 등등 수십 가지의 선택지를 고르고 골랐으니 이만하면 철저한 연습을 통한 결과일 수도.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내 결정 능력이 향상됐다기보다 여자친구의 눈치를 살피는 능력이 향상됐을 수도 있겠다. 모든 결정은 회장님인 여자친구의 몫이었으니.
단계별로 준비과정을 하나 둘 마치다 보면 문득 한 번씩 ‘이 결혼이 혹시 틀린 답은 아닐까?’라는 고민길에서 서성이기도 한다. 그렇게 겁먹을 때면 내가 결혼에 대해 처음 다짐했던 확신으로 다시 채찍질을 해야 하고, 잘 달래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확신으로만 가득 차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내게는 그 순간이 주문 제작한 최종 청첩장을 받는 순간이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지인들에게 직접 보내는 청첩장, 나와 여자친구의 가까운 지인과 회사 사람들에게 돌리는 청첩장까지만 해도 수백 장이 넘었다. 모바일 청첩장이라는 간단한 전달방법이 있기도 했지만, 회사 내 사람들이나 관계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직접 전달하는 게 통상적인 예의라고 배웠다.
기본적은 예의는 거의 다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은 건네준 청첩장을 퇴짜 맞기도 했다. 회사 전무님에게 미리 결혼 소식도 알릴 겸 술을 사달라고 했고, 그다음 날 바로 잡힌 술자리에서 전무님에게 청첩장을 정성스럽게 전해줬다.
“청첩장은 내일 다시 받아야겠구나.” 전무님은 내가 내민 청첩장을 슬쩍 살펴보더니 내게 다시 건네주었다.
“글씨 잘 쓰잖니. 내 이름이라도 이쁘게 써서 건네주렴. 사소한 거 하나에 깊이가 달라진단다.”
필드에서 같이 뛰는 선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면 ‘젊은 꼰대’라고 놀려댔겠지만, 아버지뻘 되는 전무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 좋은 조언이었고, 가르침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기본적인 것이었고, 내 불찰임은 분명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세상살이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아니면 나만 그런 건지. 가끔은 회사생활의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 어울리는 인간 성장 방법을 배운다는 느낌도 받는다. 한편으로는 성숙해지는 단계로 받아들일 수 있겠고,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격식이라고도 생각할지 모르겠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아쉬운 소식도 빠트릴 수 없다. 적절한 동기부여와 해방감을 위해 신혼여행은 발리로 정했고, 누가 봐도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숙소까지 전부 예약했지만, 코로나가 우리 항공길의 발목까지 잡아버렸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꼴로 발리에 예약한 숙소를 보며 일상을 겨우 버텨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맘은 제주도로 달래야 했다. 회사가 아닌 곳에서 5일을 머문다는 것에 감사해야겠지. 그래도 업무용 노트북은 고이 챙길 것이다.
한창 결혼 준비할 때는 몰랐지만,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인사를 전하면 생각보다 많이 받는 질문이 ‘자녀계획’이었다. ‘애기는 언제 낳을 계획이냐.’, ‘아들보다는 딸이 키우기 편하다.’, ‘그래도 최소한 둘은 있어야 한다.’ 등등 하마터면 추석인 줄 알았다. 나이가 마흔다섯이 넘어가면 남들에게 관심이 많아지는 호르몬이 나오는 건지도. 그럴 때마다 내 대응은 한결같았다.
“와이프 뜻 따라야죠 뭐.”
전적으로 여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엄마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최근에야 느끼기 시작했다. 출산은 결국 여자의 희생이 수반돼야 한다는 문화가 물들어버린 지 오래고, 사회가 아무리 좋게 변한다 해도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출산휴가나 한 주 늘려주겠지. 서른 언저리에서 내 흐릿한 어린 과거들을 잠깐만 살펴보더라도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과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아련했다. 그 아련함이 한 여자의 희생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선 이제 와서 엄마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드리기도 했다. 엄마는 별 걸 다 신경 쓴다고.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에둘러 손사래 쳤지만, 거짓말일 것이다. 그때 엄마 나이가 지금 내 나이였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할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내 성향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부모에 대한 미안함은 커져만 갔다. 이제는 일종의 트라우마같이 맘속에 새겨진 듯하다.
결혼식이 코앞에 다가올수록 예고 없이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도 많아지고,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롭게 보이기도 한다. 그중에는 부모에 대한 생각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그 생각들로 인해 내가 부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 애틋해지기도 한다.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철이 든다는 표현이 적당하고, 안 좋은 말로도 철이 든다는 말이 적당할 듯싶다. 나이 먹는 건 좋지만 철이 드는 건 죽도록 싫어하는 내가 그래도 부모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진다는 건 누구든 환영하는 감정이 아닐까.
나란 인간이 ‘결혼’을 핑계로 조금씩 바뀌고 있나 보다. 어색하지만, 그렇다고 거부감 있지는 않게. 괜한 기대감도 가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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