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ramram Mar 27. 2022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다잖아

결혼을 준비하는 8개월은 그리 힘들지도, 그렇다고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고 할 수도 없던 기간이었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 단계별로 한 개씩 처리했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결혼식 날이 밝았다. 한 편으로는 얼른 이 신경 쓰임이 결혼식과 함께 끝나버렸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면서. 

 결혼식은 오후 예식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대로 결혼 당사자들은 아침부터 분주한 하루로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양가 부모님들이 잘 올라오시는지 확인하고, 나와 여자친구도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선 곧바로 메이크업을 받으러 간다. 그다음에는 드레스숍에 들러 여자친구의 드레스를 받고 최종 목적지인 예식장에 닿으면 된다. 

 예식날 아침에 간단히 뭐라도 먹으라는 조언을 들었지만, 혹시라도 소화가 안 될 것이라는 걱정에 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여자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예식을 기분 좋게 끝내고 나서 그동안의 노고를 씻어내듯 뷔페를 먹어버리자고 다짐했다. 

 예식날엔 오전부터 흐릿하더니 오후에는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이럴 때만 일기예보가 잘 들어맞는다. 많은 비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흐린 날보다는 화창한 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나 또한 아쉬움은 숨어있었지만, 그래도 여자친구의 마음을 옆에서 달래주는 건 내 역할이다.

 “원래 결혼식 날 비 오면 더 잘 산대. 그리고 나중에 기억하기도 좋고.”

 예식장에 들어서고 나서는 잠깐 떨리기도 했다. 제3자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식장의 단상이 직접 올라와보니 왜 이렇게 높은 건지, 띄엄띄엄 있던 하객들의 자리가 이 날따라 왜 이렇게 유난히 많아 보이는지 또 울렁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여자친구도 그런지 슬쩍 눈치를 보았지만, 여자친구는 오히려 그 순간들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랑 많은 부분 비슷하면서도 이럴 때는 다른 부분도 참 많은 사람이다. 

 예식을 2시간 정도 앞두고 나니 하나둘 아는 얼굴들이 속속 보여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고, 반가운 화환들도 도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와 비 소식까지 겹쳐 하객들이 많이 못 올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예식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진 찍으랴, 사람들과 인사 나누랴, 심부름하랴 더 정신없이 지나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청심환을 먹는 것까지 잊어버릴 뻔했다. 

 어느새 시간이 예식 30분 전까지 됐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북적거려 식장 로비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객 중에서는 두서없이 반가운 손님이 있는가 하면, ‘어? 이 사람도 내가 불렀었나?’ 하는 손님도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내게 고마운 발걸음임은 분명했다. 

 웃음이 자연스러운 걸 넘어 이제는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때쯤 예식장 직원이 신랑을 찾기 시작한다. 예식이 곧 시작한다는 걸 의미한다. 생각보다 떨릴 것 같았지만, 워낙 정신없이 끌려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단상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데 친구들이 양 옆에서 사진을 찍으며 놀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고, 직원이 옆에서 하는 얘기들도 겨우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사회자가 ‘신랑 입장!’이라고 하면 마음속으로 3초 세고 걸어가시면 돼요. 스포트라이트 쏴주는 게 있으니까 걸음은 꼭 천천히 걸으셔야 되고요. 단상 끝에 계단 보이시죠? 저기 앞까지 간 다음에 다시 뒤돌아서 계시면 됩니다. 준비하세요. 곧 신랑 입장할 거예요.”

 사회와 축가는 20년 지기 친구들에게 부탁했다. 원래는 노래를 직접 하려 했지만, 흑역사가 될 게 뻔했기 때문에 극도로 자중했다. 또 보다 특별한 예식을 하기 위해 색다른 이벤트도 생각해봤지만, 그것도 내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요즘 예식의 가장 큰 장점은 예식시간이 굉장히 짧아졌다는 데 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여기에도 묻어있다. 축가까지 포함해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 이건 뭐 패키지여행 같은 기분이다. 잠깐 멍 때리고 있으면 옆에 신부가 와있고, 그다음에는 같이 선언서를 읽고 있고, ‘이제 곧 끝나겠구나.’ 생각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아버지가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계셨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무겁게 자리 잡고 있기도 했다. 내가 곧 유부남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이유 없이 감격에 겨워했다. 이제 고생도 끝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내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기분 좋은 감정의 느낌은 분명했다. 

 단상에 잠깐 내려가 양가 부모님께 큰 절을 하고 부모님들을 안아드리기도 했는데, 자칫 울어버리기도 할 뻔했다. 엄마의 등허리가 어찌나 야위었는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이라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형식적인 예식 이후 포토타임까지 전부 마무리 짓고 나면 그때부터 온몸에 힘이 풀리기 시작한다. 대기실로 가서 그동안 목을 답답하게 했던 나비넥타이 먼저 풀어헤쳐 버렸고, 여자친구도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러고선 소파에 아주 잠깐 앉아 있으려 했지만, 결국 둘이 같이 뻗어버렸다. 

 “고생했어. 너무 잘 끝내서 다행이다.”

 “응. 오빠도. 다 잘했어. 선언문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만 빼고.” 여자친구도 이제야 웃음이 자연스러워졌다.

 “아. 그래서 옆구리 쳤구나.”

 “응. 그래도 잘 끝났다. 정말. 사람들도 엄청 많이 왔어.” 

 “그러게. 그래도 우리가 여태 잘 살아왔나봐.” 

 딱 3분만 더 있으면 잠들 것 같았던 찰나에 여자친구의 언니가 대기실로 와서 우리를 찾았다. 

 “어르신들이 연회장으로 내려오래. 인사 돌리고 식사하자고.”

 그렇게 우리는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러고선 나는 서둘러 가려고 하는 여자친구를 붙잡고 내가 앞으로 평생 지켜야 할 약속을 수줍게 건넸다. 

 “내가 진짜 행복하게 해 줄게. 우리 진짜 잘 살자.”

 아마 예상하지 못한 많은 시련이 닥칠 것이다. 그리고 감당하기도 힘든 아픔이 생기기도 하겠지. 근데 뭐,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인생의 아픔들을 피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매번 그랬듯이 잘 헤쳐 나가겠지. 나도 결혼 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나 가지고. 나도 충분히 행복해질 자격 있으니까.  -끝-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전 16화 결혼 준비로 생기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