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1막] 고전명작 뮤지컬은 원래 불친절한가요?

ep01. 노트르 담 드 파리 리뷰 1막

by 리수


* 관객 여러분들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본 리뷰는 1막과 2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막은 공연을 안보신분들도 스포일러 없이 읽으실 수 있도록 최대한 공개된 정보들을 다루는 형태로 작성되었지만,
2막은 경우에 따라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 유의하고 관람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공연리뷰를 시작하겠습니다.


24년 2월의 첫날, 뮤지컬을 보러갔습니다.

아무래도 주머니 사정이 빈곤한 대학생이기때문에

매 주를 비싼 공연으로 채워넣을수는 없지만 매달 적어도 한두편의 뮤지컬은 꼭 보는 편입니다.


시간이 흐르고나면,

지나간 시간들이 잘 기억 안날때가 많아요.

그때의 나는 어땠고, 무엇을 했는지 같은것들 말이죠.

그렇지만, 공연을 봤던 기억은 몇년이 지나도 강렬하고 또 생생해서, 그 시절의 나를 기억 할 수 있게 해주는것 같아요.

그리고 이 루틴은 제 한달동안의 설렘을

담당해주기도 하고요.


취업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의 학생으로 살아가다보니 달력을 보는일은 그다지 기꺼운일이 아니더군요.

내 한달을 어떻게 채워야할까,

나를 어떻게 증명해야할까 고민하게 되니까요.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지 않지만,

이대로 머물러 있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고단한 하루를 보내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시간속에 뮤지컬이라는 점을 찍어놓으면,

제 한달도 조금은 기대하고 싶은 무언가가 되어버려요.

그리고 그 시간을 고대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죠. 뭐라도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요.




각설하고,

24년 2월의 설렘은 ' 노트르담 드 파리 ' 였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빅토르 위고의 동명의 소설 ' 파리의 노트르담' 은 한번쯤 읽어보셨을만한 작품일것 같아요.

어떤이들은 '노트르담의 꼽추'라는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이 노래를 들어보신적이 있으실 수 있어요.


' 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왔어.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하늘 끝에 닿고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


소설의 내용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노트르담의 종지기이자 추남, 꼽추인 콰지모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집시여인 에스메랄다,

그리고 노트르담 성당의 부주교 프롤로,

귀족이자 기사인 페뷔스


이들의 사랑과 집착, 배신의 이야기.


이 작품은 그 유명한 넘버, '대성당들의 시대'로 시작되고, 원작소설과는 다른 흐름을 갖습니다.

1부의 내용은 원작과 다르지 않지만 여러 부분이 생략되어있고, 2부는 큰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 선에서 내용이 각색되었죠.


때문에 뮤지컬로 이 작품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원작의 기본적인 배경에 대해 알고 가시는게 필요하실 것 같아요.

(소설 초반의 디테일한 줄거리는 글의 뒷부분에 추가로 덧붙여두겠습니다.)




작품 초반부 줄거리


1482년의 파리입니다.


이 날은 주 공현절 행사가 있는날입니다.

이 날을 맞이해 파리의 재판소에서는 시인 그랭구아르가 쓴 신을 찬양하는 연극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중들의 난입으로 그랭구아르의 연극이 끝을 맺지 못하고 중단되면서 그는 급여를 받지못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러다 아름다운 집시여인인 에스메랄다가 광장에서 춤을 추는 장면과, 콰지모도가 그녀를 납치하려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죠.

(그녀를 구해주는건 근위대장 페뷔스였고, 둘은 이를 계기로 사랑에 빠집니다.)


집시여자인 에스메랄다에게 자신의 하룻밤을 부탁할 요량이었던 그는 다시한번 길을 잃고,

정처없이 헤메다 집시들의 구역으로 발을 들이게 됩니다.

그렇게 클로팽의 집시무리에게 잡힌 그랭구아르는 죽을위기에 놓이지만, 에스메랄다가 그를 구해주며 둘은 친구가 됩니다.




이처럼 원작 소설의 초반부는 그랭구아르의 행동을 따라 움직이며 이야기가 전개 되고 있습니다.

그가 이 소설의 관찰자이자 서술자인것이죠.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작품의 배경이 될만한 부분 특히나 그랭구아르에 관한 부분이 잘려있어,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다소 부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 때문에 좋은노래와, 훌륭한 원작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호불호가 심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 이해해보자면 아마도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뮤지컬이라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도 홍길동전을 공연할때, 적서차별이 만연했고 서자는 출세길에 오를수 없었던 시대상에 대해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으니까요. 그들에게도 그런것이겠죠. )



덕분에 이번 뮤지컬은 생각과 감각이 따로 노는듯한, 말하자면 귀는 만족스럽고, 머리는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 공연을 보고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콰지모도도 에스메랄다도 아닌

프롤로 부주교였어요.


에스메랄다에 대한 콰지모도의 사랑은

아름답고, 순수합니다.

그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위험에 처한 그녀를 지키고 싶어하죠.


또한 콰지모도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 역시 작품속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못생기고, 뒤틀린채로 외면받아온 콰지모도에게 그녀는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자, 성역 같은것일테죠.

더욱이 자신과는 너무 다른, 아름다운 그녀가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면, 그걸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주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겁니다.


그에 비해 프롤로 부주교가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게 되는 정확한 이유나 장면은 소설에도, 뮤지컬에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삶에서 지켜온 프라이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교이고, 금욕입니다.

언제나 학문을 가까이하고,

누구보다 청빈하게 살려고 노력했지요.

그는 그것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처럼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에스메랄다를 만나 모든것을 잃습니다.

그에게 에스메랄다가 대체 무엇이었길래,

그는 삶의 모든것을 져버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게 되면서, 무미건조 했던 그의 삶에서 처음으로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됩니다.

그게 아픔일지라도 말이에요.

생의 모든순간을 아무런 색채도 없이 살아온 프롤로에게 에스메랄다의 존재는

고통이자 환희이며, 구원이자 지옥이지요.


프롤로는 그녀를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그 순간을 후회했을까요?

아니면 자신을 파멸로 몰고갈지라도, 수많은 감정들로 가득찬 인간다운 순간을 경험한것에 감사했을까요.



프롤로를 연기한 배우의 연기력이 너무 좋았던 덕분인지 아니면 프롤로라는 캐릭터가 소설보다

뮤지컬에서 순화되어 표현된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명백한 악인인 캐릭터임에도 그의 노래를 듣는 그 순간은 프롤로라는 인물이 애처로워보이기까지 했답니다.


내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죽을만큼 욕망하는 삶이라니요.


삶에서 그보다 큰 형벌은 없을겁니다.



에스메랄다는 참으로 애처로운 인물입니다.

그녀의 고통은 그녀가 너무 매혹적인 탓일까요

아니면 매혹적이면서 동시에

누구나 손 댈 수 있는 존재인 탓일까요?


누구든 손 댈 수 있는 들판의 꽃이 아닌,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온실 속 에 핀 꽃이었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그녀는 빼어난 외모를 빼면, 그다지도 특별할 것 없는 착하고 어린 소녀입니다.

또한 어리기에 순수하지요.

그런 그녀는 수많은 이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그리도 드문일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삶은 어디든 있어왔을테니까요.

동양에는 양귀비가 있었을것이고, 수많은 여인들의 삶들이 그러했기에 가인박명 이라는 말이 아직까지 남아있는것이겠죠.


들꽃의 삶은 그런걸까요.

많은 인생들이 참 아리게 다가왔습니다.




명작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있는 뮤지컬의 즐거움은 바로 원작을 읽어보면서 한층 더 풍부하게

작품을 해석해볼 수 있다는것이겠죠.

그리고 단순히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스토리라인을 넘어서

여러가지 해석을 가지고 작품을 되새겨보는것도 즐거운 경험일것이고요.

그래서 그런건지 이번 뮤지컬은 특이하게도

공연을 봤던 순간들 만큼이나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시간 또한 즐거운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읽고, 제 나름대로의 해석들과 관람 포인트를 간추려보았습니다.

부족하지만 이렇게 저의 첫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많은분들께 즐거움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 관람포인트 1. 인물들의 양면성






이 뮤지컬은 빅토르 위고의 작품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괜찮아보이는 인물일지라도, 그 안에는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걸 보여주는게 좋은 문학작품이 해야하는 일이라는 그의 작품관 말입니다.

(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인 장발장이 대표적이죠.)


'노트르담 드 파리'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양면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콰지모도는 추악한 외면 속에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에스메랄다는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어리석습니다.

또 많은 사내들을 매혹시키는 집시이지만, 동시에 순결함을 간직하고있는 여인이기도 하고요.

프롤로는 신실한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에스메랄다에 대한 일그러진 욕망을 가지고 있고,

페뷔스는 귀족 집안에 훌륭한 외모를 지녔으나, 진실한 사랑같은건 모르는 인물이죠.


이런 그의 작품관을 생각하면서, 인물의 이중성에 집중해 관람해보시는건 어떨까요?



* 관람 포인트 2. 숙명


이 작품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ΑΝ’ΓΚΗ 즉 숙명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성당에 갔다가, 성당 구석에 써있는 숙명이라는 낙서를 보게 되었고,

'어떠한 운명이 그의 삶을 흔들어놨기에 이 곳에 이런 글을 적었어야 했을까' 하고 생각했다고 하죠.

그리고 그 생각에 상상력이 더해져 이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때문에 작품 속 각각의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숙명이 인물들을 비극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가죠. 숙명에 관한 주제의식은 에스메랄다의 '보헤미안' 넘버에서도 잘 드러나있습니다.



' 보헤미안, 보헤미안. 거부할 수 없는 내 운명. '


인물들이 어떤 숙명을 가지고 있고, 그 숙명이란게 인물을 어떤 결말로 이끄는지에 집중해서 관람해보시는건 어떨까요?




* 관람 포인트 3. 노트르담의 의미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482년 즉 15세기말 입니다. 격동의 시기이죠.

르네상스의 절정기이면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치고,

대항해가 시작되고, 제지술과 인쇄술이 발달한 시기입니다.

종교는 점점 타락해가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기 시작하는 시기이도 하고요.


또한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신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대성당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의 변화는 작중의 넘버들속에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https://youtu.be/sAT-qTtHy5M?si=hPEn3mkEUoQLog8s


'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그들을 성안으로 들게하라

이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그건 이천년이라고 '


에스메랄다를 포함한 집시무리들을 새로운 종교의 시대,

혹은 루터가 부르짖던 종교의 순수성 정도로 해석해본다면

이 노래와 작품의 스토리라인은 또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에스메랄다는 종교의 순수성 혹은 새로운 종교의 시대

프롤로는 타락한 종교인

페뷔스는 귀족 계급

콰지모도는 평민 계급


+ 보헤미안은 원래 보헤미아에서 왔을거라고 추측되는 집시들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19세기 후반부부터 방랑자와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예술가를 부르는 말로 쓰였다고 합니다.

보헤미안이 예술가라면 에스메랄다는 예술가, 즉 예술 그 자체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겠죠.

이러한 관점에서도 작품을 해석 해볼 수 있겠습니다.




* 알고보면 재미있는 이야기


뮤지컬에서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지만, 원작에서는 에스메랄다의 어머니와, 에스메랄다의 원래 이름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에스메랄다는 어릴적 집시들에 의해 훔쳐져 그들 손에 키워졌고, 그녀의 원래 이름은 아녜스, 그리스어로 맑고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아녜스 성녀 일화도 재미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로마총독부 시절 성 아녜스는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밝혀져

매음굴로 보내지는 형벌을 받았으나,

신의 도움으로 자신의 순결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쩐지 에스메랄다의 삶과 닮아있는것 같지 않나요?





(참고) 노트르담 드 파리 소설 속 초반부의 줄거리

1482년, 파리입니다.
이 날은 주 공현절과 미치광이 축제가 겹치는 흔치 않은 날입니다.
공현절은 동방박사가 예수를 찾은날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이고,
이를 위해 파리의 재판소의 대형홀에서는 시인 그랭구아르가 쓴 연극이 공연되기로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나 파리에 오는 사절단과 추기경이 오지않아 공연은 지연되고, 설상가상으로 공연 중간에 여러 사람들이 끼어들어 연극은 결국 중단되고 맙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연극은 제쳐둔채로 가장 못생기고 추한 사람을 찾아 미치광이 교황으로 선정하는 미치광이 축제를 진행하기로 하죠.
이때 노트르담 성당의 충직한 종지기이자, 꼽추인 우리의 콰지모도가 그날의 교황으로 뽑히고 들것에 태워져 행진을 시작합니다.

시인 그랭구아르는 연극의 중단으로 인해 약속되었던 돈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 갈 곳을 잃습니다.
돈이 없는 그는 무엇이라도 얻어먹을것이 있을까하여, 광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광장에는 집시여인 에스메랄다가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춤을 추고 있었죠.
곧 그녀의 춤 또한 관객들의 난입으로 중단되고, 그랭구아르는 집시인 에스메랄다가 자신을 재워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그녀를 쫓아갑니다.
(* 아마도 집시는 방탕하다는 그의 선입견이 영향을 끼친것이겠지요.)
그렇게 에스메랄다를 쫓아가던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가 납치당할 뻔 한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에스메랄다를 구해준 남자는 페뷔스, 귀족이자 왕실 친위대장이고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던건 다름아닌 노트르담의 종지기 콰지모도였습니다.
콰지모도는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납치사건이 일단락 되면서 그랭구아르는 다시 갈곳을 잃습니다.

그렇게 그랭구아르는 정처없이 헤메다 집시들의 구역으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집시들에게 붙잡혀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그는 집시가 되든 아니면 죽음을 맞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집시가 되는 방법은 두가지, 소매치기에 성공하거나 아니면 집시여인과 결혼하는 것 둘 중 하나였죠.
시인인 그가 소매치기 같은데 재능이 있을리는 만무했고, 집시여인들 중에 돈 없는 그와 결혼하겠다는 여자 역시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랭구아르의 목이 교수대에 걸리기 직전, 에스메랄다가 나타나 그를 남편으로 삼겠다며 그랭구아르를 구해주게 됩니다.
그리고 둘은 친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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