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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망 Jun 19. 2022

"너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말의 비밀  

하, 주문은 절반만 맞았다.

만능인 줄 알았던 이론에도 한계는 있는 법이다. 여러 번의 이별에도 굳세게 "내게 맞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주문을 맹신하던 내가 무장해제되는 날이 다가왔다. 컴퓨터를 엄청나게 잘하던 남자와 헤어진 뒤였다.  


짧은 만남이었다. 긁어모은 추억도 고작 한 줌이었다. 만난 기간이 짧으니 나도 내가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는 마법이 먹히지 않았다. "맞는 사람 만날 거야 괜찮아"란 주문이 내 마음에서 튕겨져 나오더니, 종래엔 아예 효력을 잃어버렸다.


단적인 증거는 그와 헤어지고 누굴 만나도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와 이별하고 얼마 안되서 나는 인생 크레디트를 다 쓰듯 주위에 소개팅을 요청했고, 독서 모임을 가장한 연애의 장을 활보했다. 그와 나는 안 맞았으니 이번엔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내 눈이었다. 그와 헤어지고 만나는 남자들의 단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전 남자친구를 만날 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던 상대의 입술 기울기가 문제가 됐다. (심지어 전 남자친구 입술도 똑바르지 않고 기울어있다. 그건 문제가 안됐다.)  


어렵사리 성사된 모 스타트업 CEO와의 소개팅을 한 날이었다. 장문의 거절 카톡을 쓰고 있는 내게 친구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너무 똑똑해서 면접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친구는 지난번 소개팅남은 똑똑하지 않아서 싫다고 대답했다고 넌지시 일러줬다.  


아뿔싸. 고장 난 요술봉을 든 세일러문처럼 나는 망연자실해졌다. 현생에서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은커녕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다. 이 사람이 내 전부 같은 느낌, 옆에서 앉아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은 일년에 한번 느끼기도 쉽지 않다.


거기에 '잘 맞는 사람'까지 바라게 되니 연애가 잘 될 턱이 없었다. 힘들게 눈에 아른거리는 사람을 만났는데도 연인과의 차이점을 '잘 맞지 않는다'는 명제에 꾹꾹 끼워 넣었다. 나는 내 에너지를 그를 사랑하려는 노력 대신 나와 잘 맞는지 고민하는데 몽땅 썼다.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 나만큼은 아니었지만 대도 '맞는 사람 이론'을 믿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 문장을 부여잡고 그의 손을 쉽게 놓았던 것처럼, 그 또한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는 게 나와 끙끙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혈액형, 별자리, 거기다가 최근엔 MBTI까지. 현대인들은 연애 상대가 나와 잘 맞는지를 빠르게 확인하고 싶어 하고, 빠르게 결정하고 싶어 한다. 시간은 소중하기에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빠르게 손절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 할수록,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상대와 관계를 지속해보고자 하는 의지는 반비례하게 된다. 언젠간 진짜 잘 맞는 대안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잣대는 올라가고, 현실과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기대가 커질수록 사랑은 난제가 된다. 이별을 한 번에 해결하는 마법의 주문도 세상엔 없다. "너에게 맞는 사람이 있을 거야"라는 문장은 딱 절반만 맞았다. 세상에 처음부터 내게 꼭 맞는 사람은 없다. 맞춰갈 사람도 쉬이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망했다는 얘기 #눈물좀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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